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 감독이 부임한 대전 시티즌이 기적적으로 6강에 오르자 팬들은 수원의 무적시대를 만든 ‘김호 마법’이 재현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김호~ 김호~ 김호~!”
서포터스는 노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영웅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취재진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똑같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샴페인만 빠졌지 이거 완전 우승 분위기네.”
올 시즌 전반기 대전은 단 2승밖에 거두지 못할 정도로 약체였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대전은 놀라울 정도로 끈끈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돌풍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이 같은 ‘변신’의 한가운데엔 바로 김호 감독이 있었다.
“뭐라고요?”
대전 직원들은 7월 13일 오전 김호 감독이 대전의 새 감독으로 뽑혔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사실 김 감독은 신임 감독 선임위원회와 면담을 한 최종후보 3인 가운데 선임 확률이 가장 낮은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이 대전 감독으로 급부상한 것은 확실한 비전 제시와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선임위원회에 다른 후보들보다 확실한 대전 재건 청사진을 제시했다. 김 감독의 똑 부러지는 공약을 들은 위원들은 ‘관리형 감독’에게 2년 정도 팀을 맡겨 만신창이가 된 팀을 추스르자는 기존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왕 바꿀 거 카리스마가 있는 거물을 데려와 팀을 아예 일신하자고 결정했다.
김 감독은 같은 달 1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 SC 인터나시오날(브라질) 간의 친선경기부터 벤치에 앉았다. 이날 주요 일간지들은 아시안컵 기간이었음에도 김 감독의 데뷔전 취재를 위해 수많은 기자들을 대전에 내려보냈다. 자연스럽게 김호란 브랜드의 무게감과 상품성이 확실히 각인됐다.
전임자인 최윤겸 감독은 재임 막바지에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렸다. 그의 권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추된 상태였다. 쉽게 말해 ‘아무나’ 감독을 걸고넘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 감독이 부임하면서 감독을 얕보는 분위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워낙 거물인 데다 최 감독이 물러나면서 대전의 치부가 다 드러났기에 ‘작전세력’이 활동할 여지가 없었다.
김 감독은 대전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 안 돼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전 지휘봉을 5년 정도 잡고 싶다”는 말을 했다. 대전에서 지도자 인생의 황혼을 불태울 결심을 한 만큼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룰 수 있도록 일정 기간을 보장받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김 감독은 대전과 7월 ‘2년 6개월’짜리 계약을 했다.
김 감독은 8월 말 구단 프런트에 23개에 달하는 요구안을 내밀었다. 선수단 세대교체와 훈련장 확보, 용병 교체 계획, 유망주 발굴 등이 골자였다.
김 감독은 구단을 압박(?)하면서 선수단 체질개선 작업에도 들어갔다. 수비 위주의 대전 축구를 공격축구로 바꾸고 베스트 11에도 변화를 주며 ‘함께할 선수’와 ‘이별할 선수’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각 구단에 흩어져 있는 ‘김호 아이들’의 대전 입단 여부를 타진했다.
대전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김 감독이 이번 겨울을 기점으로 자신의 색깔을 더욱 확실히 드러낼 것이라고 내다본다. 팀 컬러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이제 선수단 구성에 일대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 대전 선수단에는 올 연말 김 감독이 주도한 대전과 수원의 2 대 2 트레이드가 성사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전반기 단 2승에 그쳤던 대전은 김 감독이 부임한 후반기 들어 파죽의 5연승을 포함해 총 8승을 거뒀다. 전반기에는 무승부가 7번 있었는데 후반기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기든 지든 화끈한 축구만 선보였다. 팬들은 수원의 무적시대를 이끌었던 ‘김호 마법’이 대전에서 재현되는 게 아니냐며 들뜬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최근의 성적을 놓고 김 감독이 부임 3개월 만에 팀을 환골탈태시켰다고 보는 것은 ‘오버’다. 대전의 상승세는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로 선수단이 긴장을 해 주전경쟁 체제로 들어갔고 여기에 김 감독의 노련한 용병술과 치밀한 전술이 상승작용을 해 일어난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김 감독은 이런 ‘냉정한 해석’에 동의한다. 자신이 추진하는 대전 재건은 진행 중이며 오히려 6강 플레이오프 진출 같은 소기의 성과가 다소 일찍 온 것 같다고 인정한다.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인 ‘김호 마법’. 노장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기적은 아직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광열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