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 NFC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박성화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 ||
최근 유럽의 유명 베팅사이트 7곳(베트365, 베트프레드, 파티베츠, 베트페어, 베트웨이, 다이아몬드스포츠북, 레드부룩스)이 일제히 한국이 이탈리아, 카메룬에 이어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3위로 올림픽을 마칠 것으로 점쳤다. 한국의 8강행을 예상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축구 전문 사이트 ‘골닷컴’의 전망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징올림픽 조별리그를 분석하면서 “D조에서는 이탈리아가 1위, 카메룬과 한국이 2위를 놓고 다투지만 카메룬이 조금 우세하다”고 주장했다. “박지성과 김두현이 빠진 한국은 선수 구성이 미흡하다”며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중충한 평가’를 받으며 출범한 박성화호. <일요신문>이 최종엔트리 발표 뒷이야기와 올림픽 준비상황을 전한다.
# 최종 엔트리 뒷얘기
박성화 감독은 최종 엔트리를 정하면서 홍명보, 강철 코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박 감독은 올림픽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자신이 검증했던 선수 위주로 최종 엔트리를 작성하려 했다. 반면 코치들은 올 시즌 K리그 성적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박 감독과 코치들이 가장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선수는 신영록과 서동현(수원)이었다. 이근호(대구)와 박주영(FC서울)을 일찌감치 최종 엔트리에 넣은 박 감독은 신영록(18경기 출전 6골 3도움)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며, 올 시즌 K리그에서 펄펄 날고 있는 서동현(21경기 출전 11골 1도움)을 지켜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코치들은 입을 모아 서동현을 추천했다.
박 감독은 망설임 끝에 코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동현을 선택했지만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꿨다. 2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수원-성남전을 보다가 서동현을 예비명단으로 보내고 신영록을 최종엔트리에 넣었다. 서동현의 무릎이 심상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부상을 이유로 서동현을 뺐지만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날 서동현은 풀타임을 뛰었고 신영록은 후반 12분에 교체됐다. 더욱이 서동현은 다음날 멀쩡하게 돌아다녔지만 신영록은 대한축구협회 지정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 촬영까지 하며 무릎 상태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최종 엔트리 발표 직후 박 감독이 선수 선발 과정에서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 시절 지도했던 ‘내 새끼’를 챙긴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하지만 박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토종 공격수’ 서동현을 버리고 신영록을 취한 건 ‘미스 캐스팅’이지만 국제경기 경험이나 최근 몇 년간의 종합적인 성적을 놓고 볼 때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 카드 속 사진은 공격진 박주영, 이근호, 신영록(왼쪽부터). | ||
올림픽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는 골 결정력이다. 지난해 올림픽 최종예선과 지난 1월 스페인 전지훈련 때도 올림픽대표팀은 득점력이 달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골 결정력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박성화 감독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염기훈(울산 현대)을 와일드카드(24세 이하)로 올림픽대표팀에 부르려고 했지만 이들이 부상에 발목을 잡힌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상호(울산 현대)마저 부상의 늪에 빠지면서 박 감독의 한숨은 깊어졌다.
며칠을 고민하던 박 감독이 예비명단을 작성하면서 선택한 공격수는 이근호, 박주영, 신영록, 서동현, 양동현(울산 현대) 등 5명이었다. 박 감독은 이 중 이근호와 박주영을 일찌감치 최종 엔트리에 넣고 선발 요원 신영록, 양동현과 교체 요원 서동현 중에서 한 명을 뽑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양동현마저 다치면서 박 감독이 선택할 ‘카드’ 숫자는 또 줄었다.
박 감독은 결국 ‘애제자’ 신영록을 선택하며 최종 엔트리 공격진 구성을 끝냈다. 하지만 이근호-박주영-신영록으로 짜인 공격진이 올림픽대표팀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골 결정력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근호를 뺀 나머지 두 명의 최근 경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이근호와 신영록이 비슷한 스타일의 공격수라 이들 세 명으로 다양한 공격조합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감독도 이 같은 지적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특히 논란에도 불구하고 뽑은 박주영에 대해 걱정한다. “슈팅한 공이 자꾸 골문 바깥으로 향한다. 부상 탓에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기초적인 반복 훈련을 통해 자세를 교정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 막판 체력 훈련 ‘올인’
박성화 감독이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선수들의 체력이다. 박 감독은 현재 선수들의 체력이 75~80%라고 진단하면서 95% 수준은 돼야 올림픽에서 제대로 뛸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동안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제대로 체력훈련을 시킬 수 없었다. 올림픽대표팀이 지난 1월 스페인 전지훈련이 끝난 뒤 반년 가까이 쉬다가 7월 7일에야 처음으로 소집훈련을 시작한데다 훈련기간에 두 차례나 K리그 경기를 위해 일시 해산했기 때문이다.
“8월 3일 중국 친황다오에 입성할 때까지 매일 2%씩 체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말하는 박 감독. 최종 엔트리를 발표한 다음날부터 단내 나는 체력훈련을 선수들에게 시켰다. 팀 전술훈련이 끝난 뒤 15분간 그라운드에서 허들을 넘고 10m 전력질주를 하게 했고 10분 3쿼터로 진행된 9대9 미니게임에서 쿼터가 끝날 때마다 방향전환, 점프, 전력질주, 헤더 등 10단계로 구성된 서킷 트레이닝을 시켰다.
박 감독은 “경기 도중 체력은 있지만 다리가 올라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훈련을 통해 힘들 때도 치고 나올 수 있다”며 체력훈련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대회 개막이 임박했을 때는 무리한 체력훈련보다 전술 연습 등 마무리 훈련에 전념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