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국 최고의 배구 센스쟁이’ ‘배구 천재’ ‘테크닉의 달인’ 등등 석진욱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너무나 다양하고 화려하다. 여러 차례의 수술과 재활, 재기 등을 반복하는 생활로 인해 수렁에 깊이 빠진 듯한 암담함, 절망감을 안고 산 적도 있지만 2008년 1월, 석진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김상우(김): 진욱아! 선배들이 은퇴하고 나면 그 빈자리가 커 보여야 하는데 지금의 삼성화재에선 그런 공백이 보이질 않아. 삼성화재가 이렇게 잘나가는 이유가 뭘까.
석진욱(석): 시즌 전에 선수들끼리 모여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잘하는 선배들이 나갔으니까 게임에서 진다고 해도 너무 부담갖지 말자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형들이 없으니까 후배들이 더 긴장했던 것 같아요. 더 집중하고 더 열심히 했어요. 특히 그 빈자리를 서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들도 펼쳤거든요.
김: 아주 바람직한 변화들이네. 그런데 시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풀세트 접전을 자주 펼치고 있어. 그러다보면 체력적인 면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석: 요즘엔 5세트까지 가는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요. 물론 감독님은 속이 타시겠지만 말이죠. 매스컴에선 삼성화재의 숙제를 노쇠화와 체력으로 보는데 정작 선수들은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체력 얘기를 꺼내는 건 게임에서 졌을 때 변명거리밖에 안돼요. 거듭 말하건 데 삼성화재의 체력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김: 무릎 수술로 많은 고생을 했지? 한두 차례가 아니었잖아. 복귀 과정도 힘들었을 것이고.
석: 오른쪽 한 번, 왼쪽 무릎을 세 차례나 수술했어요. 왼쪽 무릎을 두 번째로 수술할 때인가? 그때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재기가 힘들 것 같았고 무릎이 너무 안 좋다보니까 재기한다고 해도 다시 주저앉을 것만 같았어요. 걸어도 아프고 뭔가 하려면 통증이 생기고, 미치겠더라고요. 공을 만질 수도 없고 웨이트트레이닝도 못하고, 그럴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김: 이런 질문은 정말 낯 뜨거워서 내가 물어보기가 참 ‘거시기’하다. 석진욱하면 한때 다른 팀 감독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선수였잖아. 신치용 감독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구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선수라고 칭찬까지 하셨는데….
김: 최태웅, 장병철과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최태웅만), 실업팀, 프로팀까지 한솥밥을 먹었잖아. 20여 년간 같이 지내다보면 가족보다 더 친하다고 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의 단점이 있다면?
석: 태웅이랑 병철이 흉을 보는 거죠? ㅋㅋ 태웅이는 게임이 잘 안 될 때 더 소심해지는 스타일예요. 말수도 적어지고 혼자 인상 쓰고 있고. 병철이는 좋은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게임을 뛰지 못했잖아요. 병철이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지 못하고 놓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아요. 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김: 최근에 상대하기 어려운 팀을 꼽는다면?
석: 아무래도 현대(캐피탈)죠. 대한항공은 조직적인 움직임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러나 현대는 용병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는 건 지금의 선수들이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란 걸 증명하는 거죠.
김: 진욱이가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됐네.
석: 형, 저는요, 애들 자고 있는 모습 볼 때가 가장 행복해요. 아이들이랑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고 좋은 곳 구경 다닐 때 굉장히 뿌듯해요.
김: 미디어 가이드 북을 보니까 이상형을 ‘처’라고 했던데, 넘 심한 거 아냐? 하긴 진욱이 넌, 와이프에게 천사 같은 가장이지.
석: 전, 눈이 처진 여자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와이프가 딱 그런 눈을 가졌어요. 첫 눈에 반했을 정도였으니까.
김: 더 이상 그 얘긴 하지 말자. 닭살 돋는다. 진욱이는 다시 태어나도 배구 선수를 하고 싶니?
석: 그럼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지금은 배구가 너무 재밌어요. 다치지만 않는다면 오랫동안 선수로 뛰고 싶어요.
김: 잘 하니까 재밌는 거야. 난 부상 때문에 너무 힘들게 선수 생활을 해서 운동만큼은 선택하고 싶지 않다.
석진욱의 은퇴 후의 꿈은 배구 지도자다. 그러자 김상우 위원은 사랑하는 후배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진욱아, 미리 준비해야 해. 은퇴하고 나서 뭘 하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해. 은퇴 후의 막막함은 나 혼자 겪는 걸로 충분하니까 넌 꼭 미리 준비해서 시행착오 겪지 마라. 알았지?”
KBS N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
정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