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과 함께 한화의 미래를 짊어질 유원상이 2007년 가을 드디어 발진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그놈’의 제구력
2005년 계약금 5억 5000만 원에 한화의 새내기 독수리가 된 유원상은 자기가 ‘그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렇게’는 데뷔 2년 동안 1군 경기 등판 횟수가 전무한 2군 선수를 말한다. 왜. 그놈의 제구력 때문이었다.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마음은 누구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투구 폼이 크고 상체가 앞으로 나가다 보니까 제구가 안됐고 볼넷이 나오고 한방 맞으면 마인드 컨트롤도 안 되고, 모든 게 내맘대로 안 되니까,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한 거죠. 나도 못 이기는데 누구를 이길 수 있었겠어요.”
천안북일고 시절, 2005년 무등기 최우수 선수상과 우수투수상까지 수상한 유원상이었지만 실제로 투구 폼에 문제가 있었다. 입단 초기부터 흔들리는 중심 때문에 제구력 난조에 대한 걱정을 들어야 했던 유원상은 2군으로 내려가 아주 ‘잠깐’ 다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잠깐’이 2년이었다.
이제 2군 안가
2군에서 투구 폼을 바꾸고 팔의 각도도 조금 눕히고 하체 단련 위주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밸런스를 맞췄다는 유원상에게 2군에 있던 2년 동안 외롭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외롭고 두려웠죠. 2군에 오래 있으면 2군 선수가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1군 선수들에 비해 소외된다는 느낌, 나도 저렇게 큰 경기장, 저런 데서 야구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에 1군이 부러웠고 1군에서 뛰는 류현진이 부러웠고 그 자신감도 부러웠죠. 정신적으로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어줘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나는 ‘먹튀’가 아니다
9월 엔트리 확대가 결정되자 한화 김인식 감독은 8월에 유원상을 1군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8월 5일, 유원상은 대전 현대전을 앞두고 김인식 감독 앞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공개 테스트 전에 팔을 풀었어요. 근데 관중석에서 ‘먹튀, 왜 나왔냐, 들어가라’는 야유가 들렸어요. 그때 욱~ 했다기보단 ‘두고봐라’는 오기는 생기더라구요. 또 한편으론 죄송했어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 아직 먹튀 아니에요. 류현진처럼 초반부터 잘하는 선수도 있지만 저처럼 걸음이 느린 아이도 있잖아요. 아직 먹튀라고 말하진 말아주세요. 먹튀가 아니란 걸 증명할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은 유원상에게 기회가 왔다. 9월 8일, 꿈에 그리던 1군 데뷔전이었던 SK전, 선발투수 세드릭 이후 양훈-유원상-김경선으로 이어진 그날 경기에서 유원상은 2이닝을 던지며 녹슬지 않은 묵직한 강속구를 선보였다. 145km의 직구를 던지다 SK 김재현에게 솔로홈런을 맞긴 했지만 바깥쪽으로 살짝 걸리는 제구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리고 지난 9월 13일 삼성전. 선발투수였던 세드릭이 갑작스런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자 김인식 감독은 유원상을 마운드로 내보냈다.
그러면서 슬쩍 미소를 짓는 유원상에게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자신감’이 느껴졌다.
류현진과 오승환
의도적이긴 했지만 유원상과 류현진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유원상의 계약금의 반도 안 되는 2억 5000만 원에 사인한 류현진은 한 살 어린 입단 동기다. 그리고 2007년 현재, 유원상의 연봉은 2100만 원이고, 류현진의 연봉은 1억 원이다.
“현진이랑은 친해요. 처음엔 사실 질투가 났었죠. 1군에서 던지는 것 자체가 부러웠으니까요. 하지만 현진이는 인정받는 최고의 투수가 됐고, 지금으로선 제가 그걸 뛰어 넘어야죠.”
선발이냐 중간계투냐 마무리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유원상. 지금은 1군에서 계속 뛰는 것이 목표라는 유원상에게 누구의 공이 가장 탐이 나는지 물어봤다. “공보다는 돌부처라 불리는 오승환 선수의 마인드 컨트롤을 닮고 싶어요.”
유승안의 아들
2년 동안의 2군 생활 때문에 ‘유망주’라는 꼬리표는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유원상에게 떨어지지 않은 ‘유승안 전 한화 감독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버지랑 야구 얘기 잘 안 해요. 프로에 왔으니까 구단에 선수 관리를 맡겨야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요. 대신 말없이 믿음을 보여주셨죠.”
다만 데뷔 첫 해, 2군에서만 시간을 보낸 투수 아들, 유원상에게 포수 출신의 아버지, 유승안 전 한화 감독은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조급하게 굴지 마. 조급하게 해봤자 너만 다쳐. 성질 부려봐야 될 것도 안 되니까 천천히 니 페이스에 맞춰서 만들어봐. 너를 믿고. 아버지처럼.”
여드름 때문인지 아직도 소년 같은 유원상을 인터뷰하면서 슬며시 이런 기대를 가져본다. 한화의 토종 원투펀치, 좌진우-우민철의 계보가 좌현진-우원상의 시대로 이어지면 좋겠다! 한화의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유원상’ 이름 석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무튼 2007년 가을, 유원상이 발진했다. 그가 얼마나 멀리 달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