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정): 지난 12일 전주KCC에게 패한 것이 4강 직행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생각하는데요.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을까요?
주희정(주): 그날 잠을 못 잤어요. 상황이 더 어렵게 됐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요.
정: 최근 팀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를 뭐라고 생각해요?
주: 일단 챈들러와 커밍스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또 상대팀들이 우리 팀의 공격과 수비에 대해 더 많은 대비를 하고 나와요. 물론 어린 선수들의 성급한 플레이도 원인 중의 하나가 됐지만요.
정: 지난 2000-2001시즌 챔피언전 MVP에 오른 적이 있지만 아직 정규리그 MVP는 수상한 적이 없어요. 이번이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아요.
주: 솔직히 받고 싶죠.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큰 상이 아닌가요? 사실 올해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팀 성적이 떨어지면서 조금씩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어요. 요즘은 MVP에 욕심을 냈던 자신이 부끄러워요. 감독님과 후배들에게도 미안하고요. 현재로서는 마음을 거의 비운 상태죠.
정: 올해 가장 달라진 점 한 가지가 너무나 정교해진 ‘슈팅’이에요. 사실 예전에 “포인트 가드 주희정은 뛰어난 선수지만 슛이 없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잖아요. 그 말이 이젠 완전히 거짓말이 됐더라고요. 슛 능력을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주: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슛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대학 2학년 때부터 슛 연습을 시작했는데 도저히 안돼서 포기했죠. 그러다 원주 나래 시절에 다시 슛 연습을 재개했지만 슛 폼을 6번이나 바꿨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삼성으로 이적 후 슛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어요. 고 김현준 코치와 문경은 선배에게 많이 배웠죠. 본격적인 슛 훈련은 3년 전부터 정말 죽도록 연습했어요. 손목이 부러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슛 밸런스가 잡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결과가 올해 드러난 거예요.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슛도 연습으로 가능하다고 확신해요.
정: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원주 나래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는데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주: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어요. 할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병이 나시는 바람에 제가 돈을 벌어야했어요. 처음에는 농구를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서 장사를 하려고 했다가 갑자기 최명룡 감독님과 이재호 코치님께서 불러주셔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결심했어요. 프로원년 97년에 연습생으로 6개월간 140만 원을 받으면서 활약했죠.
정: 연습생 입단에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나요?
주: 절대 아니죠. 당시엔 연습생도 너무 감사했어요. 그 시절 전 1000원도 쓰기 어려운 처지였어요.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고마웠고요. 너무 힘든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자 축복이었어요.
정: 정말 묻기 어려운 질문을 할게요. 부모님은요?
주: 어머니는 사진으로만 만났고요. 아버지는 몇 년에 한 번씩만 만날 수 있었어요. 제가 프로에 입단하자 아버지가 병든 모습으로 나타나시더라고요. 어머니는 2002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간암으로 2003년에, 아버지 역시 간암으로 2004년에 돌아가셨어요.
정: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정말 크게 상심했겠어요.
▲ 안양 KT&G 홈구장에 책상을 놓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마치 주희정 선수의 속마음을 취조하는 듯하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정: 지나친 훈련으로 오히려 코칭스태프나 후배들에게 걱정을 끼친다고 들었어요.
주: 후배들이 저에게 “미치지 않았느냐”고 놀리기도 해요. 그 정도 위치면 가족들을 더 배려하고 훈련을 적당히 해도 되는 게 아니냐고들 하는데 전 아직도 배가 고파요. 제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죠. 제가 올해 MVP를 받는다 할지라도 만족하지 않고 내년 시즌에 더 열심히 뛸 거예요. 체력이 받쳐주는 한 저의 지옥훈련은 계속됩니다(웃음).
정: 유난히 징크스가 많다면서요? 소개 좀 해줘요.
주: 제가 생각해도 많은 편이에요. 경기 전날 절대로 계란을 먹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리고 좀 창피한 얘기만 경기 전에 소변을 보고 나서 물을 내리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하니까 이환우 코치님까지 똑같이 하시더라고요. 또, 경기 전 슛 연습을 할 때 우리 연습 공이 상대 코트로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징크스가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코너에서 슛을 쏘지 않고 모두 정면에서만 슛을 쏘아요(웃음). 이것은 김동광 전 감독님의 징크스가 그대로 저에게 내려진 거예요. 마지막으로 시합날 검정색이 들어간 운동화나 속옷, 양말 등을 절대로 신거나 입지 않아요. 고교시절부터 검정색이 들어간 운동화를 신으면 다치거나 둔한 플레이가 나와서 이런 징크스가 생겼어요.
정: 은퇴 전까지 어떤 기록을 세우고 싶나요?
주: 제가 포인트가드이기 때문에 어시스트 부문에서 족적을 남기고 싶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마흔 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거예요. 한 달에 몇 경기만 뛴다거나 한 경기에 채 5분도 뛰지 못하는 그런 현역 생활 말고요.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갈 길을 빨리 정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철저한 프로정신과 완벽한 자기관리로 현역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프로 12년차 주희정. 농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지독한 훈련으로 가난과 고독을 이겨내며 정상급 포인트가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내면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준 주희정의 사전에 ‘정체와 퇴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CJ미디어 아나운서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