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내내 신지애는 솔직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어렵사리 인터뷰를 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어떤 걸 물어봐야 서로 식상하지 않을까?’였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짠 끝에 ‘골프 9단’ 신지애(19·하이마트)의 ‘예스 or 노’였다. 골프 국가 대항전 한일전 출전을 위해 11월 27일 출국한 신지애를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피곤이 잔뜩 묻어난 얼굴이다. 모자를 뒤집어쓰고 아버지 신재섭 씨와 같이 있는 신지애를 처음엔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인터뷰 전날 개인 연하장을 제작하기 위해 난생 처음 청담동 미용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했는데 뭐든지 골프말고는 힘들다면서 혀를 내두른다. 공항 식당가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신지애의 손톱이 눈에 띈다. 손톱을 자주 물어 뜯어 일부러 네일케어를 받는다면서 핑크색으로 프렌치한 손톱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나이로 스무 살. 골프에선 천재 소리를 듣는 그이지만 사회에선 마냥 소녀같고 순진하면서도 발랄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신지애의 예스 or 노를 시작해본다.
신지애는 화낼 줄 모른다?
“그렇지 않아요. 저도 사람인 걸요? 공이 안 맞을 때는 많이 열 받는 편이죠. 골프선수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신지애는 아버지(아버지 신재섭 목사)랑 함께 다니는 걸 좋아한다?
“누가 그래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작년 2월인가? 프로 데뷔 직전에 대만 가서 시합을 했거든요. 그때 아빠가 제 플레이를 보시더니 많이 화를 내시는 거예요. 물론 아빠의 꾸중이 기분 좋을 리 없었죠. 그래서 우울해 하고 있는데 언니들(선배들)이 ‘네가 너무 아빠에게 기 죽어 있으니까 아빠가 더 뭐라고 하는 거다. 한번쯤은 아빠에게 대들 필요도 있다’고 충고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언니들 말만 믿고 생전 처음으로 아빠에게 대들었다가 아빠가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신다며 숙소를 나가시더라구요. 결국 제가 쫓아가서 싹싹 빌었고 나중에 2시간 동안 식당에서 설교를 들어야 했어요. 그것도 시합 중에 말이죠.”
신지애는 체력의 화신이다, 지칠 줄을 모른다?
“당근 저도 지칠 때가 있죠. 몸으로 버티고 있는 거예요. 정말 죽겠어요. 한국 대회와 외국 대회를 수시로 다니는 스케줄이 만만치 않아요. 이번에도 일본 갔다가 렉서스컵 참가 차 바로 호주로 이동하거든요. 그나마 이런 튼실한 체격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답니다(웃음).”
프로암 대회 때 신지애 인기가 최고다?
“그건 ‘예스 or 노’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겠어요. 저랑 치시는 분들 대부분이 기업체 CEO 분들이거든요. 딸처럼 생각하셔서 그런지 라운딩하면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가끔 용돈도 주시고 선물도 보내주시구요. 어떤 회장님은 볼 치시다가 아는 분들에게 전화해서는 ‘나, 신지애 프로랑 공 친다’라고 자랑하시더라구요. 어찌나 재밌던지. 아, 참! 이건 처음 밝히는 건데 얼마 전에 연예인 전지현 씨랑 같이 라운딩을 한 적이 있어요. 프로암대회는 아니었구요. 회사를 통해서 연결이 돼 골프장에서 만났는데 정말 예쁘더라구요. 전지현 씨가 저한테 이런 조언을 해줬어요. 나중에 남자 친구 생기면 골프장에 데려오라구. 제가 공치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라면서요. 그렇게 유명한 분이 절 알아봐주니까 되게 신기하대요. 탤런트 이순재 선생님도 만난 적이 있는데 ‘신지애 프로’라고 부르면서 깍듯하게 대해주셨어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지애는 한국보단 외국 대회가 더 어렵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요? 외국 대회 경험이 훨씬 적으니까. 그래도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었어요(올시즌 US오픈 6위, 브리티시오픈 공동 28위, 에비앙마스터스 공동 3위). 하지만 미국 골프 무대를 처음으로 경험해본 SBS하와이오픈 대회는 저랑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하와이의 지형 자체가 섬이라 그런지 잔디가 굉장히 짧고 지면이 딱딱해요. 임팩트할 때 많이 찍어 쳐야 하고 볼의 탄도가 높지도 않구요. 하와이 하면 별로 안 좋은 기억만 나요.
신지애가 가장 존경하는 골퍼는 줄리 잉스터다?
“맞아요. 남아공화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대회 때 처음으로 그 분을 뵈었어요. 성격이나 매너, 생활 모습 등이 남다르더라구요. 정말 존경한다는 말리 절로 나온다는…. 그러다 하와이에서 다시 만났는데 아는 척을 해주셔서 기분 좋았어요. 영어만 잘했어도 인상 찐하게 남기는 건데….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케 해주셨던 분이었어요. 요즘엔 오초아 선수도 주의 깊게 봐요. 세계 1등이니까 뭐라도 다를 거라는 생각 때문에 관심이 많이 가죠.”
“그런 감정 털어낸 지 오래 됐어요. 물론 외국 대회 나가면 다른 선수들은 모두 엄마랑 같이 다니잖아요. 엄마들이 이것저것 챙겨주는 걸 볼 때면 솔직히 부럽기도 해요.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아빠 대신 엄마랑 다녔을 거예요. 엄마랑 같이 다닐 때 성적이 더 좋았거든요. 아빠는 무섭기도 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뭔가가 있어요. 그럴 땐 엄마가 많이 그리워요.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속상해하진 않아요. 엄마가 없다 보니까 예전보다 사람을 더 많이 사귈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신지애도 외모에 불만이 있다?
“언니, 저도 여자예욧!!(웃음) 외모에 신경을 쓰긴 하는데 크게 불만이 있진 않아요. 사람들이 제가 엉뚱해서 재미있고 귀엽대요. 한 가지 신경 쓰는 부분이라면 다이어트. 이 체중에서 더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 정도. 제가 1kg이라도 살이 더 찌면 손이 부어서 공 치기가 힘들어요. 감각이 둔해지는 거죠. 현상 유지가 최고의 목표입니다(웃음).”
신지애도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 한다?
“전 이미 늦었어요. (수술)하려면 프로 데뷔 전에 했어야 하는데 이미 제 옛날 사진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하려고 해도 안 돼요. 그런데 언니들 하는 말이 2년 전에 비해 제 얼굴이 달라졌대요? 카메라 마사지라는 말 아세요? 하도 많이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까 조금씩 ‘화면발’ 받는 얼굴 형태가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ㅋㅋ 언니들이 저더러 ‘용 됐다’고 해요.”
만약 신지애가 미스코리아 뺨치는 외모였다면 골프를 잘 못 쳤을 것이다?
“아니요. 지금의 승부욕만 있었다면 외모와 실력은 상관없었을 거예요. 오히려 얼굴도 예쁘고 공도 잘 쳤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캐디로 백을 멨을 때가 훨씬 더 편했다?
“흐흐, 이거 정말 솔직히 얘기해야 해요? 아빠가 싫어하실 텐데…. 사실 제가 아빠의 카리스마에 제대로 주눅이 든 스타일이거든요. 아빠가 이렇게 치라고 하면 이렇게 치고 저리 치라면 저렇게 하고. 그러다보니까 나만의 플레이를 못했어요. 많이 부대꼈었죠.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도 못하고. 아빠가 백을 물려주고 캐디를 구하면서 저도 조금은 편해졌어요. ‘난 자유다!’하면서. 그래도 아빠는 변함이 없어요. 멀리서 지켜보다가도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마구 눈치를 주시니까요. 지난 번 에비앙마스터스에서 3위했을 때 아빠 없이 매니저랑만 갔다 왔거든요. 귀국하니까 아빠가 ‘내가 갔으면 우승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전 속으로 ‘아빠가 갔으면 10등 못 했을 거예요’라고 말했죠. 큭큭”
아빠가 목사라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를 준다?
“골프가 잘 안 되면 성질이 나기 마련이잖아요. 채도 내려칠 때도 있구요. 그러면 아빠가 막 뭐라 하세요. 이미지 안 좋아진다구.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잖아요. 당당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그렇게 못할 때는 조금 힘들어지죠. 그런데 제가 너무 아빠에 대해 이상하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 없이 아빠랑 지내다보니까 사소한 다툼이 있는 거지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예요.”
신지애에게 공개하지 못한 남자친구가 있다?
“……. 말하기 곤란해요. 지금은. 있어도 없다고 해야 하고, 없어도 없다고 해야 하고(웃음). 있다고 말했다가 골프 성적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남친 때문에’라는 이상한 기사가 나올까봐 있어도 없어도 무조건 ‘없다’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대신 전 결혼은 빨리 하고 싶어요. 아빠는 스물아홉 살에 하시라고 하지만 빨리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했으면 좋겠어요. (한)희원 언니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걸 보니까 너무 부럽더라구요.”
신지애는 골프를 천직으로 생각한다?
“맞아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내가 골프 안 했으면 뭐 먹고 살았을까 하고. 골프하면서 유명한 분들도 많이 만나고 또 어린 나이에 프로 대접도 받고, 좋은 게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골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가끔은 눈물이 날 정도예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신지애는 인터뷰를 제대로 할 줄 알았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어도 얼굴 마주보고 하는 인터뷰에서 너무나 솔직하고 생생한 모습을 보여줘 오히려 기자가 ‘알아서’ 가려 써야 할 정도다. 국내대회에서 활동 중인 프로 골퍼들이 신지애가 미국 진출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골프 9단’ 신지애는 어느새 인생의 참맛을 조금씩 음미하고 있었다. 신지애, 그는 참으로 묘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