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대표팀의 부진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허정무 감독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은 ‘검증된 A급 지도자’다. 하지만 최근 대표팀 경기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어울리지 않는 결과를 냈다.
7일 요르단전은 승리한 것을 빼고는 많은 부분이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특히 전반 22분 박주영의 PK골이 터진 뒤 이 점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표팀의 모습은 답답할 정도였다. 선수 교체와 포메이션 변화 등을 통해 수비에 ‘올인’했지만 FIFA 랭킹에서 수십 계단 밑에 있는 팀의 공격에 여러 차례 혼쭐이 났다.
대표팀은 후반전에 수비 시스템을 백 포에서 백 스리로 바꾼 데다 양쪽 윙백의 공격 가담을 자제해 사실상 다섯 명으로 수비라인을 구축했는데도 수비 조직력이 허술해 ‘불안한 경기’를 연출했다. 수비수는 공을 걷어내기 급급했고, 미드필더들은 제 기능을 못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수비 중심의 경기 운영을 하다 보니 공격 패턴도 단조로웠다. 결정적인 득점 기회는 요르단이 더 많았다.
대전 시티즌 김호 감독, 경남 FC 조광래 감독 등 상당수의 축구 지도자들은 지난달 31일 요르단전을 지켜본 뒤 “상대가 거의 5-4-1 포메이션을 쓰며 극단적인 수비로 나섰지만 허 감독은 이를 뚫기 위한 공격적인 미드필드 구성을 마다하고 수비 지향적인 김남일-조원희 조합으로 중원을 운용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허 감독은 선후배 축구인의 비판에 강하게 반박할 것이다. 당시 김남일에게 조원희보다는 좀 더 공격적인 움직임을 주문했기에 자신의 선택을 수비 지향적이라 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허 감독이 ‘지키는 축구’를 한다는 비판은 이전에도 나왔다.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치른 북한과의 월드컵 3차 예선전이 그랬다. 당시 허 감독은 5-4-1 포메이션이라는 극단적인 수비축구를 한 북한을 상대로 풀백의 공격 가담을 극도로 자제하는 경기를 했다. 상대의 두꺼운 수비벽을 뚫기 위해서는 활발한 측면 공격이 필요했지만 역습에 당할까봐 안정적인 경기운용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상대 중앙공격수 정대세 1명을 막기 위해 수비수 4명이 나서는 비효율적인 수비전술이 나왔다.
축구인들이 허 감독의 전술에 비판의 메스를 댄다면 언론인은 허 감독의 일부 적절치 못한 언행을 비판한다. 허 감독은 지난달 31일 요르단전 직후 이운재의 사면을 축구협회에 요청하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이후 이달 1일과 2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대표팀 훈련을 지휘한 뒤에도 같은 논조의 얘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논란이 일자 3일 요르단으로 출국하기 전에 “이운재 사면을 고려한 적도 축구협회에 요청한 적도 없다”고 딱 잡아뗐다.
허 감독은 자신의 말을 뒤집으면서 “(언론이) 너무 앞서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운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걸 언론이 ‘뻥튀기’했다는 것이다.
허 감독의 말 바꾸기를 보며 상당수 언론은 크게 두 갈래의 비판 기사를 썼다. 허 감독의 거짓말을 꼬집는 기사와 자기 선수의 기를 꺾은 적절치 못한 발언을 지적한 칼럼을 내보냈다.
허 감독이 이운재를 마음에 두고 있다 해도 지금은 잠자코 있어야 했다. 3차 예선을 통과하고 최종예선을 앞두고서나 이운재 사면을 공론화해야 했다. 하지만 허 감독은 ‘적절하지 않은 순간’에 ‘적절하지 않은 뉘앙스’의 얘기를 하면서 자기 선수를 욕보였다.
대표팀은 요르단전을 사흘 앞둔 지난달 28일 대표팀 소집규정에 맞춰 모였다. K리그는 25일 경기를 끝으로 한 달 여 간의 휴식기에 들어갔고 대부분의 구단은 26일부터 선수들에게 휴가를 줬다. 따라서 대표팀을 이틀 정도 일찍 소집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조기 소집을 위한 협조 요청을 안했다. 감독과 코치들은 조기 소집이 필요하다고 부탁했지만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일정 때문에 프로축구연맹에 양해를 구할 일을 생각하며 괜한 ‘불씨’를 만들지 않겠다는 듯 납작 엎드렸다. 최근 몇 년 동안 K리그와 대표팀 소집 탓에 불협화음을 일으킨 걸 의식한 이유 있는 복지부동이었다.
축구협회는 최근 올림픽대표팀 박성화 감독이 얼굴을 붉힌 뒤에야 프로축구연맹과 얼굴을 맞대고 K리그 일정을 조정해 올림픽대표팀의 정상적인 훈련을 가능케 했다. 이에 대해 올림픽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박 감독이 K리그 일정이 나오기 전부터 협회에 계속 얘기를 했는데 반년이 다 돼서야 해결됐다”며 축구협회의 미지근한 일처리를 비판했다.
넬루 빈가다 요르단 감독은 지난달 31일 대표팀과의 경기가 끝난 뒤 “한국은 2-0으로 앞선 뒤 마치 경기에 승리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지적했다. 빈가다 감독의 지적처럼 한국 선수들은 후반 3분 만에 박주영의 추가골이 터지자 조금씩 흐트러졌다.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미드필드에서 패스 미스가 자주 나왔다. 수비에서도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장면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당시 상암월드컵경기장 VIP석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축구협회 정몽준 회장도 “맨유가 4부나 5부 팀과도 비기는 게 축구라지만 우리 선수들이 요르단 선수들의 정신력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선수를 보고 투지가 없다고 무작정 비판하는 건 옳지 않은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요르단 감독과 축구협회장이 한탄했듯이 일부 선수의 해이한 정신력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광열 스포츠칸 축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