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 ||
미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박희영은 지난 4월 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시차를 계산하며 수시로 한국에 전화를 했다. 자신도 미국에서는 루키로 매주 새로운 대회에 적응하기 바빴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프로테스트에 응시한 동생 박주영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3일 동안 마음을 졸인 끝에 박희영은 마침내 환호를 터뜨렸다. “동생이 프로테스트에 합격했어요.”
박주영이 3일간 펼쳐진 프로의 관문을 전체 5위로 가볍게 통과한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을 강타한 송나리·아리 쌍둥이 자매 돌풍(현재는 둘 다 슬럼프)에 이어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자매 프로골퍼가 탄생한 것이다.
언니 박희영은 설명이 필요 없는 차세대 한국 여자골프의 기대주다. 국가대표를 거쳐 2004년 아마추어로 프로대회에서 우승했고 2005년 KLPGA 신인왕을 거쳐 국내 정상의 선수로 등극했다. 현재는 미LPGA에서 신인왕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 골프전문잡지가 선정한 한국 여자골프선수 중 스윙이 가장 완벽하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이런 언니를 둔 박주영도 시작이 남다르다. 골프를 시작한 지 만 3년 만에 가뿐히 그 어렵다는 프로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그것도 여자골프 선수층이 세계에서 가장 두텁다는 한국에서 말이다.
여기에 박주영은 4월말 KLPGA 2부투어(강산배드림투어1차대회)에 첫 출전하자마자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일단 2부투어 상금랭킹을 통해 2009년 1부투어 진출이 목표다.
“부모의 관심이 언니에게만 집중됐어요. 소외감이 컸는데 (내가) 골프를 시작한 후 언니 이상으로 후원해주시더라고요. 이제 언니나 부모님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자녀에게 골프를 시키는 부모는 생업을 중단해 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이 다른 형제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곤 한다. 박주영에게는 이것이 자극이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부모의 롤 플레이도 갈렸다. 엄마는 큰딸의 미국투어생활을 돕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다니고 있고, 아버지는 작은딸의 골프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항상 붙어 다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부친 박형섭 씨(47)는 대림대학의 골프학과 교수다. 박희영을 길러냈고, 이어 박주영까지 프로로 만든 것이다. 당연히 이미 세계무대에서 뛰고 있는 큰딸보다는 이제 프로로 첫 걸음을 내딛는 동생 쪽에 기술적으로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두 딸의 골프를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이 없는 박형섭 교수는 2008년 상반기 아예 안식년을 신청했다. 박 교수는 “골프를 늦게 시작한 탓에 주영이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하지만 잠재력은 언니 못지않다. 희영이가 한국 최고의 장타자였고, 지금도 미LPGA에서 드라이버샷비거리 6위를 달리고 있는데 주영이가 더 멀리 친다. 꼭 둘째도 좋은 선수로 키워내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프로선수 한 명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두 딸을 모두 프로골퍼로 성공시키고 있는 이 ‘박씨네’의 비밀은 무엇일까. 집안을 살펴보니 원래가 ‘체육명가’다. 박희영과 박주영의 친할아버지는 한국 체육학의 원로인 박길준 옹(90)이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서 교편을 잡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박형섭 교수도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서울대를 졸업했다. 가풍 자체가 운동을 통한 인격체 형성이다 보니 주변을 놀라게 하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희영 가족은 이제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골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미국으로 나눠지는 이산가족이 됐다. 하루빨리 동생 박주영이 실력을 키워 미국으로 건너와 네 가족이 함께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볐으면 좋겠다”라고. 그렇게 되면 만만치 않은 경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면서 말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