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WKBL | ||
SBS스포츠의 김남기 해설위원(전 연세대 감독)은 11월 초에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찜찜하다. TV중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이날 중계를 한 A 팀의 코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런 경우 대개는 뭐 “중계 잘 들었다”는 식의 인사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까만 후배인 이 코치는 김 위원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이날 해설에서 자기 팀을 너무 ‘깠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던 김 위원은 녹화테이프를 다시 봐 가며 자신의 해설을 체크했는데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억울했지만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농구해설자는 전직 농구지도자이고 또 다시 현장 컴백을 원하고 있다. 이런 작은 문제로 구단과 시비를 크게 벌이면 나중에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벌써 3년째 마이크를 잡고 있는 Xports의 김유택 해설위원(전 명지고 감독)은 중계팀과 사이가 좋기로 유명하다. 입담이 좋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 중계팀 식구들과 호형호제하며 가까이 지낸다. 그런 까닭인지 시즌 초반인 최근 선후배들로부터 다수의 ‘민원’을 받았다. 지난해 3명의 해설위원을 쓴 Xports가 올해는 최인선-김유택 ‘투톱’ 시스템으로 진영을 꾸리자 혹시 남은 한 자리에 자신을 좀 추천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인원 보강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위원은 “예전 실업 때는 은퇴선수들이 직장생활을 했지만 프로 10년을 넘기면서 은퇴 후 지도자 등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쉬는 농구인이 많다. 그래서인지 해가 흐를수록 방송 해설자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구 열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요즘 남녀 프로농구코트에서 벤치의 맞은 편에 앉아 ‘입’으로 먹고 사는 방송해설자는 10여 명에 달한다. Xports(2명)와 함께 남자프로농구 중계방송사를 맡고 있는 SBS스포츠는 이명진 해설위원과 전속계약을 했고, 별도로 김동광(전 안양SBS 감독) 김남기 위원과 바우처계약(회당 출연료 지급)을 맺었다. 여기에 SBS스포츠는 여자프로농구 중계에서 이영주(전 신한은행) 정태균(전 국민은행) 전 감독을 해설위원으로 위촉했다. 또 인터넷TV중계인 WKBL-TV는 유영주(전 국민은행 코치), 신혜인(전 신세계 선수), 차양숙(전 국가대표 선수) 위원 등이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도 남자의 경우 지방 방송사에서 강정수(전 중앙대 감독) 등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얼짱 스타’로 이름을 날리다 일찍 은퇴한 신혜인과 대한농구협회 전무를 역임하는 등 농구행정가로 진로를 정한 이명진 위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해설위원들은 모두 지도자 재기를 노리고 있다. 소속팀이 없을 경우 농구장에 다니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집에서 TV 관전만 하면 구단관계자 등 농구판에서 잊혀질 우려가 있다. 이런 까닭에 방송 농구해설자는 차기 지도자로 나가기 위한 전 단계로 제격인 것이다. 때론 해설과 관련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만큼 요즘 국내농구계에서 방송해설위원은 인기직종이다.
▲ (왼쪽부터) 이영주, 정태균, 유영주 | ||
최근 농구해설자가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남자보다 여자 쪽에 그 원인이 있다. 그것도 TV가 아닌 인터넷TV중계를 통해서다. 지난 겨울리그에서 ‘유영주 어록’이 나올 정도로 호탕한 비방 용어로 농구중계에 새장을 연 유영주 위원이 2년차를 맞아 최근 한층 업그레이드된 입담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힘이 좋은 신정자는 여자선수들 사이에서 표도르(이종격투기선수)로 통합니다.” “아이쿠 이런, 빽차(에어볼)가 났어요.” 등의 걸쭉한 표현이 연일 쏟아진다. 여기에 자신과 친한 선수들을 응원하거나 거꾸로 모질게 평가하는 편파해설까지 곁들여진다. 스스로 “안티팬 100만 명 만들어 여자농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유영주 위원은 “2005년 12월에 낳은 아들 쌍둥이가 조금 있으면 두 돌이다. 나 정도 되니까 한 번에 애 둘 낳고, 그리고 씩씩하게 해설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일단 해설로 여자농구 인기 부활에 밑거름이 되고 싶고 이후에는 지도자로 다시 나서고 싶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시아 여자농구 최고의 파워포워드였던 유영주가 뜨자 이번엔 신혜인이 나타났다. 2005년 심장부정맥으로 갑자기 은퇴했고 올 초 서울여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갑자기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11월 7일 삼성생명-신세계전에서 해설자로 데뷔, 유영주 위원 못지않게 큰 화제를 뿌렸다. 유 위원의 콘셉트가 ‘엽기’라면 신혜인은 ‘소탈’이다. WKBL의 도영수 마케팅 팀장은 “인터넷 TV 중계 시청자가 3만 명이 넘고 있다. 이는 남자농구 인터넷 중계를 뛰어넘은 수치”라며 반색을 나타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