▲ 김재박 감독의 ‘이기는 야구’가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최근 LG가 팀플레이가 살아나면서 근성 있는 팀으로 변모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초등학교 땐 포수였다
1954년생 54세 말띠. 게자리에 혈액형은 B형. 키 174㎝에 77㎏. 김재박 감독이다. 자기 욕망에 대단히 솔직한 말띠에,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놀라운 게자리에, 종잡을 수 없는 B형 남자, 김재박은 대구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단다. 그것도 포수로.
“중1까지 포수하다가 키가 안 커서 2루수로 갔는데 키 작다고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서 안 받아주는 거예요. 그때 마침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를 갔고 집 근처의 대광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창단돼 들어갈 수 있었죠. 고등학교 때도 2루수였어요.”
당시에도 키가 160㎝도 되지 않았던 김 감독은 야구부에서 키가 제일 작았고 발도 가장 느렸다. 대학을 알아볼 때도 바로 그 키와 발이 김 감독을 슬프게 했다.
“군대 가야하나 고민하는데 영남대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한다고 해서 밤기차 타고 내려갔죠. 근데 가보니까 멤버가 12명이야. 12명 가지고 어떻게 야구를 하냐고. 그래서 1년 논다 생각하고 몸을 만들었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산에 오르고 뛰고 웨이트했어요. 대학 가서도 발이 가장 느렸는데 훈련 덕분인지 1년 만에 제일 빨라졌어요. 2학년 때부터 홈런이 나오더니 키도 자라더라구요.”
이기는 야구
누구보다 노력과 훈련의 힘을 믿는 김 감독은 역시 그 누구보다 ‘이기는 야구’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왜?
“선수시절, 중간에 잘리는 감독을 많이 보잖아요? 이겨야 된다, 이기는 야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머리에 딱 입력했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기는 야구를 해야겠다, 지금 감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구요.”
마치 내가 사는 것이 모두가 사는 것이라고 들리는 그 말. 그렇다면 지금의 ‘모두’가 된 LG의 정비는 얼마나 진행되었을까.
“한 60~70%? 처음엔 선수들이 기본기나 팀에 대한 끈끈함이 부족해서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LG정비의 핵심은 팀플레인데, 작전수행능력이나 중요할 때 투수나 포수의 공배합, 이기는 야구에 대한 집념. 그런 게 부족하죠. 이기는 야구를 하려면 공 하나를 소중하게 아낄 줄 아는 팀플레이가 돼야 해요.”
LG 팀플레이 달라졌다
공 하나를 아낄 줄 아는 팀플레이의 학습효과일까. LG가 달라졌다. LG팬들은 ‘믿을 수 있는 팀을 응원하는 기쁨’을 누리며 5년 만에 4강 진출을 꿈꾸고 있다.
“마운드가 좀 약하지. 중간, 마무리도 불안한 데다 박명환도 7~8월은 힘을 못 쓰고. 대신 옥스프링이 두산 리오스만큼만 해주면 좋겠어요. 수비는 굉장히 좋아졌고 공격은 뭐, 팀마다 큰 차이 없다고 봅니다. 4강이요? (웃음) 자신 있죠, 꼬리 내릴 필요 없지!”
경기 1시간 30분 전, 잠실야구장 3루 더그아웃을 지나 큰 유리문을 통과하고서야 들어갈 수 있는 LG 감독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용달 매직’ 김용달 타격코치와 양상문 투수코치, 정진호 수석코치가 들락날락했다.
정진호: 동수, 괜찮다고는 하는데….
김재박: 그래도 좀 불편해 보여.
정진호: 한번 더 보고 결정하죠, 뭐.
김용달: 잠깐만?! (손가락으로 번호 표시하며) 이 친구, 요즘 눈도 좋고 하니까 앞으로 빼볼까 싶어서.
김재박: 그러면 뒤가 괜찮을라나?
김용달: 요즘 타격감 괜찮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요.
김재박: 알았어.
문득 여기가 ‘여우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 감독을 보필하는 여우 코치들. 그 관계도 궁금했다.
“사실 이만 한 코치들 구하기 쉽지 않죠. 다들 나하고 10년 이상된 인연이라 의리도 있고 손발도 맞고, 게다가 지금까지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왔기 때문에 서로 무난하게 같이 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 말은 성적이 안 나오면 갈라설 수도 있다는 말씀? “성적이 안 나오면 갈라질 수 있죠. 성적+알파가 맞으니까 같이 가는 거지.”
역시 ‘까칠 재박’. 그래서 내친김에 ‘삼성이 돈으로 야구한다’는 까칠하다 못해 자극적인 말은 의도적인 멘트였냐고 물어봤다.
“뭐, 기분 나쁘라고 의도적으로 말할 때도 있고, 조크 차원에서 말할 때도 있고. 하지만 삼성이 100억 넘게 들여서 심정수 박진만 박종호 데려가 우승했잖아요, 내 말이 맞지 뭐.”
나는 내 길을 가련다
SK 김성근, 삼성 선동열 야구와 함께 비호감(?) 야구 3종 세트의 일원인 김재박 야구를 욕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물어봤다.
“신경 안 써요. 적이니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상대는 상대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야구하고 보고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
거침없이 쿨한 김재박 감독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야구 그만두고 공부해서 체육교사 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제일 신기해! 역시 절실했기 때문일 거야! 떨어져봐야 돼. 낭떠러지에서….”
문득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생각났다. 모두가 스스로를 위해 선택하고 행동한다. 김재박은 누구를 위하여 야구를 할까, 묻지 않았다. 김재박은 김재박을 위해 이기는 야구를 한다. 그것이 그가 속한 모두를 위한 것이므로.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