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포스트시즌이 흥미로운 건 역시 롯데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소원을 8년 만에 이룬 롯데는 특히 외국인 감독이 팀을 맡고 있으니 더욱 눈길을 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정규시즌 동안 보여줬던 ‘매직’을 가을잔치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어디 이뿐일까. SK 김성근 감독, 두산 김경문 감독, 삼성 선동열 감독 등 포스트시즌 진출 팀의 사령탑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올림픽 금메달로 인해 입지가 탄탄해진 두산 김경문 감독이지만 어쨌든 올해 계약만료가 되는 상황이다. 좋은 성적을 낸 뒤 재계약을 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좋은 성적이란 다름아닌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SK와 두산이 붙는다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지난해 김경문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2승을 거둔 뒤 4연패하며 통한의 눈물을 삼켰다. 그 과정에서 양 팀은 감정싸움이 붙어 그라운드에서 집단 난투극 일보 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올해 SK가 독보적인 성적을 거두면서 일찌감치 단독 1위를 확정지었지만, 두산을 상대로는 10승8패로 그다지 재미를 못 봤다. 두산이 SK를 만날 때마다 잠정적인 포스트시즌 맞상대로 인식하고 치열한 싸움을 펼쳐왔다는 의미가 된다.
김성근 감독과 김경문 감독은 야구 스타일, 그리고 그간의 에피소드 때문에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로 꼽힌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의 신’이라는 별칭과 함께 치밀한 분석 야구의 달인으로 통한다. 반면 김경문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야구, 본인만의 개성이 담긴 야구를 추구한다. 주어진 재료를 모두 이용해 처음 계획했던 결과물과 똑같도록 만드는 게 김성근 감독이라면, 김경문 감독은 재료 두세 개쯤을 빼먹더라도 남들과 다른 결과물을 만들면 좋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두 사령탑은 그간 거북한 신경전을 펼친 전력도 있다. 올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인 김경문 감독을 겨냥해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대표팀에 차출됐다 돌아온 김광현 정대현 등 투수들이 약간의 부상 증세를 호소하자 김성근 감독은 “차출된 선수 관리를 제대로 못해놓으면 어쩌라는 것이냐. 대표팀 감독이 직접 전화라도 걸어와서 설명을 했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경문 감독은 “본인께서 직접 대표팀을 맡아보시라고 해야겠다”고 맞받아치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몇 차례 잔잔하지만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간 뒤 수그러들었지만 시즌 내내 두 감독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같은 둘의 관계는 최근 들어 많이 희석됐다. 올림픽 이후 김성근 감독이 직접 김경문 감독을 찾아가 “수고했다. 큰일을 했다”며 격려했고, 김경문 감독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과 같은 중요한 무대에선 다시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야구 성향도 다르고 지난해 구원이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던 전력이 있으니 두 감독이 대결하게 된다면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나올 듯하다.
지난 4월, 프로야구 개막 직후 롯데가 대구구장에 원정갔을 때 일이다. 평소 좀처럼 더그아웃을 벗어나지 않는 삼성 선동열 감독은 “인사 좀 드려볼까?”라며 툭툭 털고 일어나 롯데 로이스터 감독에게 다가갔다. 양 감독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특히 로이스터 감독은 환한 얼굴로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로이스터 감독은 “먼저 와서 인사를 해주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라며 선 감독을 칭찬했다. 선 감독은 당시 “외국인 감독이시고, 또 낯선 곳에서 감독 생활을 하려니 힘드실 텐데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던 두 감독이 10월 초 준플레이오프부터 맞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즌 성적에선 9월 24일 현재 롯데가 9승8패로 앞서 있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긴 힘든 수치다. 삼성은 ‘지더라도 한국시리즈까지는 올라가서 패한다’는 목표를 설정해놓았다. 그렇다면 롯데를 무조건 꺾겠다는 얘기다. 롯데 역시 8년 만의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첫판부터 탈락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선동열 감독과 로이스터 감독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물이다. 우선 평소 특정 사안에 대해 거리낌 없이 속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옹호할 건 옹호하고, 비판할 건 사정없이 깎아내리는 스타일이다. 야구관은 많이 다르다. 선 감독이 일본프로야구의 장점을 되도록 흡수하려는 성향을 지녔다면 미국 출신인 로이스터 감독은 전형적인 메이저리그식 ‘빅볼’을 추구한다. ‘지키면 이긴다’는 신념과 ‘쳐야 이긴다’는 신념의 충돌인 셈이다. 삼성과 롯데가 맞붙는 과정에서 다른 야구인들의 반응을 주목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미묘하겠지만 분명 선동열 감독쪽을 응원하는 뉘앙스가 섞여 나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 야구인들은 근본적으로 외국인 감독이 너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경계하는 성향이 있다. 외국인 감독 영입이 유행처럼 퍼진다면 토종 야구인들의 입지가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8년만의 매직’에 열광하는 부산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있고, 선동열 감독은 대구 팬들과 함께 국내 야구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