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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한 에이전트는 지극 정성으로 돌봤던 축구선수에게 결별 통보를 받았다. 주목받지 못하던 원석을 많은 이가 탐내는 보석으로 만들었지만 ‘해준 게 없다’는 이유로 갈라서자는 소리를 들었다.
에이전트는 “그러지 뭐”라고 말하며 동생처럼 생각하던 선수와 ‘쿨’하게 작별했다. 하지만 ‘사고 전문 에이전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선수 뒤치다꺼리에 바친 지난 날이 생각나 씁쓸한 미소까지 감추지는 않았다.
<일요신문>이 비시즌 기간에 일어나고 있는 에이전트 관련 이야기 몇 개를 전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2009년 K리그의 단면이다.
# 입소문의 힘
소속팀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다고 생각한 이 선수는 태극마크까지 달아본 만큼 나름대로 자신을 스타라고 생각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 선수는 남들 다 가는(?) 일본프로축구 J리그에서 연락조차 없자 그동안 신뢰하던 에이전트의 능력을 의심했다. 때마침 소속팀 선배가 자신의 에이전트를 소개하며 부추기자 결국 에이전트를 바꾸기로 했다.
에이전트를 바꾸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이 선수. 하지만 그가 최근에서야 알아차린 게 두 가지 있다. 새로운 에이전트가 기존 에이전트에 비해 수수료를 더 받는다는 사실. 또 그에게 자신의 에이전트와 계약하라고 권유했던 선배는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했다는 것이다. 이 선수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에이전트가 세를 불리려면 입소문을 타야 한다. ‘A 구단에는 B 에이전트가 먹힌다’나 ‘J리그 가려면 C 에이전트와 계약해야 한다’는 소문을 타면 잘나가는 에이전트가 될 수 있다. 물론 다 그렇진 않다. 번드르르한 말로 선수들을 홀릴 뿐 정작 열매를 내놓지 못하는 에이전트도 많다.
# 특별한 관계
최근 A 구단 고위관계자와 에이전트 간의 ‘특별한 관계’가 구설에 올랐다. A 구단에 입단하는 선수 대부분이 특정 에이전트와 계약한 선수라는 점에서 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A 구단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고위관계자와 에이전트 간에 뭔가 있다고 보는 건 억측”이라고 전제한 뒤 “문제는 고위관계자의 입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위관계자는 감독이 특정 선수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소문 속의 에이전트에게 죄다 말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스’를 전해들은 에이전트의 다음 행동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해당 선수에게 가서 “A 구단이 너를 주목한다. 내가 너를 A 구단에 보내주겠다”고 유혹해 에이전트 계약을 해버린다. 이러니 A 구단에 입단하는 선수 대부분이 특정 에이전트 소속일 수밖에 없다.
# 범털과 개털
에이전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꿨던 한 선수는 새로운 둥지를 튼 뒤에야 자신의 이적을 이끈 게 새로 계약한 에이전트가 아니라 그전 에이전트라는 걸 알았다. 결국 새로 계약한 에이전트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이 선수는 즉각 계약해지를 선언했다.
이 선수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선수의 이적에 복수의 에이전트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구단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에이전트는 한정됐기 때문이다.
최근 모 구단과 끈끈한 관계에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 에이전트는 한 외국인 선수의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배 에이전트를 ‘얼굴마담’으로 내보냈다. 또 대외적으로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선수의 이적에 깊숙이 관여하며 특정 구단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교묘하게 피했다.
# 위임장 남발
에이전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선수들의 위임장 남발이다. 위임장을 마구 뿌리고 다니는 선수로는 국가대표 출신 한 선수가 유명하지만 올 겨울 K리그 위임장 남발 사건의 중심에는 브라질 출신 선수 2명이 있었다. 특히 최근 중동으로 진출한다고 했다가 K리그로 유턴한 한 선수는 위임장 과다 남발로 구설에 올랐다.
한 구단 사무국장은 “선수가 위임장을 남발하는 탓에 한 선수의 이적에 무려 5명의 에이전트가 관여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 청소부 용병?
요즘 K리그 추세를 보면 너도 나도 J리그로 나가려는 분위기다. J리그가 K리그에 비해 덜 거칠고 ‘엔고’때문에 연봉을 조금만(?) 받아도 큰돈을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선수들 사이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J리그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에이전트는 능력 있는 에이전트이고, 그렇지 못한 에이전트는 ‘허당’이라는 인식이 선수들 사이에 퍼졌다.
선수들 사이의 이런 분위기를 보며 J리그를 잘 알고 있는 에이전트들은 쓴웃음을 짓는다. 한 에이전트는 “J리그 구단 관계자 중에는 K리그 선수를 청소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인 선수는 몸값도 싸고 조금만 칭찬하면 죽어라 뛰는 용병이라고 본다”며 “그런 취급 받는 줄도 모르고 J리그 못가서 안달이 난 선수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에이전트는 “지난달 J리그 관계자로부터 값싼 올림픽대표 출신 한국선수를 알아봐달라는 메일을 많이 받았다”며 “한국선수를 값싼 용병 정도로 생각하는 J리그 관계자가 꽤 있다. ‘저렴한 가격’의 용병은 언제라도 퇴출되는 게 숙명인데 그걸 모르는 선수가 많다”고 뼈있는 말을 전했다.
# 검은 커넥션
최근 한 구단 고위관계자는 연봉 협상을 위해 한 선수의 에이전트와 전화통화를 하던 중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에이전트가 통화과정에서 “감독이 선수에게 특정 에이전트와 계약하면 연봉을 더 받을 수 있게 힘쓰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고 항의한 것이다.
놀란 구단 관계자는 해당 선수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하지만 이 선수는 “감독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해당 선수의 부인으로 사건의 진실을 더 파헤치지는 않았지만 이 관계자는 말로만 듣던 감독과 에이전트 간의 검은 커넥션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