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비긴 한국과 북한의 경기. 연합뉴스 | ||
# 진짜 놀러가는 걸까
축구대표팀 감독의 해외파 점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태극전사들의 해외 진출이 봇물처럼 이어지면서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 등 전 대표팀 감독들도 해외파 태극전사들의 몸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허 감독의 프랑스행이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정도 만만치 않다. 23일 출국한 허 감독은 24일 박주영의 경기를 관전하고 곧바로 다음날 독일로 이동한다. 27일에는 이영표의 경기를 지켜보고 다시 프랑스로 이동해 28일 박주영의 정규리그 경기를 본 뒤 30일 낮 인천공항으로 돌아온다. 대충 훑어보더라도 ‘놀러가는’ 것과는 거리가 꽤 먼 빡빡한 일정이다.
# 직접 봐야 파악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떠난 허 감독을 바라보는 축구팬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박주영이나 이영표는 이미 검증된 선수들인데 굳이 비싼 항공료와 체재비를 들어가며 직접 봐야 할 이유가 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모 구단의 비디오 분석관은 “현장에서 보면 선수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다. 볼을 잡는 순간만 확인할 수 있는 TV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밝혔다.
또 그는 “몸 상태 체크도 중요하지만 선수와의 면담이 더 큰 이유다. 대표팀에 대한 생각이나 선수들의 심리 상태는 전화로는 체크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나아가 대표팀의 전술 문제까지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다”며 허 감독의 프랑스행을 지지했다.
한 축구해설가의 생각도 비슷했다.
“경기력을 체크하러 가는 게 주 이유는 아닐 것이다”며 “심리 상태와 대표팀에 대한 충성도 등을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일 것이다. 또 새 구단과 선수와의 관계를 알아 두는 것도 차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허정무 감독 | ||
빡빡한 일정과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도 프랑스행을 택한 허 감독을 바라보는 축구팬의 삐딱한 시선은 변함없다. 허 감독에게 비난과 야유를 보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쓸데없는 유럽행’이 아닌 ‘축구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상으로 허정무호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다. 허 감독은 부임 후 12경기에서 5승6무1패를 기록 중이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었던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의 20전 10승5무5패와도 비견되며 핌 베어벡 전 감독의 17전 6승6무5패보다는 수치상 괜찮은 결과다.
골득실 기록은 오히려 낫다. 허정무호는 12경기에서 17골을 넣고 9골을 내줬다. 경기당 1.4골을 넣고 0.75골을 허용한 셈이다. 베어벡호는 1.3골을 넣고 0.8골을 실점했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 시절에는 1.25골을 넣고 0.85골을 실점했다. 경기당 득실률만 따진다면 가장 좋은 편이다.
# 팬은 보는 즐거움 원해
하지만 축구팬이나 전문가들은 핌 베어벡 감독 시절보다 현재 대표팀의 경기력이 오히려 하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허정무호가 맞붙은 상대가 아시안컵 본선에 출전했던 베어벡 감독이나 독일월드컵에 나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싸웠던 상대들보다 상대적으로 약체라는 점에서 기록상 우위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 올 해 북한과 4연속 무승부 등 중요한 경기 때마다 허무하게 비긴 것은 축구팬이 A매치에서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이유다.
특히 허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현 대표팀의 축구에는 ‘보는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다. 10일 남북전이 벌어진 상하이에서 교민회를 통해 팔린 티켓은 겨우 30여 장이었다. 불과 6개월 전인 3월 3차예선 때는 6000여 장이 팔려나갔다는 것을 돌아보면 불가사의할 정도의 판매량 감소다.
이에 대해 한 교민은 “티켓 가격을 아무리 비싸게 책정했어도 대표팀 경기라면 직접 가는 것이 교민회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대표팀 경기는 재미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대부분 집이나 식당에서 TV로 지켜봤다”고 밝혔다.
# UAE전에 감독 운명 달려
허 감독은 23일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는 해외파에게 ‘희생정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축구팬은 역설적으로 허 감독에게 ‘희생정신을 발휘해 사퇴하라’고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그 어느 기관보다 여론에 민감한 곳이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다음달 15일 벌어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최종예선 홈경기에 허 감독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종력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
▲ 한국을 방문한 히딩크와 허정무 감독이 환담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