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이봉주. 사진제공=동아일보 | ||
이봉주가 지령 800호를 앞둔 <일요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 빅뉴스를 공개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것은 맞지만 이후 올림픽 성적과는 상관없이 은퇴경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봉주는 이외에도 다양한 돌발질문에 진솔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속내를 그대로 공개했다. 8월 24일 베이징~인천공항 간 비행기 안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돌발인터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참 많이 뛰었어. 어떤 레이스가 가장 기억에 남지?
▲하나를 꼽기가 힘드네. 상무 입대 영장까지 받아놓고 출전한 애틀랜타올림픽(은메달)도 극적이었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 운동도 많이 못하고 출전했는데 우승을 차지한 2001년 보스턴마라톤도 정말 기억에 남아.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만들어야 할 텐데(웃음).
─힘들 때도 많았잖아.
▲99년 코오롱 사태 때 많이 힘들었지. 반년이 넘도록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허름한 여관을 전전하며 훈련했잖아. 그러고 보니 2000년 2월 도쿄마라톤에서 한국최고기록을 세운 것도 참 극적이었어. 오인환 감독과 참 많이 울었어. 그리고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서울시청 소속이던 92년 슬럼프를 겪을 때 마라톤을 포기할까 심각히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어.
─결과야 어떻든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글쎄… 지금은 올림픽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은퇴경기를 꼭 하고 싶어. 2008년 가을이나 2009년 봄에 한국에서 열리는 어떤 마라톤대회든 ‘이봉주 은퇴경기’ 이름을 달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면 꼭 은퇴레이스를 할 생각이야. 40번이나 풀코스를 뛰었는데 마무리로 그 정도는 해야 될 것 같아.
─은퇴경기를 한 후에는?
▲팀과 상의해봐야겠지만 일단은 무조건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 일본이나 미국 아니면 캐나다 이런 나라로 가서 재충전의 시간도 갖고 공부도 하고 싶어. 워낙 오래 뛴 까닭에 뭐 바로 지도자를 해도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여유를 갖고 싶어. 그후에 다시 한국으로 와서 지도자 생활을 해야지. 그리고 가능하면 삼성맨으로 남고 싶어. 뭐 이런저런 팀에서 지도자로 오라고 스카우트 제의가 와도 선뜻 내키지 않을 거 같아.
─마라톤을 안 했다면 뭐 하려고 했어? 어차피 운동도 늦게 시작했잖아.
▲큰 목장을 하고 싶었어. 시골 출신인 데다가 지금도 목장 같은 거 하면서 가족들이랑 조용하면서도 편안하게 사는 게 좋아 보여. 아직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꿈이야(봉달이 목장? 웃음).
─얼짱아들 우석이나, 둘째 승진이가 만일 운동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이거 처음으로 공개하는 건데 점을 몇 번 쳐봤거든 그런데 우석이가 아빠보다 운동으로 이름을 더 날릴 거래. 승진이도 운동이라고는 안했는데 손재주가 뛰어나서 제법 유명해진대. 자식자랑 한다고 팔불출이라고 하지 마. 진짜거든.
─아내 김미순씨도 고생 많았을 거야. 아빠는 집에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사내아이를 둘씩이나 키우니 말이야. 지면을 빌어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내 얘기 나오니까 옛날 가출사건 생각난다. 우석이가 네 살인가 그렇고, 둘째가 갓난아이였을 때야. 그때 내가 좀 집에 소홀히 했어. 모처럼 휴가기간 때도 친구들 좋다며 집에 늦게 들어갔거든. 그랬더니 김미순 여사가 못살겠다며 짐 싸가지고 나갔어. 혼자 우석이 재우고, 둘째 분유 타서 먹이는데 죽겠더라고. 뛰는 것보다 더 힘들어. 우석이 엄마가 불안했던지 멀리 가지도 못하고 몇 시간 만에 들어왔어. 유통기한 지난 분유 먹였다고 되게 혼나고 후후. 와이프한테 많이 미안하지. 이제 1년만 지나면 더 이상 훈련 없을 테니 가족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낼 거야.
─내년 베이징올림픽 때 가족들 불러야지?
▲그래 마지막이니까. 이제 우석이는 제법 커서 아빠 직업을 아주 잘 알아. 베이징은 교민들도 많고 하니까 기회가 되면 데려와야지.
베이징=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