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최희섭이 7월 29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LG와의 경기 전 몸을 풀고 난 후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타자 출신 최희섭(29·KIA 타이거즈). 허리 부상 등의 이유로 2군에 내려갔던 그가 지난 7월 15일 1군 복귀 이후 달라진 타격 폼과 정신력으로 팀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롯데, 삼성과 치열한 4위 전쟁을 치르는 KIA의 해결사로 떠오른 빅초이 최희섭을 만나 한국 복귀 이후 그가 겪고 느끼고 절감했던 야구 인생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들어봤다.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 놓은 건 진짜 처음인 것 같아요. 얘기하고 나니까 속 시원하네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닫고 사는 게 더 편하고 자유로울 때가 있었거든요.”
최희섭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느낌표’를 제시했다. 지난 29일 광주에서 만난 최희섭은 기자의 다소 까칠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도 거부하지 않고 제대로 답변해 나갔다. 국내 복귀 후 그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들이 워낙 많아서 질문의 대부분이 ‘최희섭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이란 내용들이 주를 이루다보니 묻기에도, 대답하기에도 다소 ‘멋쩍은’ 스토리들도 포함됐지만 최희섭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 버려야 산다?
최희섭이 예상외의 성적을 내며 팀플레이에 도움이 못 되자 몇몇 야구 전문가들은 ‘미국 야구를 버리고 한국 야구에 적응해야 산다’는 요지의 충고와 조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최희섭은 “그걸 버린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미국에서 야구한 게 8년이에요. 물론 저도 미국 야구를 버리고 이곳 문화에 완전히 적응하려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어요. 만약 제가 잘했다면 ‘역시 메이저리그 출신’ 운운하며 메이저리그를 띄웠을 겁니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출신임을 버리고, 잊어야 한국 야구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만약 롯데의 가르시아가 야구 못 해봐요. 가르시아에게 어떤 비난이 뒤따랐을까요? 버린다고 적응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최희섭은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진출 타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바탕에 깔린 자긍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락에 떨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야구 인생의 8년이 그를 옥죄는 부담이 아니라 용기와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 ‘꾀병’이란 오해와 진실
최희섭은 올 초 전지훈련 동안 두통으로 두 번이나 중도 귀국했었다. 국내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았지만 ‘이상 무’! 병원에선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최희섭은 계속 두통을 호소했다. 시즌 개막 이후에는 허리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2군에서 재활과 훈련을 반복하다 최근 1군으로 복귀한 것이다. 지난해 국내 복귀하자마자 갈비뼈 통증으로 전력에서 제외됐던 이력까지 합쳐져 최희섭은 이상하게도 잔부상이 많은 선수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훈련을 하기 싫어 꾀병을 부린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프로 선수가 일부러 아픈 척하거나 꾀병을 부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두통은 아무리 원인을 찾으려고 해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여전히 미스터리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몸고생,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네요. 허리 통증으로 걷기조차 힘들 만큼 극심한 고통이 있었어요. 물론 그런 통증도 참고 운동을 해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야구를 올해만 하고 관둘 거 아니기 때문에 정말 어렵게 아프다고 얘길 했던 겁니다. 2군에 머물면서도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이렇게 아픈데 야구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었구요. 제게 ‘꾀병’이라고 비난하신 분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만큼 기대가 컸었고 그런 만큼 실망스러웠을 테니까요.”
최희섭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중심타자, 4번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부분에 얼마나 많이 집착하고 자책하고 힘들어 했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뭔가 이룰 것 같았어요. 개인 성적이나 팀 성적 모두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야구가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최악의 부상까지 오니까 주위의 오해를 많이 샀었죠. 야구 안 되니까 자빠진 거 아니냐면서.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어요.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몸은 안 따라주고, 욕은 욕대로 먹고, 팀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내 야구 인생에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활약할 때는 선수층이 워낙 두텁기 때문에 아파도 눈치 보지 않고 아프다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자신이 빠진 공간이 너무 커 보였고 팀 성적까지 좋지 않다보니 계속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만 들었던 것. 제 몫을 못하고 주저앉았던 당시의 가슴앓이가 그의 말 속에 올곧이 배어 있었다.
▶▶▶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한국에 처음 복귀했을 때 솔직히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는 자부심이 엄청 컸으니까요. 지난해 성적도 좋았잖아요. 만족할 만한 부분도 있었구요. 그래서인지 올 시즌을 준비하며 좀 자만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작년에 잘 쳤으니까 올해도 잘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도 부풀리면서. 좋은 약이 될 거라고 믿어요. 2군에서 정말 좋은 경험 많이 했거든요. 야구에 임하는 자세도 바꿨고 타격폼도 수정했고 저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도 갖게 됐구요. 모든 게 다 관심이잖아요. 관심이 없다면 성적이 좋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최희섭은 1군에 올라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이 2군에서 하던 대로라고 한다. 감사한 건 복귀할 때 팀 성적이 4강 다툼을 벌이고 있을 만큼 많이 좋아졌다는 부분이라고.
“아파서 2군으로 내려갔을 때 팀이 하위권으로 떨어져 굉장히 미안했어요. 제가 쑥대밭을 만든 것 같기도 했고. 몸이 좋아진다고 해도 쉽게 복귀하기가 미안할 정도였죠. 감독님, 코치님들, 선수들 보기가 면목없었어요. 그런데 팀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든 선수들이 4강 진출을 위해 뜻을 모으고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아마 꼴찌하고 있을 때 1군에 복귀했다면 스스로 눈치 보여서 야구 못했을 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