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형 같은 백승도 감독과 사랑스런 가족들의 응원으로 재기를 꿈꾸고 있는 김이용. 선수로선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그의 ‘회춘’ 레이스는 계속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8)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역시 선수로는 환갑을 넘긴 나이, 그리고 격이 떨어지는 전국체전에서도 6위(2시간20분55초 2007년)에 그칠 정도로 완벽한 슬럼프, 여기에 팀 이적 등으로 3개월을 넘게 운동을 쉬는 등 제대로 훈련도 하지 못하고 출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봉주형’마저 제치며 1996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무려 12년 만에 올림픽 티켓을 따낸 것이다. 마라톤에서 12년 만에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진기한 기록이다. 이 집념의 마라토너를 만나본다.
잠깐 김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1996년 건국대 4학년으로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했다. 이봉주의 은메달에 가렸지만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단숨에 한국 마라톤의 기린아가 됐다. 이후 코오롱에 입단했고, 1997년에는 기록상 이봉주를 능가하기도 했다. 1998년 절정의 기량으로 도전했던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독감으로 기권했고, 1999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당시 한국 역대 2위에 해당하는 2시간7분49초로 4위에 올라 세계 톱랭커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내 ‘코오롱 사태’가 터졌고 상무에 입단했다. 이후 무소속, 구미시청,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을 거쳤지만 빈약한 훈련여건과 고질적인 위염 등으로 인해 전성기의 기록은 회복되지 않았다. 당연히 2000, 2004올림픽은 출전권도 따지 못했다. 잊혀질 만하면 국내대회에서 한 번씩 우승해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오뚝이’다.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하지만 역으로 그만큼 많이 넘어졌다는 ‘한’도 담고 있다.
‘오뚝이’라는 별명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있어 그것부터 물었다. 그런데 답이 재미있다. “뭐 이제 싫고 좋고가 없다. 그만큼 정신없이 살았다는 얘기다. 오뚝이를 가만히 두면 마지막에는 계속 서 있지 않나. 이제 오뚝이는 끝이다. 아마도 내가 마라톤 인생 말년에 대박이 터질 팔자인 것 같다.”
극적인 재기지만 이제 간신히 12년 만에 올림픽에 나서는 것인데 너무 욕심이 앞서는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스토리를 들어보니 수긍이 갔다.
김이용은 4년 전 구미시청에서 고등학교 선배인 황영조 감독이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팀을 옮겼다. 그저 제대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연봉이 줄어드는 것도 감수하고 이적을 강행했다. 그런데 여건은 이전보다 나을 게 없었다. 몇 차례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체면치레는 했어도 한국기록, 국제대회, 올림픽 등 높은 곳을 바라보는 김이용의 갈증을 채우지 못했다.
2006년 7월 절친한 선배인 백승도 감독이 대우자동차판매 마라톤팀을 창단할 때 건국대 선배인 박상설 대우자판 전무로부터 스카우트를 제의를 받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미뤄지다 2008년 1월 4일, 어렵사리 팀을 옮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내 정희정 씨(32)를 만났다. 운동을 전공해 김이용과 마라톤을 너무도 잘 이해하는 하늘이 내려준 배필이었다. 원래 2007년 여름 결혼하려고 했지만 팀 이적과 길일 선택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아직까지 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2월 14일에는 딸(나은)까지 얻었다.
백승도 감독은 “자질이야 원래부터 유명했지만 실제 함께 운동해 보니 정말 집념이 대단하다. 말이 두 달이지 실제로는 진짜 제대로 훈련도 못하고 대회에 나갔다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만일 페이스메이커가 초반 오버페이스로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전성기에 육박하는 기록이 나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이용은 일단 모든 포커스를 2008베이징올림픽에 맞춘 후 올 연말과 내년에는 런던 로테르담 시카고 등 A급 국제대회에 나가 한국기록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봉주가 세월을 무색케 하는 성실함으로 감동을 준다면, 김이용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라는 카드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스스로 마라톤을 통해 인생의 이치를 깨우치고 있다는 김이용의 리스타트 스토리. 움푹 들어간 눈에서 뿜어내는 안광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렬하기만 하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