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구 2세대 유망주로 꼽히는 이호근 감독의 아들 이동엽(오른쪽)과 딸 이민지. | ||
이런 가운데 최근 중학 농구의 절대 강자인 용산중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 일어나 관심을 끌고 있다. 이호근 삼성생명 감독의 아들로 중학 졸업반 최대어로 꼽히는 이동엽이 농구계의 관례를 깨고 같은 학원인 용산고 대신 타 학교로 진학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농구판의 재미있는 가계 스토리를 살펴봤다.
사학명문인 용산은 농구로 유명하다. 농구계에서는 ‘용산 마피아’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그 인맥 파워가 대단하다. ‘농구천재’ 허재를 간판으로 신선우, 전창진, 유도훈, 박광호(이상 전·현직 프로농구 감독), 김병철 양동근 등 현역선수까지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통적으로 끈질기고, 팀워크가 강하고, 고교시절부터 리더십을 강조해 좋은 지도자가 많이 배출됐다. 한국 농구계에서 용산고를 나왔다면 큰 프리미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농구인 2세로 아버지를 능가할 정도의 유망주로 평가받는 이호근 감독의 아들 이동엽은 최근 고등학교를 경복, 휘문, 명지 등 타 학교로 진학할 방침을 굳혔다. 이미 진학 고등학교를 정했지만 아버지가 워낙 유명하고, 또 예민한 배경 스토리가 깔려 있는 까닭에 관련 학교들이 최종 스카우트 여부에 대해서는 입조심을 하고 있다.
그럼 ‘용산이 싫어’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호근 감독은 “하도 말이 많아 나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동엽이가 용산고로 진학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중 있는 현역 프로팀 지도자로 이 감독은 말을 아꼈지만 이동엽의 타교 진학에는 허재 KCC 감독의 큰아들인 허웅과 관련이 있다. 허웅은 이동엽과 함께 용산중을 중학 최강팀으로 이끌고 있는 간판 플레이어다. 두 농구인 2세의 기량이 워낙 뛰어난 까닭에 중학교 농구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일간지에 기사화가 될 정도로 주목을 끌었다.
농구실력은 결코 이동엽도 뒤지지 않지만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까지 허웅과 함께 용산학교에 다니다보면 허웅에게 빛이 가려질까 우려해 이동엽이 용산고 진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에 대해 이호근 감독은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노코멘트하겠다”고 답했다.
이호근 감독과 허재 감독도 동갑내기로 선수시절 줄곧 반대편에서 서로를 향해 뛰었다. 이 감독은 동국대-현대를 나왔고, 허 감독은 중앙대-기아차를 거쳤다. 주로 공격력이 뛰어난 허 감독(포워드/슈팅가드)을 이 감독(센터형 포워드)이 수비하는 형태였다. 물론 둘의 선수시절은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허 감독이 단연 우세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판단은 이르지만 아들대에서는 이동엽이 다소 앞서간다는 평가다. 이동엽은 중학교 3학년이지만 190cm의 큰 키에 빠른 스피드, 정확한 슈팅력을 겸비했다. 연가초등학교 시절에는 전국체전 최우수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허웅도 아버지의 뒤를 이을 만한 빼어난 기량을 갖췄지만 이동엽에게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현재 용산중의 주장도 이동엽이 맡고 있다.
향후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를 이은 라이벌 구도나 아버지의 한을 아들이 푸는 스토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같은 세대를 이어주는 ‘2세 농구 열전’은 향후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로 내려가면 김유택, 표필상, 양원준, 이창수, 정인교 등 수십 명에 달하는 농구스타들의 2세가 벌써부터 농구공을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십 년에 걸친 농구 유전자들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기대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