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란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라이벌 무솽솽이 빠졌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앞두고 심하게 긴장했다고 한다. 로이터/뉴시스 | ||
웃기는 여자
성격이 좋아서 금메달을 땄을까, 아니면 금메달 때문에 유머 감각이 좋아진 것일까. 어쨌든 17일 인터뷰는 정말이지 화기애애했다. 쏟아지는 질문에 장미란은 명쾌하게 그리고, 재치있게 답했다.
예컨대 “운동을 하느라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어쨌든 결혼도 해야 하니까 이제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장미란은 먼저 “가벼운 질문을 너무 심각하게 하신다”고 말문을 열어 기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여성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다 보니 통상의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진 체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기에 이성 문제는 다소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데 너무 쉽게 풀린 것이다. 장미란은 이어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남자친구도 나 혼자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되지 않죠. 자연스럽게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세계 최고의 여자 역사가 됐는데 선천적, 후천적 자질이 어느 정도 비중으로 도움됐느냐는 물음에는 시원스런 미소와 함께 “어렸을 때는 이 체형이 당연히 불만이지 않겠어요? 하지만 운동을 하다 보니 더없이 만족하게 됐다”고 답했다.
“워낙 세계 최고의 역사로 후배들과 기량차가 있는데 후배들을 키워야 되지 않겠냐?”는 다소 생뚱맞은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20대 중반으로 아직 선수로서, 2012년 런던올림픽 등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사실 장미란이 답할 내용이 아니었다. 그래도 ‘유쾌한 미란 씨’는 분위기를 딱딱하게 만들지 않았다. “제가요?”라고 짧게 되물었고, 이어 “자기들이 알아서 잘 크고 있는데요 뭐”라며 웃음으로 어색한 질문을 상쾌하게 마무리했다.
▲ 2008 베이징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일요신문> 독자들에게 사인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보내왔다. | ||
로이터통신이 ‘바벨을 장난감처럼 들어올렸다’고 묘사한 장미란은 아주 웃기는 여자였다.
당당한 여자
인터뷰가 너무 재미있어지자 기자도 끼어들었다. 나름대로 ‘욕심’이라는 사람의 본성과 관련된 까다로운 질문으로 골랐다.
“어제 용상 2차시기에 세계기록(183kg)을 세웠는데 이어 바로 3차시기에 무려 3kg이나 올려 다시 이를 경신했다. 좀 아깝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남자 장대높이 스타 부브카는 신기록 포상금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1cm씩 여러 차례 세계기록을 세웠다. 올림픽에서 184kg만 들고 곧 있을 전국체전 등에서 다시 기록을 세우는 것이 낫지 않은가? 당시 결정은 누가 했는가?”
그러자 장미란 대신 오승우 여자 역도감독이 나섰다. “우리 역도인들은 정말 순수하고 스포츠맨십이 강하다.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답했다. 오 감독은 아주 힘있게 말했고 옆에서 장미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질문 자체가 ‘왜 더 약게 하지 않았느냐’는 이상한 내용일 수도 있었다. 공식 인터뷰 후 오 감독과 장미란에게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부탁했더니 이번 대회에서 장미란을 피해 중국의 라이벌 무솽솽이 출전하지 않았는데 안방에서 보란듯이 ‘중국 니네들 생각 잘했다. 출전했으면 장미란 때문에 금메달 하나 놓쳤을 것’이라고 호령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장미란도 “남들은 경쟁자가 없어서 긴장도 안했다고 하지만 저는 정말 심하게 긴장했어요. 무엇보다 세상 앞에 나 자신과의 싸움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라며 인상과 용상 총 6번을 모두 성공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 장미란은 유쾌했다. 기자들의 심각한 질문도 웃음으로 받아넘길 줄 알았다. 지난해 10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모습. | ||
몸매 죽이는 여자
장미란은 다이어트에 대해서도 확실한 신념이 있었다. 평소 116~117kg이 나가는 장미란은 “베이징에 와서 살이 확 빠질까봐 전전긍긍했어요. 코치님이 저녁 식사 후 항상 정성스레 간식을 챙겨주는데 이것 먹고도 다음날 아침 체중이 줄어 있으면 얼마나 미안한데요. 좀 빠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잘 챙겨먹어서 경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제가 살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신 코치님 등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장미란의 소원은 먹는 것에 대한 고민(억지로 먹어야 한다는 의미)을 더는 것이다. 즉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도 현재의 체중을 유지했으면 한다. 결국은 이것도 역도와 운동으로 이어졌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지방을 최고의 역도 근육으로 계속 만들 겁니다. 역도를 계속하는 한 절대로 체중을 빼지 않을 거예요. 외모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안 왔을 겁니다.”
맹목적인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요즘 젊은 여자들이 이런 장미란의 고통과 자신감을 알까 모르겠다. 최소한 세계를 들어 올린 장미란의 체형을 자신들의 미적 기준으로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장미란을 이번 올림픽에서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베이징=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