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직 존슨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현주엽. 때문에 요즘 어시스트 재미에 푹 빠졌다고.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지원(정): 현재 LG가 4강 직행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2위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죠?
현주엽(현): 지금 7경기가 남아 있고 적어도 4승 이상은 해야 2위가 가능하다고 봐요. LG는 삼성과 KT&G에게 상대 전적에서 뒤지고 있어 동률을 이룰 경우 힘들거든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죠. 어쨌든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 ‘포인트 포워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현주엽 선수의 어시스트 능력은 정평이 나 있는데 주로 본인이 직접 득점에 주력하던 프로 초반과는 경기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어요.
현: 농구를 시작할 때 저는 매직 존슨을 좋아했어요. 모든 플레이를 다 할 줄 아는 선수고 어시트스 패스도 정말 멋지죠. 그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득점에 욕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어시스트에 더 많은 재미가 붙었어요. 사실 프로 초반에 패스를 잘 해주는 가드를 만나지 못했던 것도 (플레이 스타일이 변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정: 결혼한 지 8개월이 흘렀는데 달라진 점과 2세 계획을 말해줘요.
현: 역시 혼자일 때보다 느껴지는 책임감이 다르더라고요. 2세는 정말 힘닿는 데까지 낳고 싶어요(웃음). 2명에서 3명 정도 낳을 계획인데 이번 시즌 끝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 볼까 해요(모두 폭소).
정: 농구대잔치 시절의 마지막 스타 세대잖아요. 종종 세월을 실감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현: 사실 매일 운동만 하고 살기 때문에 세월같은 건 잘 못 느껴요. 이상민이나 문경은 선배 등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자극이 많이 돼요. 요즘은 ‘농구는 경험이 중요하구나’ 라는 사실을 절감 중이에요. 젊은 체력도 중요하지만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이 더 중요할 때가 있거든요.
정: 포지션이 파워 포워드라서 외국인 선수와 포지션이 겹치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 토종 센터나 파워 포워드의 저변이 점점 얇아진다고 생각하나요?
현: 저는 처음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반대하지 않았어요. 용병들의 기량이 좋고 볼거리를 제공해주니까 나름대로 좋은 역할을 해왔다고 보는데 이젠 좀 1명으로 줄였으면 해요. 국내 선수들의 기량도 많이 향상됐기 때문에 1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 프로 진입의 문을 더 넓히려면 외국인 선수의 기용을 서서히 줄여야죠.
현: 아마 씨름을 했으면 천하장사가 됐을 거예요(웃음). 어릴 때부터 힘이 약한 편은 아니었어요. 또, 장신 선수들을 수비하다 보니까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고 그로 인해 손놀림도 빨라진 것 같아요.
정: 평소 깨끗한 농구 매너로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요.
현: 저도 원래 한성격해요.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많이 참는 편이예요. 그래서 손해도 많이 보죠. 코트에서는 깨끗하게 농구만 하고 싶어요.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화를 내면 반응을 보이니까 더 심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는 거예요.
정: 97 아시아올스타전에서 덩크슛을 하다가 백보드를 부숴버린 적이 있었어요. 저도 그날 중계방송을 하다가 엄청 놀랐거든요.
현: 경기 전에 홍콩에서 비싼 골대를 들여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일단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 것인지가 걱정되더라고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골대를 부순 적이 사실 2번이나 더 있었죠. 요즘은 부상 때문에 덩크슛을 아끼고 있어요. 혹시 시도하다 실패하면 정말 창피하거든요(웃음).
정: 최근 LG로 지명된 기승호 선수 말로는 현주엽 선수가 롤모델이었다고 하던데요?
현: (웃음) 승호가 사는 법을 아는 거죠. 솔직한 소감보다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정: 현주엽의 롤모델은 누구였나요?
현: 저는 어릴 때부터 허재 형을 좋아했어요. 대학 때 함께 경기도 해보고 대표 팀에서 한 방을 쓰게 됐을 때 정말 기뻤어요. 선수로 만나서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요. 허재 형은 후배들을 참 잘 챙겨주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그 자리에서 얘기하고 푸는 스타일인데 그런 성격을 저는 아주 좋아해요.
정: 경기 중에 외국인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던데 영어 실력이 되나보죠?
현: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말로 하는 거예요(모두 폭소).
인터뷰가 끝날 무렵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현주엽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다 끝났죠”라고 물었다. 아마도 혼자 인터뷰를 하는 것이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이게 바로 현주엽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말과 행동이 항상 몸에 배어 있는 현주엽이 왜 팀의 리더일 수밖에 없는 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엑스포츠 아나운서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