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 관중들이 꽉 들어차 각 팀을 응원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 23일 3차전 당시 두산과 SK 선수들 간에 빈볼 시비가 붙어 몸싸움이 벌어졌던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한국시리즈가 뚜껑을 열자마자 명승부가 연출되기 시작했고, 구름 관중이 야구장을 메웠다. 이 같은 흥행 대박에는 양 팀의 팽팽한 감정 싸움도 한몫했다. SK 김성근 감독과 두산 김경문 감독의 팽팽한 신경전, 선수들의 몸싸움, 예상을 뒤엎는 경기 내용 등 화젯거리가 많았다. 이번 한국시리즈의 최고 화두였던 집단 몸싸움에 대해 짚어봤다.
#왜 일어났나
10월 23일 한국시리즈 3차전. 6회에 두산 투수 이혜천이 SK 김재현의 뒤쪽으로 원바운드 공을 던진 게 빌미가 됐다. 흥분한 김재현이 마운드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불만을 표시했고, 즉각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왔다. 이혜천은 이미 SK 정근우의 몸을 한차례 맞혀 경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집단 난투극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선수들은 주먹을 휘두르는 등 꽤 심각한 싸움이 됐다.
직접적인 원인은 빈볼 시비였다. 김재현을 포함한 SK 선수단은 이혜천이 명백한 빈볼을 던졌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보통 심판들이 투수가 던진 공이 빈볼인지 아닌지를 가장 잘 판단한다. 기자가 나중에 당시 경기 심판들에게 취재한 결과 “이혜천의 투구는 빈볼이 맞다. 김재현을 맞히지 않고 등 뒤로 날아간 건 제구가 안 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두산이 전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김재현 타석 때 빈볼 시비가 나기 전까지 양 팀의 몸에 맞는 볼 숫자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SK 투수들은 7차례, 두산은 1차례뿐이었다. SK 투수들이 기록한 7개의 사구 가운데 과연 몇 개가 고의였는가를 떠나서 일단 많이 얻어맞은 두산 선수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이에 앞서 1차전 때 SK 내야수 정근우가 2루에서 두산 이종욱의 발을 팔로 걸어 넘어뜨렸던 사실 때문에 두산 선수들은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다.
2차전에서도 두산 김동주가 SK 투수 채병용의 공에 한 차례 엊어맞은 뒤 항의하는 과정에서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가 대치했었다. 그 당시 김동주에게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사실. 그 사건 이후 채병용이 흔들리면서 두산이 2차전에서 승리했으니 결국 SK 선수들도 두산 쪽에 악감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4차전부터는 양 팀이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겠다는 공동 선언을 하고, KBO도 적극 중재에 나서면서 상황이 정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두산 쪽 선수들은 “아직도 열받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 SK 선수들은 신사적이지 못하다”면서 흥분했고, SK 선수들도 “단순히 몸에 맞는 공 숫자만 따져서 피해자라고 우기는 게 말이 되나. 어처구니 없다”고 항변했다.
#몰카 해프닝이 시작
지난 22일 문학구장 1차전에서 발생했던 ‘몰래 카메라 소동’은 이번 한국시리즈가 결코 평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던 사건이었다.
1차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중에는 취재진에게 몰래 카메라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런데 두산이 승리한 직후 두산 쪽에서 “몰래 카메라 해프닝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착각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 죄송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미 경기가 끝났고, SK의 공식적으로 큰 대응도 없었기 때문에 언론에선 상세히 소개되지 않은 채 언급하는 수준으로 넘어갔지만 그 여파는 꽤 컸다.
상황은 이랬다. 이날 1차전이 열리기 직전 두산 불펜 보조요원이 SK 더그아웃에 들러 공인구를 수령하는 과정에서 3루 쪽 SK 더그아웃 옆 펜스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창고 쪽에도 얼핏 카메라의 흔적을 찾아냈다. ‘SK가 구멍을 통해 몰래 경기 장면을 촬영하면서 사인을 훔치고 있다’고 판단한 불펜 보조요원은 구단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두산에서는 흥분한 나머지 SK에게 사실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SK는 올 정규시즌 때에도 2루 주자가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쳐서 타자에게 전달한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급작스런 상황에 SK 프런트 역시 깜짝 놀라 경기 내내 상황 파악을 위해 분주하게 오갔는데 몰래 카메라는커녕 의심을 살 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는 걸 파악한 뒤 역으로 두산에 항의했다.
이후 두산에서 진상 조사를 벌였고 결국 몰래 카메라는 없었고 불펜 보조요원이 착각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뒤늦게 두산은 홍보팀을 통해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린 것이다.
SK는 겉으론 크게 대응하지 않았지만 불쾌한 감정이 많이 생겼다. SK 한 관계자는 “어떻게 그런 시비를 걸 수 있는가. 참 너무한다”면서 “두산에서 일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또 일방적으로 사과하면 끝인가”라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몰래 카메라 소동’은 어찌 보면 이번 한국시리즈의 치열한 감정 싸움을 예고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