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대 명지대 교수(왼쪽)와 조훈현 9단. | ||
그러나 아직도 각론은 없다. 몸을 던지는 사람도 없고, 돈을 대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황 7단 같은 청년을 보면 미안하다. 황 7단 같은 청년들에게 바둑을 갖고 넓은 세계로 나갈 것을 권하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상대 교수(68)를 보면 더욱 미안하다. 각론과 비전을 갖고 몸을 던진 유일한 사람이다.
한 교수는 1975년부터 20년 동안 호주에서 살았다. 본업은 시드니대학 한국학 교수였지만 바둑활동이 본업 못지 않았다. 호주바둑챔피언십에서 12번 우승했고, 세계아마대회에 호주대표로 6번 출전했으며 종당에는 호주바둑협회장까지 지냈으니까. 귀국해서는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바둑영어와 영-미문화를 강의하다가 그걸로는 너무 미흡해 2004년 10월 학교 밖에서 ‘바둑영어교실’을 열었다.
그에 앞서 2003년부터는 매년 몇 차례씩 바둑여행팀을 만들어 해외 각지를 돌며 한국 바둑을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독자적인 힘으로 전 세계에 현지 주재 한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한국대사배 바둑대회’를 만들고 있다.
▲ 독일에서 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윤영선 5단. | ||
한 교수의 영어바둑교실 수강생은 평균 20명선. 10대 연구생 소년부터 은퇴한 60대 교수까지 직업 연령층이 다양하다.
평균 수강생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덧 200여 명이 이수를 했다. 현재 한국 바깥에서 한국 바둑을 알리고 있거나 알리려 하거나 알렸던 남녀 프로-아마의 바둑전도사는 거의 이곳 출신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자리를 잡은 여류프로 윤영선 5단, 윤 5단과 함께 활동하다가 귀국해 있으며 재도전 여부를 숙고하고 있는 여류 프로 강승희 2단, 황인성보다 먼저 함부르크 바둑클럽에서 사범 노릇을 했던 조석빈 7단, 베를린을 본거지로 유럽 전역을 돌아보았던 홍슬기 7단, 황 7단보다 한 달 쯤 앞서 베를린으로 날아가 현재 유럽의 지역대회 몇 개를 석권하고 있는 베를린 바둑클럽의 제3대 한국인 사범 오치민 아마 7단,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오은근 6단, 벨기에에서 응수타진하고 돌아와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김중엽 7단.
호주로 건너가 호주바둑의 지도사범 역할을 하고 있는 안영길 프로 6단, 시드니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세돌 9단의 누나와 자형인 이세나 6단과 허기철 6단, 그리고 미국 시애틀의 김명완 프로 8단과 이름도 근사한 장비 7단.
프로기사와 오은근 6단을 빼고는 전부 연구생-명지대 바둑학과 출신으로 계보가 같다. 그들 대부분을 아마 7단이라고 한 것은, 공인단은 조금씩 다르지만 유럽에서는 전부 7단 대우를 받고 있고 실제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오은근 씨(45) 부부와 허기철 씨(40) 부부를 생각하면 더욱 미안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20대 청년들이야 홀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가정을 꾸리고 잘 살다가 단지 바둑이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 40대에 접어든 어느날 갑자기 안정을 박차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지의 땅으로 날아간 사람들이다.
지난해 여름 스웨덴 렉산에서 열린 유러피안 콩그레스에서 오은근 씨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지금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래도 바둑으로 돈을 벌고 그게 좀 모이면 바둑 여행을 떠난다. 바둑을 잘 모르면서도 남편이 하는 일이라 믿고 따라온 그 부인은 더 대단한 사람이다. 바라보는 곳이 같으면, 조금 부족해도 행복한 것. 아니 부족해야 더 깊어지는 것.
바둑 좋아하고 여유도 있는 분들이 이들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 이들은 지금 씨를 뿌리고 있다. 열매는 훗날 다른 사람이 거둘 것이다. 50년 전에 조남철 선생은 씨를 뿌렸고, 50년이 흐른 오늘 이창호 이세돌이 열매를 거두듯이.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