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건 유니폼을 입은 조원희 (그래픽 합성) | ||
이동국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계약기간이 남아있던 성남으로부터 ‘이적할 팀을 찾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이동국에게 ‘오일머니’의 유혹이 찾아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프로축구팀에서 영입제의가 온 것. 적잖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동국은 자신의 남은 축구인생과 가족을 생각해 K리그 잔류를 선택했다.
성남을 떠난 이동국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 K리그 팀은 전북 현대와 제주 유나이티드였다. 두 팀 모두 계약기간으로 2년을 제시했는데 제주에서 내놓은 협상안이 더 매력적이었다. 제주는 전북에 비해 3억 원이나 많은 순수연봉을 제시했고 추가로 도움 수당, 골 수당, 출전 수당 등을 내걸었다.
연봉과 각종 수당을 모두 더했을 때 제주가 제시한 금액은 전북의 그것에 비해 무려 5억 원 정도가 많았다. ‘억’소리가 나는 차이라 흔들릴 법도 했지만 이동국은 팀의 우승 가능성, 재기를 위한 조건을 감안해 전북 입단을 선택했다.
전북과 이동국의 계약은 숨 가쁘게 진행됐는데, 일이 급하게 추진되다보니 막판에 진통이 있었다. 이동국은 1년 계약 기간이 남은 성남으로부터 서면으로 ‘결별 통보’를 받았지만 바이아웃 조항 때문에 이적 시 4억 원의 이적료가 발생했다. 하지만 전북은 성남이 이동국을 조건 없이 내친 것으로 알고 이적료 문제는 생각지도 않았다. 당연히 양 구단 사이에 이적료 문제가 불거졌고 이로 인해 성남에 대한 이동국의 반감은 더욱 커졌다.
▲ 이동국 | ||
K리그를 떠나길 원했던 이천수는 독일 분데스리가나 일본프로축구(J리그)를 알아보며 외국 재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그를 원하는 구단은 없었다. J리그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천수는 크게 당황했고, 급기야 그의 에이전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리그 진출까지 추진했다.
외국 재진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천수는 여러 에이전트에게 일을 맡기면서 K리그 안에서 새로운 팀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 한 명으로부터 전남 드래곤즈 박항서 감독이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천수의 전남행은 박항서 감독의 뚝심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었다. 전남 고위층은 문제아로 낙인찍힌 이천수를 영입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허무맹랑한 소문이긴 하지만 한때 이천수가 당분간 단돈 한푼도 안 받고 전남에서 뛴다는 얘기가 축구계에 그럴싸하게 돌았다. 이천수를 영입하는 데 부담감을 느낀 전남 관계자가 연맹에 0원 계약이 가능한지 묻고 일부 언론에 이를 흘린 게 살이 붙으면서 ‘카더라 통신’이 탄생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적잖은 축구팬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자 연맹 기획운영부는 “선수와 계약할 때 통일계약서의 공란을 모두 채워야 한다. 즉 선수 연봉을 신고할 때 단돈 1원이라도 적어야 한다”며 일부 언론이 전남 관계자 말만 듣고 내놓은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구단 최고 대우를 보장받긴 했지만 이천수는 전남에 입단하면서 ‘아~옛날이여’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천수는 2007년 9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입단하면서 연봉 9억 원 정도를 받았는데 1년 뒤 수원으로 임대되면서 5억 원으로 깎였고 그마저도 전남에 입단하면서 반 토막이 났다.
이천수의 임대료만 봐도 그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페예노르트는 지난해 7월 손해를 감수하고 1년 임대료 8억 원에 이천수를 내쫓듯 수원으로 보냈고 전남에 임대를 보낼 때는 한 달에 1만 달러(1575만 원)만 받기로 했다. 이천수가 2007년 9월 페예노르트에 입단할 때 기록한 이적료는 20만 유로(26억 원)였다.
올 겨울 축구팬을 가장 안타깝게 한 건 31세의 이른 나이에 축구화를 벗은 고종수의 은퇴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비쳐졌지만 사실 고종수의 은퇴는 지난해 가을부터 감지됐다.
▲ 이천수 | ||
고종수 은퇴의 결정적인 계기는 부상 치료 과정이었다. 지난해 8월말 무릎을 다친 고종수는 과거 부상 악몽 탓에 정밀검진과 치료를 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구단과 상의 없이 행동했다. 급한 마음에 앞뒤 재보지도 않고 행동한 그에게 구단은 아연실색했다. 대전 사장은 밤 10시에 구단 소속 선수가 에이전트를 통해 내일 아침 일본에 간다는 통보를 해오자 대로했다. 구단이 멋대로 움직인 고종수를 보며 노발대발한 사이 선수는 구단이 자신의 치료를 막았다며 흥분했다.
양측의 갈등은 구단이 고종수를 축구대표팀 주치의가 있는 김&송 유나이티드에 보내 검사를 받게 하는 등 구단 통제 아래 치료 및 재활을 진행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애초 고종수는 수술이 필요 없다는 진단 결과에 만족했고 성실하게 치료 및 재활훈련에 임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11월부터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고종수가 재활을 포기하고 은퇴를 택한 건 스스로 흥이 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천재의 특징 때문이란 얘기가 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부상 탓에 은퇴한 게 아니라 축구에 대한 열정이 식었기 때문에 축구화를 벗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수원에서 FA로 풀린 조원희가 처음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한 건 아니다. 조원희는 기존에 계약했던 에이전트를 통해 J리그 빗셀 고베와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FC 톰 톰스크 진출을 추진하다 일이 풀리지 않자 박주영을 프랑스 1부리그 (리그1) AS모나코로 보낸 ‘텐플러스스포츠’와 손을 잡았다.
1월 8일 유럽행 비행기를 탄 조원희가 향한 곳은 잉글랜드가 아닌 프랑스였다. 박주영이 뛰는 리그1 AS모나코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은 조원희는 감독과 구단 관계자로부터 ‘OK 사인’을 받았음에도 ‘리그1 구단은 비 유럽선수를 4명까지 등록할 수 있다’는 규정 탓에 발이 묶였다. 모나코의 용병 보유한도가 꽉 차 있어 무작정 기다리거나 다른 팀을 알아봐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텐플러스스포츠의 유럽 파트너인 제스그룹 모나코를 통해 유럽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을 추진하던 조원희.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맞았다. 생각지도 않던 위건으로부터 2월 초에 연락이 왔고 같은 달 16일부터 1군 훈련에 참여한 뒤 하루 만에 스티브 브루스 감독과 브렌다 스펜서 사장으로부터 OK사인을 받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조원희의 위건 입단 조건은 계약기간 2년 4개월에 세금을 포함해 최대 250만 파운드(약 55억 원)를 받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한편 조원희의 원 소속팀 수원은 텐플러스스포츠가 기자들을 불러놓고 위건 이적을 발표할 때까지 조원희가 수원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조원희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