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동렬(왼쪽), 김시진. | ||
# 감독은 나의 운명
‘다시 태어나도 감독을 하고 싶나’라는 질문에 김성근 감독은 “그렇다. 감독은 나의 천직”이라고 답했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못 말리는 수준이다. 얼마 전 끝난 한국시리즈에서도 그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 오전에는 2군 선수단에 들러 유망주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선동열 감독은 다소 유머 섞인 응답을 내놨다. “야구 선수의 꿈은 당연히 감독이다. 다시 선택하라 해도 감독을 하고 싶다. 단, 성적이 좋을 때”라고 선을 그었다. 성적 그래프에 따라 감독은 매일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뜻이다. 조범현 감독도 “대답은 예스다. 매력 있는 직업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시진 감독은 “코치 시절에는 선수를 육성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는데 글쎄, 감독이란 자리가 힘들지만 역시 다시 하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차분한 답변을 했다.
# 이럴 때 화난다
‘감독직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김성근 감독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어떤 팀이든 처음 그 팀을 맡아 첫 훈련을 시키는 순간이 가장 그만두고 싶은 때다. 왜냐고? ‘얘들을 데리고 대체 어떻게 야구를 하나’ 하는 생각과 한숨만 나오기 때문이다.” 김시진 감독은 팬들의 시선을 많이 느끼고 있음을 밝혔다. 김 감독은 “요즘 원체 인터넷이 발달돼 있다 보니 경기 후에 감독의 작전을 놓고 팬들이 비난할 때가 많다. 선수나 감독 모두 팬을 등에 업고 가야 하는 직업이다. 팬들을 이해시키는 야구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 스스로 반성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선동열 감독은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경기에서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조범현 감독은 “아직 감독 경력이 짧아서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감독들은 평소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김성근 감독과 선동열 감독은 “운동이다. 주로 걷는다”라고 답했다. 선 감독의 경우 과거엔 술과 담배가 주 해소법이었지만 최근 들어 운동으로 바뀐 케이스. 조범현 감독은 “잔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6시간 정도 푹 수면을 취하면 한결 나아진다”고 비법을 설명했다. 김시진 감독은 숙소에서 혼자 덩그러니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캔맥주 한두 캔을 비우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 그들의 또 다른 인생
감독들도 사람이므로 또 다른 인생을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감독 말고 꼭 해보고 싶은 직업이 있다면’을 질문했더니 선동열 감독은 대뜸 “사업가”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의 선 감독에게는 “공부를 했어도 잘 했을 것 같은 인물”이라는 평가가 따라붙곤 했다. 카리스마가 있고,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선 감독이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쯤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쯤은 당연히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시진 감독은 ‘문학 소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기행문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가 되는 게 어릴 때 꿈이었다고 한다. “정규시즌 때 팔도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 꿈이 반쯤은 실현된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더니 김 감독은 “그거? 그건 여행이 아니라 업무잖아. 그런 여행으론 안 되지” 하면서 웃었다. 김성근 감독은 다소 엉뚱하게도 “나는 야구단 사장은 못 된다. 인기가 없어서”라고 답한 뒤 “다른 직업? 뭐가 됐든 야구와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범현 감독도 “야구 외엔 하고 싶은 직업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 김성근(왼쪽), 조범현. | ||
이번엔 ‘좋아하는 선수와 싫어하는 선수의 스타일을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감독 4명이 모두 열정 있는, 노력하는, 훈련 때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선수를 좋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일반 사회 생활에서도 당연한 기준일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의 신’이란 닉네임답게 “스스로 한계를 긋는 선수들이 싫다. ‘나는 여기까지야’라고 단정짓는 선수들이 있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옆에서 보면 다 보인다”고 설명했다. 선동열 감독은 “말 안 듣는 선수”라고 표현했는데, 이 역시 시킨 대로 따르면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를 지칭한 것이다. 김시진 감독도 “능력 있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선수는 좋아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범현 감독은 “목표 없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하루 대충 사는 선수들은 반드시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다”고 밝혔다.
# 노후자금은 10억쯤?
프로야구 감독들은 현직에 있을 때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교되며 대통령 다음으로 희귀한 직업으로 존경받는다. 그러나 해임되면 그 순간 야인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감독들은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건 야구만 생각하면서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감독들도 직장인이다. 마지막 질문은 ‘얼마를 모아야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김시진 감독은 “사회통념상 집과 자동차를 빼고 10억 원 정도를 갖고 있어야 중산층 이상이고 잘 산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다. 다른 감독들은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지 않았다. 선동열 감독은 “남한테 신세 지지 않고 자식들 키울 만큼이면 된다”고 했고, 조범현 감독과 김성근 감독은 특별히 답하지 않았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