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스는 지난 13일 3위 안양 KT&G를 86-80으로 꺾고 지긋지긋한 원정 16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허리부상에 울고 있던 간판스타 김승현이 코트로 복귀하면서 이동준, 전정규 등 동료 선수들의 플레이가 함께 시너지를 이뤄 얻은 결과다. ‘오리온스의 희망’ 김승현을 최강 인터뷰에 초대했다.
정지원(정): 시즌 내내 부상 때문에 거의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팀 성적은 늘 바닥입니다. 프로 데뷔 후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죠?
김승현(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느낌이에요. 프로선수에게 부상은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절감했죠. 지난 몇 년간 많이 무리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혹독한 훈련보다는 필요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어요.
정: 지난 13일 안양 KT&G를 상대로 또 승리했는데 오리온스가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앞서고 있는 팀이 강팀 KT&G라는 것이 참 의외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나요?
김: 신인 때 저희 팀이 정규리그 우승팀이었는데 당시 최하위였던 원주 삼보와의 상대전적이 3승 3패였어요. 농구에서는 꼴찌 팀이 1위 팀을 못 이기란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치업의 우위를 잘 활용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죠. KT&G와 오리온스는 매치업상 문제가 없다고 봐요. 그래서 오리온스 선수들이 더 자신감에 넘쳐 플레이합니다.
정: 데뷔 때부터 김진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는데 최근 이충희 감독과 김상식 감독대행 등 짧은 기간에 사령탑의 교체가 잦았어요. 이로 인한 문제점은 없었나요?
김: 선수라면 누구나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봐요. 세 분 모두 빠른 농구를 추구하는 분들이라 특별히 문제될 건 없었고요. 이충희 감독과 김상식 감독 대행의 스타일은 많이 다르죠. 이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알아서 맡기는 스타일이시고 김 감독대행은 세밀한 부분까지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주는 타입이에요.
정: 강동희, 신기성 등 특급 포인트 가드의 산실인 인천 송도고 출신인데 모교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아요?
김: 네. 분명히 있다고 봐요. 고 전규삼 선생님께서 ‘자율 농구’를 가르쳐주셨어요. 다른 학교의 경우 중고등 학생이 현란한 패스나 노룩 패스를 하게 되면 건방지다고 혼내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패스를 많이 연습했죠. 평범한 슛보다는 페이드 어웨이슛같이 멋진 동작을 많이 시도했었고 고수들의 화려한 드리블을 많이 배웠어요. 일단 가드들이 개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특급 포인트 가드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 어린 시절 김승현 선수의 롤모델은 누구였나요?
김: 당연히 강동희, 신기성 선배였죠. 강 선배는 TV로만 플레이를 봤고 신 선배는 직접 본 적이 많았어요. 두 분의 플레이 스타일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장점들만 뽑아서 닮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저는 두 분들과 또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요즘 NBA 피닉스 선즈의 스티브 내쉬를 보면서 저와 비슷한 부분들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더욱 유심히 그 선수를 관찰하게 됐죠. 패스도 정말 쉽게 하고 힘들이지 않게 하는 농구에 반했어요.
▲ 14일 동양오리온스 양지 훈련장에서 부상 이후 코트에 복귀해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스타 가드 김승현 선수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 제가 운이 좋았죠. 프로에 와서 좋은 멤버들과 결합한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데뷔 시즌(2001-2002) 당시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마커스 힉스와 라이언 페리맨이 있었고 김병철, 전희철 등 국내 슈퍼스타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어요. 저는 단지 기름칠하는 역할이었고요. 제가 패스할 선수들이 넘쳐났었고 그들이 모두 득점을 해주었으니까요. 정말 뿌듯한 과거예요.
정: 하승진 등 올해 드래프트된 후배 선수들이 같이 뛰고 싶은 선수로 대부분 김 선수를 지목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요?
김: 저와 같이 뛰면 재미있을 것 같고 또 제 플레이가 시원하고 화려한 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저를 통해서 쉽게 득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얘기를 꺼낸 게 아닐까요?
정: 반대로 본인은 앞으로 어떤 선수와 함께 농구를 해보고 싶나요?
김: (단숨에)저는 원주 동부 김주성 선수요. 지금까지 병철 형 등 좋은 슈터와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좋은 센터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국가대표팀과 올스타팀에서 손발을 맞춰보니까 김주성 선수와의 호흡이 가장 절묘했다고 느꼈어요. 김주성 선수는 키도 크지만 빨라서 속공 가담이 좋으니까 금상첨화죠. 또 (서)장훈 형도 함께 경기를 하고 싶은 선수예요. 개인적으로도 친한 데다 성격도 잘 맞고…. 하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네요(웃음). 제가 FA가 됐을 때 대폭 연봉삭감을 당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웃음)
한국 프로농구는 기라성 같은 포인트가드들을 많이 배출했다. 김승현은 강동희, 이상민, 신기성, 주희정 등 프로 10년을 빛내온 특급가드들과 또 다른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간다. 현란한 패스와 화려한 드리블, 그리고 경기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노련함으로 포인트 가드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했다. 엄청난 끼와 강한 개성으로 오해도 많이 받지만 농구 선수 김승현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대구 오리온스의 희망이 김승현의 손 끝에서 그려지고 있다.
엑스포츠 아나운서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