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명 선수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강대협(왼쪽)과 표명일. 그들은 어느덧 ‘식스맨들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 ||
정지원(정): 원주 동부에 김주성 선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두 분입니다. 듀오 표명일-강대협 선수의 인기가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요즘 기분이 어때요?
표명일(표): 항상 감사하죠. 팀이 1등이다보니 주위에서 더 잘 봐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오랜만에 집에 갔더니 옆집 아줌마가 절 알아보시는 거예요. 그런데 옆에 같이 있던 남편께서 “축구선수야?” 라고 말해 배꼽을 잡았습니다. 부상당하지 않고 지금의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강대협(강): 전 아직도 이런 인터뷰 자체가 어색해요.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일단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너무 좋아요. 그리고 6년째 열애 중인 여자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도 좋고요.
양정고와 명지대를 나온 표명일은 98년 1라운드 8순위로 부산 기아에 입단했다. 당시 기아에는 특급 포인트가드 강동희가 주전으로 있었다. 주전 자리는 꿈도 꿀 수가 없는 상황. 결국 2년 후인 2000년에 8개월 된 아이를 두고 상무에 입대했다. 표명일은 2002년 제대를 앞두고 강동희가 창원 LG로 트레이드됐다는 소식을 듣고 주전의 희망을 갖게 된다. 며칠 후 말레이시아로 마지막 해외경기를 떠난 상무의 표명일은 전주KCC로 트레이드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다. 당시 전주KCC에는 컴퓨터 포인트가드 이상민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들과 한 팀에 속했던 표명일은 영원한 벤치 멤버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해 표명일은 원주 동부로 이적했다. 신기성이 떠난 공백을 메우게 된 표명일은 파워풀한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변신했다. 특히 정확한 3점슛은 표명일의 전매특허. 전창진 감독은 더욱 적극적인 공격을 요구했고 표명일은 신들린 듯한 3점슛으로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정: 이상민의 그늘에 가려 져 있던 시절 때문에 그와의 대결은 남다를 것 같아요.
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사실은 그런 감정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상민이 형과 생활을 오래해서 잘 알기 때문에 편한 것도 있어요. 습관을 아니까요. KCC 시절 상민이 형 경기를 보면서 많이 배웠죠. 오히려 상대하기 거북한 스타일은 제가 전혀 모르는 신인들이에요. 올해는 유독 잘하는 신인들이 많아서 더욱 까다롭게 느껴져요.
정: 후배인 김주성과의 호흡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강대협은 부산동아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0년 2라운드 2순위로 대전 현대에 입단했다. 그 후 매년 팀이 바뀌는 ‘저니맨’ 신세가 됐다. 지난 7년 동안 여섯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고단한 시절이었다. 심지어 주변인들로부터 “네 목표는 전 구단 다 도는 거냐”라는 농담까지 들어야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1~2분 안에 뭔가를 보여준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강대협. 한때 농구를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올해 원주 동부에서 기량을 활짝 꽃 피우며 ‘잘 나가는 강대협’으로 인생역전을 이뤘다. 강대협의 역할은 상대 슈터를 전담 마크하는 찰거머리 수비수이면서 동시에 찬스 때마다 외곽에서 3점슛을 던져서 림에 꽂는다. 올해 동부는 골밑에서는 김주성과 오코사의 위력적인 높이의 공격이, 외곽에서는 표명일과 강대협의 자로 잰듯한 3점슛이 불을 뿜어대고 있다.
정: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나요?
강: 전창진 감독께서 제 능력을 잘 끌어주신 것 같아요. 전 감독의 스타일은 자기 스타일의 농구를 고집하기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을 파악해서 그 선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게끔 해주시는 편이죠. 혼도 많이 내시지만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여건을 만들어줘요. 또 모비스에서 1년간 함께 뛴 승기 형(김승기 코치)이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줬어요. 리더인 주성이도 제 고등학교 2년 후배이기 때문에 편하게 잘 지냅니다.
정: 나이가 적지 않은데 아직 총각인가요?
강: 올 시즌이 끝나면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와 결혼할 생각입니다. 그녀는 제가 힘들 때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을 보내줬어요. 2년 전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는데 제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스러울 따름이죠.
정: 마지막으로 두 선수가 언론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표: 식스맨은 출전 시간이 늘 1~2분 정도로 제한되기 때문에 항상 경직되어 있고 잘하려는 부담 때문에 에러를 범하기 십상입니다. 이럴 때 방송에서 “저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면 정말 상처받거든요.
강: 잘 알려지지 않은 시절에 기자들이나 방송인들에게 인사하면 쳐다보지도 않는 분들이 많아서 두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기분 좋은 것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아직 무명인 후배들이 “나도 형처럼 될 겁니다”라며 희망을 품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필자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의 아픔과 좌절이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선수들의 당면한 고통이라는 것도 깨우쳤다. 표명일과 강대협, 그들은 모든 식스맨의 희망이자 우상으로 거듭나고 있다.
엑스포츠 아나운서 국장
진행=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