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국은 지난해 10월 말 귀국해선 갑자기 결혼 날짜를 잡았다. <일요신문>과 당시 인터뷰 때 비보도를 전제로 1월 초 결혼할 것이라고 얘기한 탓에 결혼 안한 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래서 임신 때문에 결혼을 일찍 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펄쩍 뛴다.
“전혀 아니에요. 결혼 날짜를 잡고 3주 정도 있다가 임신인 줄 알았어요. 남들은 속도위반해서 결혼을 서둘렀다고 생각하는 데 진짜 아니라니까요. 사실 처음에 와이프한테 임신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어요. 마치 애들이 애를 낳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부모님께서 오히려 잘 됐다고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와이프도 미국 생활하면서 아이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아직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다. 원래 신혼여행지를 하와이로 정했었는데 아내 김 씨가 “지금 신혼여행이 중요하지 않다. 여행은 나중에 여유있을 때 가고 운동에 전념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신혼여행을 만류했다고.
김 씨는 뱃속에 있는 아이의 태명을 ‘똘똘이’라고 지었다고 귀띔한다. 그래서 아들이냐고 물었더니 미소만 짓는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게 돼서 저도 많이 당황스러워요. 운동 선수의 아내가 될 준비도, 엄마가 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두 가지를 한꺼번에 껴안게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제국 씨가 이번 겨울 동안 훈련하는 걸 보면서 임신한 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힘들고 심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운동했거든요. 좋아하는 술도 자제하고 지인들 전화도 안 받고 오로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만 했어요. 아무래도 어깨가 무겁겠죠. 아내와 아이까지 생겼으니까.”
김 씨는 운동 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남편의 야구 생활에 대해 굉장히 잘 이해해준다. 지난해 류제국이 수술과 재활로 애리조나 재활 캠프에 있을 때 스톱워치를 들고 같이 러닝을 하면서 류제국의 재활 훈련을 도와줬다고 한다.
▲ 지난 9일 출국한 류제국-김혜미부부.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혜미가 나랑 결혼하려고 그동안 일본에서 했던 공부를 포기했어요. 장모님이 많이 아쉬워하셨는데 결국엔 허락하시더라고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접고 야구선수의 아내로 내조를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텐데 단 한 번도 후회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아요. 한마디로 ‘요즘 여자’ 같지 않죠.”
남편 얘기를 흐뭇하게 듣고 있던 김혜미 씨도 본격적으로 남편 자랑에 나섰다.
“얼핏보면 고집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할 것 같은데 제가 부탁하는 건 잘 들어줘요. 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친구 만나는 것보다 운동에 전념하라고 하면 또 그렇게 해요. 가끔은 너무 통제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한데 올시즌이 너무 중요하다보니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김 씨는 운동선수의 아내이자, 류제국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류제국을 괴롭혔던 선입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제국 씨가 안티 팬이 많대요. 건방지다고, 말만 앞선다고 이상한 별명도 붙었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절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워낙 오랫동안 혼자 외국 생활을 한 터라 정도 많고 마음도 따뜻하고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는 편이에요. 안티 팬을 팬으로 만드는 방법은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2001년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던 류제국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를 거쳐 올시즌부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는다. 그동안 몸 담았던 팀은 3개 팀이지만 루키 팀을 거쳐 트리플A,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팀까지 모두 합치면 15개 팀 정도 된다고 한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간 것 같아요. 공으로 물수리를 맞혀 법정에 섰을 때를 제외하곤 밑으로 내려가진 않았어요. 트리플A와 빅리그를 오락가락했을 뿐이죠. 이번 시즌이 중요한 이유는 저한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 때문이에요. 이런 좋은 기회를 잡지 못하면 전 정말 그렇고 그런 선수밖에 안 되거든요. 샌디에이고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백)차승이 형도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고 또 평소에 차승이 형을 좋아한 터라 도움 받으면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많은 걸 배워야겠죠.”
인터뷰 말미에 서로에 대한 부탁 또는 당부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김 씨는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즐기면서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 어린 얘기를 전했고 류제국은 “아프지 말고 건강 유지해서 ‘똘똘이’를 예쁘게 낳아 주면 대만족이다”라고 대답했다.
샌디에이고의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애리조나는 추신수의 집이 있는 곳과 가깝다. 추신수는 기자한테 백차승과 류제국이 캠프에 오면 집들이를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빅리그 마운드에 반드시 ‘류제국’이란 이름 석자를 각인시켜 놓겠다고 다짐하는 류제국의 출국 장면이 더할 나위 없이 꽉 차 보였다. 그의 옆에는 ‘가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