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훈기(민): 올 시즌 어떤가.
배영수(배):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야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내 야구에 변화를 줘야할 때라는 것도 느꼈다.
민: ‘물불 안 가리는 승부사’ 배영수가 변한다는 뜻인가.
배: 시즌 시작 땐 몸 상태가 괜찮았는데 4월, 5월이 가면서 나 자신에 실망을 많이 했다. 4월 중반쯤에는 누나한테 야구를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다.
민: 원인이 무엇이었나.
배: 마운드서 홈런 맞고 안타 맞고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미치겠더라.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인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그래서 6월 초까지도 정말 힘들었다.
민: 최근 두 경기는 상당히 좋았는데 바뀐 것이 있었나.
배: 지난 SK전(6월 22일 5이닝 2실점)부터 조금 바뀌었다. 그 전에는 마운드에 올라가서 두들겨 맞을 걱정이 앞섰다. 맞더라도 시원하게 맞는 게 내 스타일인데 마운드에서 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내 스타일을 찾고 맞더라도 폼도 빠르게 하고 승부를 거는 쪽으로 가니까 좋아지는 것 같더라.
민: 그럼 공보다는 마음 자세가 바뀐 것으로 보이는데.
배: 많이 바뀐 것 같다. 내가 소극적이 되니까 모든 것이 다 느려졌다. 투구폼, 공끝, 게임 템포까지 느려지고.
민: 볼 배합도 변화를 주지 않았나.
배: 조금 줬다. 아니 많이 줬다(웃음). 진짜 많이 줬다. 원래 직구-슬라이더로 승부를 많이 하는데 SK전부터 안 던지던 서클체인지업도 던지고 커브도 던지고. 프로 와서 서클체인지업은 처음 던져봤는데 정말 잘 먹혔다. 슬라이더가 예전 같지 않아 왼손 타자들에게 고전을 했는데 체인지업이 아주 좋더라.
민: 체인지업 연습 많이 했나보다. 익히기 쉽진 않은데.
민: 팔꿈치 수술한 지 1년 반 됐는데 보통 2년은 걸려야 완전히 정상을 찾는다. 너무 조급했던 것은 아닌가.
배: 캠프에서도 아주 좋았다. 정작 시즌 와서 잘 안되니까 5월에는 수술을 괜히 했다는 후회까지 들었다. 물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절대 던질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수술을 핑계대고 싶지 않았다. 난타당하고 나면 수술 후유증 운운하는 말들도 싫었다.
민: 아픈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배: 아프면 소극적으로 변하더라. 결국은 본인이 제일 힘들다. 처음엔 또 다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젠‘이왕 이래된 거, 시원하게 던지고 끝나면 끝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한다. 어깨는 절대 안 되지만 팔꿈치는 아파도 다 던진다. 프로 야구 투수들 거의 다 아픈데도 던진다.
민: 어떤 투수가 좋은 투수인가.
배: 진정한 좋은 선수는 슬럼프 없이 항상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임)창용이형 보라. 일본 가자마자 잘하는 것 보면 정말 천재적이다. 나는 전혀 안 된다. 노력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요즘 보면 김광현(SK)이 잘 던지는 것 같다. 윤석민, 이범석(기아)같이 씩씩하게 던지는 투수들이 좋다.
민: 앞으로 훨씬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배: 야구가 제일 쉬우면서도 제일 힘들다. (시즌이) 너무 길기 때문에 힘들다. 단기전으로만 붙으면 자신 있는데(웃음). 이제 ‘새 것(인대)’도 받았고, 원 없이 하고 싶다. 그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민: 앞으로 투수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배: 일단은 떨어진 명성을 찾고 싶다(웃음).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폼으로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누가 봐도 시원하다고 느끼는 그런 투수 말이다. 가장 매력적인 투수는 공을 들었을 때 투사로 변하는 사람이다.
삶의 전부였던 야구를 포기할까 고민했을 정도로 암울한 시기도 있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날 만큼 낙천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 그를 제2의 전성기로 이끌 수 있을 것만 같다. 배영수와의 만남은 스물일곱 살 에이스의 고뇌와 좌절을 딛고 일어선 과정들이 올곧이 와 닿는 시간들이었다.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