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답지 않게 꽉찬 생각을 풀어놓은 강민호. ‘보물’이라 불릴 만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전 경기 출장 넘 힘들어
강민호는 포수로선 드물게 2년 연속 전 경기 출장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미니홈피 대문에 ‘시련 없이 성장할 수 있겠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앞이 안 보이면 뒤를 돌아보자’는 글을 써놨다. 전 경기 출장이 힘든 탓일까.
“사실 그런 것도 있죠. 작년부터 전 경기를 뛰다 보니까 하루하루 늙어간다는 느낌도 들어요. 데뷔 첫해인 신인 때는 시합 못 뛰고 그 다음엔 그냥 덤볐고, 그 다음 해인 지난해에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였고 올해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알겠는데 야구라는 게 아니까 더 어렵네요. 이 상황에서 뭔가 나올 것 같은데 계산대로 안 나오니까 더 복잡한 거죠. 다행히 튼튼해서 아직 아픈 덴 없지만 개인적으로 내년엔 전 경기 출장, 고민 중이에요.”
슬럼프? 뭐 어때!
펄펄 뛰는 청춘이 뭐가 그리 힘드냐고 물었더니 “청춘이요? 저한테 청춘이 있나요? 야구장에서 사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강민호는 이번 시즌 롯데의 홈인 부산에 야구광풍이 부활해 정말 기분 좋지만 한편으론 힘들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난 5월에 방망이가 안 되고 삼진만 왕창 먹을 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하지만 여름 되고 방망이가 살면서 빨리 슬럼프를 끝냈죠. 슬럼프요? 글쎄요, 다른 건 몰라도 슬럼프가 오면 그 다음엔 반드시 뭔가 하나는 업그레이드된다는 건 믿어요. 그래서 이제는 ‘슬럼프? 뭐 어때!’식으로 생각하려고요.”
진짜 문제는 볼 배합!
얘기 중에 강민호가 탁자 위의 샛노란 오렌지주스를 벌컥 들이켰다. 그리곤 “사실 진짜 문제는 볼 배합이죠, 볼 배합”이란 말을 꺼냈다. 8개 구단 중 유일한 20대 주전포수로서 볼 배합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까닭일까.
“제가 아직 어리잖아요. 이제 300경기 조금 넘게 뛰었는데요, 뭐. 아시겠지만 볼 배합을 제 맘대로 하는 건 아니고요. 손민한 투수처럼 선배님이 선발로 나오면 선배들 사인을 거의 따르는 편이에요. 장원준이나 송승준 형처럼 아직 경험이 부족한 투수가 나오면 그 투수가 잘 던지는 공, 좋은 공을 유도하죠. 손민한 선배야 2S 3B에서도 유인구를 던질 수 있지만 어린 투수들은 2S 1B에서 승부 안 걸면 포볼 될 가능성이 커서 결정구 던지자고 설득하는 거죠. 투수마다 성격파악, 구질파악, 위기대처 스타일 같은 걸 알고 볼 배합을 해요. 지금은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더 잘할) 자신 있습니다.”
투수가 흔들리면 포수도 흔들린다고 말하는 강민호. 투수가 흔들릴 때 마운드로 올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물어봤다.
“저는 ‘마음 편하게 하고 한 명씩 잡아가자’ 이런 말 안 해요. 장원준이 흔들린다? 그러면 마운드 올라가서 ‘뭐 하냐? 너, 오늘 저녁에 놀러 안 갈 거야? 잘 좀 해봐~’라며 웃으면서 토닥거리죠. 방 같이 쓰는 손민한 선배한테도 ‘선배님 잘 좀 던져보세요. 12승 해야죠!’ 뭐 이런 식?”
▲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
하지만 ‘급하면 어린 티가 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강민호는 SK 박경완의 투수리드, 볼 배합 그리고 배팅까지 닮고 싶다고 했다.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건 안 닮을 거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작년에 후보로 불려갈 때만 해도 진짜 아무 생각 없었거든요. 근데 와~ 시상식 딱 시작하는데 욕심이 나는 거예요.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골든글러브 한 번 받았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올해도 안 될 것 같아요. LG 조인성 선배 보세요? 요즘 난리잖아요. 올해는 아마 조인성 선배님이 골든글러브 받을 걸요.”
내 꿈은 롯데 우승!!
8월 28일 6위에 머물러 있는 롯데에게 4강의 불씨, 가을야구의 희망은 살아있는 것일까.
“포기 안했어요. 이대호 형도 살아나고 다들 한번 해보자고 뭉쳤거든요. 사실 저는 우리 팀이 정말 좋아요. 저는 진짜 롯데에서 우승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다른 팀 가서 우승하면 롯데만큼, 부산만큼 재미없을 것 같아요. 롯데 우승과 함께 저의 진짜 큰 꿈이 뭔지 아세요? 박정태 선배처럼 롯데맨이 되는 거예요! 저는 사직구장에 가면 포근하다니까요~.”
(안타깝게도 롯데는 지난 30일 경기에서 져 사실상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제주소년, 부산총각 되다
부산 사직야구장이 포근하다는 강민호는 알려진 대로 제주소년이다. 제주 신광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몰래 야구부에 가입했다는데….
아버지: 하지 말라고 했지? 당장 탈퇴해.
강민호: 왜요?
아버지: 아버지도 고등학교까지 배구선수였다. 근데 집안사정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나니까 할 줄 아는 게 없더라. 그냥 공부해라, 아들아.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생 강민호는 반 대항 야구대회에 출전해 최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교장선생님이 전화를 걸었다.
교장선생님: 저기, 민호 아버지. 민호가 야구를 참 잘하는데 선수로 한번?
아버지: 아니 됐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했던 아버지. 하지만 온갖 설득작업을 하던 중 강민호의 아버지가 자신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저기 말이야 민호, 내일부터 야구부 보내라.
아버지: 네, 선생님. 내일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야구를 시작한 강민호는 포항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내고 부산에서 4년째 프로생활을 하고 있다. 학창시절, 한겨울 세탁기도 없이 얼음물에 빨래할 때는 야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단다. 그때마다 짝사랑했던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몰래 읽으면서 스무 번은 울었다는 강민호.
선생님: 민호야. 앞에 높은 산이 있을 거야. 그 산을 한 번에 오르려고 하면 힘들 거야. 하지만 한 발 한 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정상에 가 있을 거야.
포기하지 않고 지금 야구를 하는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강민호. 스스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강민호. 그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것도 신나게 달려보겠다는 강민호. 그의 응원 노래인 ‘넌 내게 반했어’가 가을에도 높이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