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5일 올림픽파크텔에서는 체육과학연구원(KISS)의 ‘2008정책연구과제 발표회’가 열렸다. 이중 고은하 책임연구자는 ‘태권도 올림픽 종목 지위 유지방안’을 발표했다. 이 발표논문 7쪽에 따르면 향후 IOC가 올림픽종목을 결정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2016 하계올림픽 종목 결정
-2012 하계올림픽종목으로 채택된 26개 종목(태권도 포함) 전체에 대해 2009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 블록투표(Bloc Vote) 실시
※블록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에만, 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추가투표 또는 종목별 투표 실시
▲2020 하계올림픽 종목 결정
-기존 26개 종목 중 1개를 탈락시킨 25개의 ‘핵심종목(Core Sports)’을 2013년 IOC 총회에서 블록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 향후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올림픽종목으로 존속
이는 KISS의 2008년 정책연구과제에서 나온 결과물인 동시에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이 경우 2012년까지 올림픽 채택종목으로 확정된 태권도는 2016년 잔류가 거의 유력한 상황이다. 26개 종목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하면 아무래도 ‘YES’ 표가 더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태권도가 다른 종목에 묻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2013년 총회까지는 여유가 있고, 이때 25개 코어종목으로만 남으면 더 이상 올림픽 잔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태권도인은 물론이고, 한국 체육계도 ‘태권도는 2016년까지는 괜찮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2020년을 대비하면 된다’고들 알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고은하 연구원도 2013년 총회에 대한 준비를 강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12월 IOC 집행위원회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2009년 코펜하겐 총회의 올림픽 종목 투표에 대한 여러 내용이 확인됐다. 결론은 아직 IOC가 2009년 종목투표 방식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기존의 ‘2단계 투표’ 말고 아예 2009년 한 번에 25개 코어종목에 대한 투표를 하는 ‘일괄처리안’이 유력하게 대두했다는 것이다. 유럽국가에서 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A 씨는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다소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현재 IOC는 두 가지 안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기류는 일괄처리안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6월 부산에서 열린 WTF 베이징올림픽 코치세미나에서 하계올림픽종목협의회(ASOIF) 디렉터인 앤드류 라이언이 “태권도는 모든 것이 결정되는 2009년 IOC총회를 잘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WTF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강석재 홍보부장은 “맞다. 분명 기존에 알려진 대로 투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WTF)도 다각도로 확인 중에 있다”고 답했다. WTF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부에 적극 알리지 않고, 오히려 ‘위기론을 부추기는 것은 나쁜 의도’라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만일 IOC가 ‘일괄처리안’을 택할 경우 기존 26개 종목(2008베이징올림픽 기준)에서 빠지는 하나의 종목은 바로 태권도라는 점이다. 올림픽 종목이 된 시기도 가장 늦고, 베이징올림픽 심판폭행사건과 IOC 위원에 대한 WTF의 뇌물의혹, 노조문제 등으로 태권도와 WTF가 가장 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10월까지는 시간도 부족해 정부나 WTF, 그리고 태권도계 전체가 이에 대응할 시간도 촉박하다는 문제도 있다.
기본적으로 ‘25개 핵심종목’은 태권도가 2표(일부에서는 1표)차이로 살아남은 2005년 싱가포르 IOC 총회 이후 ASOIF가 제기했다. 싱가포르 총회처럼 전 올림픽 종목에 대한 개별투표를 4년마다 실시한다면 각 종목 세계단체에 어려움이 많다고 IOC에 호소한 것이다. 그래서 25개 코어종목은 사실상 영구종목으로 유지하고, 대신 추가로 최대 3종목까지만 4년마다 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 핵심종목 제도의 도입이 2009년인지, 아니면 2013년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칼자루는 IOC가 쥐고 있다. IOC가 중차대한 사항임에도 최종 결정을 늦추고 있는 것은 미리 발표하면 태권도 등 관련단체가 조직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IOC 내부에 밝은 한 관계자는 “현재 IOC와 ASOIF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WTF가 ASOIF 내에서 위상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ASOIF의 25개 경기단체가 WTF를 ‘왕따’시키고 자기들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IOC도 내심 이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태권도가 빠지면 가라테나 골프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종목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A 씨도 “IOC는 빠르면 오는 5월, 늦으면 10월 총회 직전에 투표 방식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시간을 늦추는 것 자체가 태권도 배제와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했다.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 여부는 MB정부 차원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제다.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될 경우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있고, 또 2010년 4월 지방선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청와대는 물론이고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암암리에 국내에 스포츠 주요인사와 접촉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IOC 내부 정보도 획득하고 있지 못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