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연(왼쪽), 정일미 | ||
“언니, 정말 큰일났어요. 리조트 방에 불이 났어요. 소방차가 3대나 왔고, 지금도 집에서 연기가 엄청나게 나오고 있어요. 이거 어쩌죠? 제가 저녁 먹으러 나오기 전에 꼬리곰탕을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린 후 그냥 나와버렸거든요. 제 과실이니 혹시 경찰에 가서 수사받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침 에이프럴 퍼스트, 즉 만우절이었던 까닭에 정일미는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강수연이 울음을 터뜨리자 자신도 가슴이 벌렁벌렁 뛸 정도로 걱정이 됐다. 차를 돌려 강수연이 숙소로 정한 리조트로 향했다.
제법 시간이 걸려 도착하니 외견 상 화재는커녕 평온하기만 했다. 화재의 흔적은 새까맣게 탄 냄비와 소방관이 강제로 뜯어내는 과정에서 살짝 부서진 문이 고작이었다. 뼈가 탄 까닭에 엄청나게 지독한 냄새를 제외하곤 모두 견딜 만한 것이었다. 큰 사고가 될 뻔했는데 이웃에서 신고를 해 일찍 소방차가 출동해 불행 중 다행으로 끝났다고 한다.
다음 날 이 사실이 코리안 가족들 사이에 쫙 퍼졌다. 재미있는 것은 꿈에 불을 봐도 길조라고 하는데 실제 불이 났으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강수연도 “예전에 대회 직전에 집안이 온통 피투성인 꿈을 꿨어요. 꿈에 빨간 색 보면 좋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대회를 나갔는데 최종라운드 전까지 엄청나게 잘 치면서 선두를 달렸죠. 그런데 마지막날 무너졌어요. 마지막에 피를 닦지 않았으면 우승했을 텐데…”라고 기대를 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올시즌 4개 대회에서 3번 컷 탈락에, 한 번 기권을 하며 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등 슬럼프를 겪던 강수연은 그 어렵다던 나비스코챔피언십의 코스에서 이븐파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위로차 강수연의 화재현장을 방문했던 정일미도 한때 4언더파로 선두를 달리는 등 톱10권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함께했던 사람들이 재미삼아 간 카지노에서 돈까지 땄다고 했다. 만우절 거짓말처럼 재미있는 화재소동이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