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부임 후 주전과 백업이 없는 ‘토털 베이스볼’ 시스템에 한동안 마구 헤맸던 ‘국민 우익수’ 이진영(27). 마치 ‘여름 사나이’라는 별명을 장착한 듯 잠시 ‘동면’의 시간을 보내고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그 역시도 반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2006년 WBC(월드클래식베이스볼) 일본과의 4강전에서 환상의 다이빙캐치로 ‘도쿄대첩’의 주역이 된 뒤 ‘국민 우익수’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이 붙은 그는 한때 이 수식어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버겁게 느껴졌다고 토로한다. 여름을 맞아 펄펄 날고 있는 이진영을 광복절인 지난 15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만났다.
‘국민 우익수’의 굴레
그때는 참 행복했다고 한다. 더욱이 일본전에서의 승리라 국민들의 환호와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국민 우익수’란 호칭을 선물 받은 이진영. 귀국 후 많은 팬들은 이진영에게 다이빙 캐치를 원했고 이진영 또한 그런 팬들의 반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진영의 마음을 꿰뚫어 봤는지 이진영이 수비에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가차 없이 교체를 지시했다. 9회까지 풀타임을 뛴 적이 많지 않았을 정도.
“감독님이 개인행동을 하거나 튀는 걸 굉장히 싫어하세요.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죠. 5회에도 불려 들어가서 팬들 보기에 민망하고 창피한 적도 있었어요. 솔직히 처음엔 감독님을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속으로 많이 부대꼈는데 어느 순간부터 팀플레이를 주장하시는 감독님의 마인드가 와 닿았어요.”
이진영은 이닝 중에 교체가 돼도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럴때마다 선배들이 “야, 넌 뭐가 좋아서 웃냐?”라고 한마디씩 던지면 이진영은 이렇게 대답했다. “좋잖아요. 안타 2개치고 할 거 다 했는데…. 일찍 쉴 수도 있구요. 하하.”
감독님 보세요!
이진영은 WBC대회 이전까지만 해도 수비 능력이 특출난 선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투수 출신이라 홈 송구 능력이 뛰어나긴 했어도 수비보단 방망이로 더 인정을 받았다는 설명. 그러다 WBC 일본전 이후 이진영은 ‘국민 우익수’란 굴레에 묶이게 된다.
▲ 훈련용 빨간 반바지를 입고 구슬땀을 흘리는 SK 선수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밖에선 신바람, 안에선 피눈물
SK에는 주전과 백업의 구분이 없다. 두세 명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 나갈 때마다 자신이 선발인지 대타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보이지 않는 내부 경쟁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긴장감이 가득하다.
“오늘도 누가 1, 2, 3번을 칠지 몰라요. 저도 하루는 선발, 다음날은 대타 이렇게 나가거든요. 저보단 선배들이 많이 힘들어 했어요. 스타급 선수들인데 백업 선수로 뛸 때가 있으니 황당했을 거예요. 시즌 초에는 2군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1군에 올라오니까 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구요. 정말 살벌했어요. 만약 이런 상태에서 성적이 안 좋았다면 분명 말들이 많았을 겁니다.”
강병철 감독 양아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쌍방울에 입단했던 이진영은 쌍방울이 해단되고 SK가 창단되면서 강병철 감독과 사제지간의 연을 맺게 된다. 당시 주전으로 뛰기에 2%가 부족했던 이진영은 강 감독의 총애를 받으면서 줄곧 선발로 게임에 나섰다. 그러다보니 이진영은 선수들로부터 ‘감독의 양아들’이란 비아냥을 들으며 ‘왕따’를 당했다.
“감독님의 배려를 성적으로 보답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어요. 코치나 선배들의 질책이 엄청났죠. 방망이 못 치는 날에는 밥도 못 먹게 하고 숙소로 사용했던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깜깜할 때까지 훈련했어요. 너무 배가 고파 몰래 치킨 배달시켜 먹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울면서 전화 걸어 ‘더 이상 야구 못할 것 같으니까 군대 가겠다’고 하소연을 했었죠. 강 감독님이 SK에 계시던 마지막 해(2002년)에 처음으로 3할을 치면서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렸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자주 김성근 감독이 거론됐다. 그만큼 이진영의 야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반증. SK가 창단 후 처음으로 우승하는 게 올시즌 ‘바람직한’ 목표라고 말하는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부탁한다. “기사가 어떻게 나갈지 걱정되네. 이진영이 감독님 존경한다고 좀 써 주세요. 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