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AT&T내셔널 최종 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고 있는 앤서니 김. 그는 12언더파 268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 ||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로 꼽히는 한국계 골프스타 앤서니 김(23)의 아버지 김성중 씨(66)의 목소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또박또박했고 또 자신감이 넘쳤다. “영어도 서툴고, 한국말도 조리있게 못하는 늙은이 인지라 웬만해서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들의 골프 성장사에 대해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일요신문>이 지난 7월 11일 가진 김성중 씨와의 전화인터뷰를 소개한다.
앤서니 김(한국명 김하진)은 어렸을 때 머리가 아주 비상했다. 미국에서는 보통의 한국아이들도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앤서니 김은 훨씬 뛰어났다. 워낙 골프를 일찍 시작했지만 그런 까닭에 김성중 씨는 아내(최미령·57)와 자주 신경전을 펼쳤다. “저렇게 머리 좋은 아이는 공부를 시켜서 의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맨날 골프를 시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성중 씨는 “한국에서는 토니(아들을 이렇게 불렀다)가 크지 않은 키(177cm)에도 불구하고 장타를 날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실 쇼트게임 능력과 두뇌플레이가 더 뛰어나요. 내 아들이지만 승부근성이 강하고 총명합니다”고 말했다.
이제는 어떨까? “의사 못 된 게 지금도 아쉬우세요? 타이거 우즈에 비견될 정도인데 의사 100명을 줘도 바꾸지 않아야죠?”라고 기자가 묻자 김 씨는 “허허, 뭐 그렇죠”라며 즐겁게 인정했다.
김 씨는 마흔이 넘어 얻은 외아들에게 골프를 일찍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처음부터 골프신동 교육을 시킨 것은 아니었다.
“제가 골프를 워낙 좋아했어요. 80년대 중반 LA에 살았는데 집 마당에서 칩샷 연습을 하곤 했죠. 주말에 아내가 볼 일을 보러 나가면 제가 토니를 돌봐야 했거든요. 그땐 전 칩샷연습을 하고, 돌이 채 안된 갓난아이는 그걸 지켜봤죠.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골프레슨을 보곤했는데 이상하리만큼 토니가 이것을 좋아했어요. 울다가도 골프비디오만 틀어주면 조용히 지켜봤죠. 그때는 주니어용 골프채가 없었기 때문에 여성용 클럽을 잘라 채를 만들어줬어요. 타이거 우즈가 만 두 살 때 골프를 시작했잖아요. 골프 입문으로 치면 토니가 더 빠를 거예요. 걷기도 전에 골프를 접했으니까요.”
부전자전일까. 60대 중반의 김 씨는 요즘도 핸디캡 12 정도의 스코어를 유지한다고.
2006년 프로행을 선언하고, 지난해 루키로 PGA에 뛰어든 앤서니는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에 비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프로데뷔부터 PGA를 흔들어버린 10년 선배 타이거 우즈에게 비하면 그야말로 초라했다.
▲ 앤서니 김의 가족사진. 연합뉴스 | ||
최근 25세 미만 선수로 2승을 거두는 등 갑자기 톱랭커로 쑥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간명했다. 마음을 고쳐먹었고, 또 그만큼 맹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말에서 4월 초 토니가 2대회 연속 컷오프로 탈락했습니다. 충격이었죠. 그 사이 토니를 좋아하는 대선배들로부터 ‘반드시 연습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진심어린 충고를 받았고, 스스로 연습이 부족하다는 각성을 했습니다. 정신차리고 열심히 훈련했어요. 이후 버라이즌헤리티지 준우승, 그리고 5월 초 와코비아챔피언십 우승으로 화려하게 되살아난 거예요.”
앤서니 김의 별명은 라이언이다. 스스로 프로데뷔 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잡겠다고 호언했고, 최근 타이거가 부상으로 빠진 미PGA에서 새로운 흥행카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앤서니 김은 고등학교 때 이미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골프신동’ 소문을 들은 프레드 펑크가 함께 라운딩을 한 후 “타이거 우즈도 15세에 이렇게 쇼트게임을 잘하지 못했다”며 감탄을 했다. 당시 대선수였던 펑크는 앤서니 김의 집 근처에서 대회가 열릴 때면 2~3일 일찍 와 앤서니 김과 라운딩을 하기도 했다. 앤서니는 쇼트게임은 물론이고, 드라이버샷을 330야드나 날릴 정도로 파워도 갖추고 있었다.
김성중 씨는 앞으로 앤서니가 더 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기량은 이미 아마추어 때부터 검증된 것이고, 여기에 자신감을 되찾았고 성실함이 보태졌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AT&T내셔널 우승에 대해 큰 기쁨을 나타냈다. “이번 대회는 우승보다도 플레이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미스샷이 나면 짜증스런 표정이 역력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졌어요. 확실히 한 단계 성숙한 거죠.”
김성중 씨는 아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해요. 팜스프링스가 사막 아닙니까. 화씨 117도(섭씨 47도)에 라운딩을 나갔는데 그 무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연습에 열중하더라고요. 손바닥이 갈라져 두 겹 세 겹으로 테이핑을 하고도 말입니다. 지금의 성공은 모두 호된 훈련을 이겨낸 아들의 몫입니다.”
앤서니 김은 현재 세금이 싼 댈러스에 살고, 누나는 LA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까닭에 김성중 씨 부부는 팜스프링스에서 노후를 즐기고 있다. “토니가 주니어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정이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드니까 이제 너무 더워서 못살겠어요. 조만간 샌디에이고 같은 바닷가로 이사를 할 예정입니다.”
늦둥이 아들이 세계적인 선수로 급부상한 것이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는 김 씨는 충북 영동 출신으로 학창시절 육상 높이뛰기 선수를 했다고 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