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4개국 피 물려받다
김윤숙 씨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김민수의 혈통에 대해 설명했다. 97년 46세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뜬 김민수의 아버지 페르난데스는 정통 스페인인 부친과 독일계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따라서 김민수의 몸에는 최소한 4개 민족 이상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중 한국 혈통이 50%라는 것. 김민수는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친할머니의 영향으로 지금도 폴란드 만두인 ‘필로기(pliogi)’를 가장 좋아한다.
1977년 김 씨와 결혼한 페르난데스 씨는 아르헨티나에서도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로 유명했다. 학창시절 농구선수로 활약했는데 여자들에게 워낙 인기가 좋은 나머지 운동하는 데 종종 방해를 받았고 결국 농구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다(이 대목에서 최부영 경희대 감독이 김민수가 아빠를 닮아 외모가 출중해 한국에서도 여자 팬이 많다며 그것만 조심하면 된다고 강조해 웃음이 터졌다). 이후 영화배우로 전업한 페르난데스 씨는 김 씨와 결혼을 하면서 특이하게도 자식들의 성에 아내의 성인 ‘김’을 함께 쓰도록 했다. 훗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막내 아들이 한국에서 ‘김 씨’ 성을 달고 태극마크를 달 것을 예견한 듯 말이다. 김민수의 아르헨티나 이름은 ‘훌리안 페르난데스 김’으로 한국에서 엄마의 성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195cm의 거구였던 아버지는 아리엘(29·195cm) 막시(28·187cm) 김민수(203cm) 등 세 아들에게 큰 키와 멋진 외모를 물려줬다. 특히 막내는 빼어난 운동신경을 물려받아 6세 때부터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함께 사는 게 ‘꿈’
김 씨는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지구를 3분의 2 바퀴나 돌았다. 아르헨티나 사람은 미국 비자를 좀처럼 받기 어려워 쇼트 코스인 미국을 거치지 못하고, 아프리카-중동-동남아시아를 거치며 3일 만에 한국에 온 것이다. 김 씨는 원래 부잣집의 8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올해 2월 작고한 선친은 대한석탄공사에 근무한 엘리트였다. 김 씨의 가족은 1966년 두 달 동안 배를 탄 끝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남자를 택한 김 씨는 결혼 초기 잠시 넉넉했던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았다. 1980년 초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잘 살았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경기 침체가 계속됐고 2001년 디폴트사태(국가채무불이행)를 맞는 등 경제사정이 크게 나빠졌다. 여기에 남편까지 잃은 김 씨는 옷가게 등 직장을 다니며 힘들게 세 아이를 키웠다. “큰애가 대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돈벌이에 나서는 등 고생이 많았고, 베베도 어렸을 때 농구뿐 아니라 공부도 잘했는데 뒷바라지를 잘 못했어요. 그나마 농구를 잘해 해외로 나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한국의 경희대와 인연을 맺게 됐죠.”
대학 최고의 농구선수로 내년 초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가 예상되는 김민수는 프로진출과 함께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다. 이왕이면 KCC나 SK 등 재력이 든든한 구단의 지명을 받아 수도권에 마마와 함께 살 아파트를 하나 장만하는 것이 김민수의 꿈이다. 김 씨도 “일단은 민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으로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말이라고는 “뽀뽀”와 “안아줘”밖에 모르던 김민수를 국가대표로 키워낸 최부영 감독이 “프로에서 더욱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다”는 충고를 했고 김 씨가 받아들인 것이다.
#민박집 ‘민수네’
아직 대학선수로 자신의 용돈도 변변치 않지만 김민수는 한국에 도착한 어머니에게 용돈 50만 원을 드렸다. 국가대표팀 수당을 받은 것을 모아놓았다가 내놓은 것이다. “돈 벌면 뭐할 거냐고요? 일단 엄마랑 한집에서 살면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가능하면 형들도 같이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김민수의 꿈은 이제 실현 직전에 와 있다.
김 씨는 막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경희대와 잊었던 조국에 대해 연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 씨는 10월 말 군산에서 열리는 대학농구연맹전을 직접 관람하는 등 약 한 달간 한국에 체류한 뒤 11월 중순 아르헨티나로 돌아간다고 한다. 내년 초 드래프트를 통해 아들의 프로진로가 결정되면 아르헨티나 일을 정리한 후 한국에 정착할 예정이다. 김 씨는 3개월 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국의 배낭 여행족을 위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남미대륙에 몇 개밖에 없다는 민박집의 이름은 ‘민수네’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