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정지원(정): ‘NBA 진출’이라는 평생의 꿈을 품고 떠난 여정이었는데 어려운 결정을 했네요?
방성윤(방): 저도 처음에는 돌아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어요. D-리그 개막 이틀 전에 장 국장님이 미국에 와서 설득했어요. 꼬박 엿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찾아왔어요. 미국에서 4경기를 뛰었는데 아무리 먼 곳으로 이동을 해도 국장님은 매일 제 동선을 따라다니다시피 했죠. 정말 그 때부터 하루가 1년 같았던 날이 계속됐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네가 잘 알다시피 우리 팀이 지금…”이라며 국장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요. 저도 “왜 오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사실 매일 저녁 호텔숙소에서 인터넷으로 KBL 팀 순위와 농구 관련 소식들을 접하고 있었거든요. SK의 순위가 하염없이 추락하는 걸 보면서 제 마음도 정말 무거웠어요. 하지만 저도 단단히 마음먹고 온 터라 쉽게 마음이 흔들리진 않더라고요.
정: 그렇다면 어느 순간, 무엇 때문에 맘이 움직였나요?
방: 사실 국장님이 귀국할 때까지 전 아무런 확답도 안 했어요. 그러다가 국장님 귀국 전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심한 언쟁을 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확인한 서로의 신뢰가 시발점이 된 것 같아요.
정: 어떤 언쟁이 있었는지 공개해줄 수 있나요?
장지탁(탁): (난처해하다가) 그까짓 거 말 못할 것도 없죠(웃음). 6일 동안 잠복근무 형사처럼 매일 성윤이를 따라다녀도 소득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D-리그에서 성윤이는 외국인 선수들의 이기적인 플레이 때문에 슛을 시도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실정이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언제 NBA에 승격될 것인지 갑갑한 마음이 앞서게 됐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 성윤이 소속팀 리노 빅혼스의 제이 험프리스 감독에게 성윤이의 NBA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물어보게 됐죠.
정: 험프리스 감독은 방성윤의 NBA 진출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던가요?
탁: 험프리스 감독은 “쉽지 않겠지만 NBA급 슛 능력이 있기 때문에 수비 등 몇 가지를 보완한다면 가능하다”라고 했어요. 험프리스 감독의 말은 전형적인 미국인의 대화 스타일로 관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답변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 정도면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 그 사실을 성윤이에게 전했어요. 그런데 격분한 성윤이가 직접 험프리스 감독을 찾아가서 확인했던 거예요. 거기서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게 됐죠.
방: 제게는 “난 너에 대해 그런 얘기 한 적이 없다. 넌 NBA로 승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선수다”라고 했어요.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건지 정말 괴롭고 혼란스러웠어요. 4년 전에는 멋모르고 NBA에 도전했다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벽을 느끼며 돌아왔지만 이번엔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해서 떠난 거였거든요. D-리그에서도 한 2년은 고생해야 NBA 승격이 가능할 것이라는 제 스스로의 판단에 비교적 심적인 여유도 있었고요. 그랬었는데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지면서 제 자신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다시 한 번 하게 됐죠.
정: 그렇다고 해도 모든 걸 다 접고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방: 저도 많이 생각하고 힘들게 돌아왔습니다. 인생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면서 지난 3년간 많은 도움을 받은 SK를 선택했어요. 이제 팀이 하위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죠.
정: 그러면 NBA 진출 꿈은 완전히 포기한 건가요?
방: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 해왔던 방식처럼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도전은 하지 않을 겁니다. 가령 A매치 대회를 통한 스카우트나 서머리그 참가를 통한 NBA 도전만큼은 앞으로도 배제하지 않을 생각이죠.
정: 다시 돌아온 방성윤의 맹활약을 보고 있는 장 국장의 감정은 정말 남다를 것 같은데요?
탁: 미국에서의 6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는데 한마디로 ‘방가 찾아 3만 리’였죠. 특히 첫 이틀 동안은 성윤이에게 잘 보이려고 한국 식당에서 밥 사주고 마트에서 필요한 걸 사줬는데 기껏 고른다는 품목이 베개, 이불, 프라이 팬 등 객지에서 장기간 체류할 때 필요한 것들만 고르더라고요(웃음).
터프한 생김새와 달리 방성윤은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게다가 낯가림이 있어 종종 오해도 많이 받는단다. 일각에서는 방성윤의 NBA 도전이 몸값을 높이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또한 분수를 모르는 무모한 도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고교시절 마이클 조던을 보면서 NBA 리거를 꿈꿨던 방성윤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다. 따뜻하고 안락한 모국의 코트를 박차고 두 차례나 적자생존의 치열한 전장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힘은 평생 염원인 NBA를 향한 방성윤의 열정에서 나왔다. 그토록 바라던 큰 무대의 꿈은 일단락됐지만 그의 정열과 에너지는 이제 KBL에서 소속팀 SK를 위해 타오를 것이다.
CJ미디어 아나운서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