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프로배구 시즌 동안 프로팀이 아닌 초청팀의 신분으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상무배구팀의 최삼환 감독(53). 김호철(현대캐피탈), 신치용(삼성화재) 감독과 동갑내기인 최 감독은 입대와 제대를 하는 군인 선수들과 2년간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지난 4일, 김상우 해설위원이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를 찾아 최삼환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상우(김): 감독님을 찾아뵈면서도 뭔가 찔리는 게 있었어요. 그 마음 아시죠?
최삼환(최): 군대 때문에 그렇지? 상무 입대가 아닌 공익근무요원을 택했잖아. 네가 여길 거쳤다면 좀 더 달라졌을 텐데 말이야.
김: 그때만 해도 공익근무 기간이 군 생활보다 8개월이나 짧았잖아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하지만 공익 갔다가 코트로 복귀해서 제대로 뛰는 선수가 거의 없었어요.
최: 아마 상우가 유일한 케이스일 걸? 그런 점에선 넌 독한 녀석이야. 물론 지금은 은퇴했지만.
김: 어이쿠 감독님,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무팀을 오랫동안 맡고 계시는데 ‘승’보다 ‘패’가 많아서 스트레스가 많으실 것 같아요.
최: 요즘은 선수들이 상무로 오지 않으려고 해.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선수 수급이 쉽지가 않아. 부상으로 면제받는 선수들도 있고. 지금 상무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한 번 살펴봐봐. 소속팀에서 뛸 때 거의 벤치 신세였다고. 김상기(한전 소속)만 빼놓고는 말이야. 비주전 선수들을 데리고 주전으로 키우며 프로팀을 상대로 싸운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그래도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 내가 데리고 있던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가서 주전으로 뛸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게 돼.
김: 최삼환 감독님 하면, 선수들 사이에서 ‘호랑이 감독’으로 소문 나 있어요. 군기가 제일 세다고 들었는데요.
최: 아무래도 군인 팀이다보니까 프로팀과는 달리 규율과 통제가 엄격하잖아.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선수들을 내몰지는 않아. 잡을 땐 화끈하게 잡는 대신, 풀어줄 땐 제대로 풀어주는 스타일이거든.
김: 정이 들만 하면 선수들이 제대를 하잖아요. 그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지시겠어요.
최: 2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되거든. 입대와 제대가 반복되는 상황들이지만 선수들이 제대할 때는 마음이 아주 불편해져. 나가는 선수들과는 인사도 안 하려고 해.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거든. 선수들과 이젠 좀 해볼 만하다 싶으면 제대를 하니까 허탈하기도 하고.
최: 여기도 마찬가지야. 모든 권한은 감독에게 있어. 한전과 경기 있을 때는 미리 외박증을 끊어서 갖고 나가. 이기면 외박 보내주려고. 선수들한테는 돈보다 하루 외박이 엄청난 당근 효과를 주거든.
김: 선수들도, 감독님도 한전과의 경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최: 그럴 수밖에 없지. 이길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하니까 죽을 둥 살 둥 들이대는 거지. 그런데 한전이 내년부터 프로팀으로 출전하면 우린 라이벌이 없어져서 쓸쓸할 것 같아.
김: 그렇다면 프로팀 경기에선 져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최: 그걸 말이라고 하나. 감독이라면 경기마다 다 이기고 싶지 누가 지려고 경기를 하겠어. 그러나 용병이 없는 상태인 데다 전력면에서 차이가 나다보니까 이기는 게 쉽지 않아. 내가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야. 3-0으로 지는 것과 3-2로 지는 건 큰 차이가 나거든.
김: 시즌 개막 전에 용병 출전 제한을 주장하며 리그 불참을 거론하기도 하셨어요.
최: 각 팀의 용병이 경기 승패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우린 너무나 불리한 조건이잖아. 외국인 선수를 군에 입대시킬 수도 없고. 상무 경기를 응원하는 대한민국 군인들이나 가족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상무가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프로팀에 배려 아닌 배려를 부탁한 거야. 그러나 사실 쉽지 않은 일이지. 한 세트나 두 세트 용병을 빼고 경기를 치른다는 게 프로팀 감독으로선 큰 모험이니까.
김: 김호철, 신치용 감독님과는 특별한 관계시잖아요. 친분도 두텁고. 평소 자주 만나시는 편인가요?
최: 보안사 군대 동기들이야. 그 당시 일어났던 얘기를 꺼내라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야. 개성들이 강해서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았거든. 통일화 문제로 치용이 기합받은 거 하며 까불거리는 호철이가 어떻게 군 생활을 했는지, 할 얘기 정말 많아. 그런데 지도자로 만나니까 또 다른 느낌이더라고. 어떤 감독은 상무팀에 선수 준다고 철썩같이 약속해놓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려 날 많이 힘들게 했지.
김: 혹시 프로팀 감독에 대한 욕심은 없으세요?
최: 기회가 주어지면 (프로팀에서) 하고 싶어. 좋은 선수들 데리고 보란 듯이 경기를 풀어나가고 싶고. 더욱이 프로팀에 가면 연고지가 있잖아. 팬들이 있다는 건 승리 외의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
현재 배구 선수로 활약하는 선수들 중 80%가 ‘한때’ 제자였다는 최삼환 감독. 김상우 위원에게 자신의 남다른 애환과 보람을 전하는 표정 속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어떤 지도자들보다 만남과 이별에 대해 진한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 최 감독의 인생이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그래서 더욱 속이 꽉 차 보인다.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정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