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하는 이봉주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이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설렌다고 밝혔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될 마라톤. 그 대회를 끝으로 오랜 마라톤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될 이봉주. 그래서 올림픽을 준비하는 이봉주는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어느 때보다 설레기도 하다. 일본과 중국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대전 계족산에서 3주간 크로스컨트리를 통해 체력 훈련에 임하고 있는 이봉주를 만나러 지난 4월 30일 계족산을 올랐다. 이봉주에겐 솜털같이 가볍기만 한 14km 구간이 기자에겐 고행길이나 다름없었다.
삼성전자 육상단 봉고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이봉주. 기자에게 간단히 눈인사만 건넨 뒤 훈련 준비를 하는 그의 얼굴에서 얼핏 냉정한 기운이 엿보인다. 계족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이봉주를 발견하고 ‘어머! 이봉주닷!’을 외치더니 한걸음에 달려와선 이봉주에게 악수를 청한다. “이번엔 꼭 금메달 따십시오!”하며. 예의 ‘이봉주표 어색한 웃음’을 선보이더니 다시 스트레칭에 돌입하는 우리의 ‘봉달이’!
이미 오전 훈련을 소화한 탓에 오후 훈련은 가급적 편한 코스를 택했다는 오인환 감독의 말에 잠시 안심을 했건만 평범한 코스를 뛰는 이봉주를 쫓아가려던 기자의 ‘건방진 발상’은 100미터도 안 돼서 포기의 수순을 밟게 됐다. ‘준비 땅!’을 외치며 이봉주와 함께 출발했지만 이봉주는 순식간에 기자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봉주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30여 분 지나서다. 다시 그를 뒤쫓았지만 또 다시 놓쳐버렸고 그렇게 30분씩 3번을 반복하다가 2시간 정도가 지나 오후 훈련이 마무리됐다.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이봉주에게 다가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어휴, 오늘은 가볍게 몸만 푼 거예요”라며 2시간의 산악 훈련을 마치 러닝머신 뛴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마지막 올림픽’이란 의미에 대해 이봉주는 이런 의견을 나타냈다.
“이젠 더 뛰려야 뛸 수가 없어요. 진짜 마지막인 거죠. 그동안 ‘이봉주 언제 은퇴하나?’하고 기다렸던 분들은 올림픽 이후 제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 돌이켜보면 정말 허덕거리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아테네올림픽 이후 은퇴 기로에 놓인 적도 있었고 주위의 은퇴 압박에 심하게 스트레스 받아 도망가고 싶은 적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전 떠나지 못했어요. 왜냐고요? 아쉬움과 미련 때문이죠.”이봉주의 올림픽 역사는 ‘회한’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한 번만 더’를 외쳤고 그 외침이 3번이나 반복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올림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96년 이후로 시드니, 아테네는 다 정상적인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어요. 만약 그 당시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이보다 잘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면 네 번째 도전은 꿈도 꾸지 않았을 거예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봉주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었다는 점이다.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해 병역 문제를 해결해준 96애틀랜타올림픽 때는 실제로 올림픽 끝나면 바로 입대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올림픽에 출전, 생애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데다 병역 혜택까지 받은 이봉주로선 엄청난 소득이었다. 한국신기록(2시간7분20초)을 기록한 1998년 로테르담대회 때는 전 코오롱 감독이자 마라톤 대부로 알려진 고 정봉수 감독의 거센 출전 반대에 부딪혀 참가하지 못할 위기에 있다가 당시 오인환 코치(현 삼성전자 감독)와 이봉주가 우겨서 간신히 나간 대회였다.
▲ 지난달 20일 베이징 올림픽 코스를 직접 달려본 이봉주의 올림픽 희망 기록은 2시간 9분대. 그는 이번 올림픽을 ‘더위와의 전쟁’이라고 정리했다. | ||
말수 적고 유흥과는 담을 쌓고 지낼 것 같은 이봉주한테는 두터운 연예계 인맥이 자리한다. 결혼식 때 축가를 불러준 윤도현은 물론 영화배우 정준호, 방송인 배칠수와는 의형제나 다름없다. 특히 배칠수는 기자가 이봉주랑 인터뷰하고 있을 때 이봉주에게 문자를 보내 '나 지금 철수 형님 프로(‘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와 있다. 듣고 싶은 음악 없냐?’하며 신청곡을 요청했고 이봉주는 ‘셀린 디온의 비코우즈 아이러브유 틀어줘봐’라고 화답했다. 물론 방송에는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신청한 곡입니다” 하는 DJ 배철수의 멘트와 함께 셀린디온의 노래가 전파를 탔다.
이 뿐만 아니다. 스포츠 선수들과도 종목을 가리지 않고 친분을 쌓고 있다. 펜싱 김영호, 테니스 이형택과는 술 친구들이고 배구 은퇴 후 호주 유학 중인 신진식과는 이웃사촌으로 형, 동생하며 지냈다. 축구의 이관우, 야구 송진우랑도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이봉주는 지난해 8월에 이어 4월 20일 베이징에 들어가 올림픽 코스를 달렸다. 직접 달려본 후 그가 내건 기록은 2시간 9분대다. 오인환 감독도 2시간 9분대면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전망했다. 올림픽 출전 전에 6월과 7월, 일본에서 열리는 하프마라톤대회에 출전할 계획인 이봉주는 이번 올림픽을 ‘더위와의 전쟁’이라고 정리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봉주에게 마라톤은 어떤 존재냐고. 어설픈 미소를 날리던 그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가슴을 울린다.
“마라톤과 전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예요. 마라톤을 뺀 이봉주는 있을 수 없어요. 거의 전부나 마찬가집니다.”
이봉주는 베이징올림픽을 마치고 메달 색깔, 순위 경쟁보다는 ‘단 한 방울도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온 정열을 쏟아 붓고 물러나기’를 간절한 희망사항으로 꼽았다. ‘봉달이’ 이봉주의 마지막 소원이 제대로 실현되길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