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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팀 주장을 맡은 손민한. 임영무 기자 | ||
WBC는 국제야구연맹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벤트성 대회이지만, 명실공히 각국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지상 최대의 ‘야구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올림픽 금메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의미가 크다. 이런 수준 높은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린 한국은 1회때 4강의 성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게 됐다.
지난 2월 대표팀의 하와이 전지훈련이 시작된 후 두 달 넘게 진행돼온 WBC는 화려한 성적답게 이런저런 뒷얘기도 많았다. 한국의 선전 속에 숨어있었던 몇몇 일화들을 돌이켜본다.
[추신수 3점포는 감독 작품?]
추신수가 1회초 1사 2,3루서 날린 3점 홈런은 이전 베이징올림픽에서의 이승엽을 연상케 한다. 그동안 팔꿈치 부상으로 지명타자로밖에 출전하지 못했던 추신수는 클리블랜드 구단에서 준결승부터는 외야수로 출전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그동안의 부진(2라운드까지 10타수 1안타)으로 인해 선발 출전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추신수에 대해 변함없는 믿음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추신수를 선발 우익수로 기용했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뜻이었다. 추신수는 경기 전 동료 선수들에게 베네수엘라 선발투수 카를로스 실바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는데 결국엔 자신이 실바를 상대로 3점 홈런을 터트렸다. 성적 부진으로 ‘계륵’ ‘딜레마’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추신수는 베네수엘라전에서의 멋진 3점포로 그동안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만약 추신수가 대회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다면 정작 메이저리그 시즌에서도 큰 영향을 받을 뻔했다.
[지는 게 이기는 것?]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각) 한국은 일본과의 2라운드 순위결정전에서 2 대 6으로 패했다. 앞선 세 차례 일본전에서 승패에 따라 웃고 울었던 것과 달리 이날 패배 후에는 김인식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의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담담해하는 눈빛 속에 슬그머니 웃음기가 스며들어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의로 일본에 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본래 지려 해도 안 되는 게 야구다. 나중에 김인식 감독은 “처음부터 세게 붙지 않은 건 사실이지. 주전을 몇 명 빼고 시작했으니까”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병역혜택의 진실]
애초부터 이번 대표팀은 병역혜택과는 관계가 멀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이미 한국프로야구의 젊은 대표주자들이 대부분 병역혜택을 받았다. 이번 WBC 대표팀에선 추신수 최정 박기혁 정도가 군미필 선수였고, 대회 직전에 교체멤버로 투입된 임태훈까지 4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전 대표팀의 좋은 성적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병역 문제가 모티브가 돼 좋은 성적을 남겼다’는 오해는 이번 대표팀에선 별로 해당사항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비록 4명 뿐이라 해도 고참 선수들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다. 주장 손민한을 비롯해 몇몇 고참들이 그 4명의 병역혜택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쿄 라운드에서 1위의 성적을 거두고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 이들 고참들이 하네다공항에서 좋은 성적을 남길 경우 후배들을 위해 병역혜택 문제를 고위층에 건의해야겠다는 의견을 나눈 바 있다. 샌디에이고 라운드 때 KBO 하일성 사무총장이 여기에 힘을 보태면서 각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에서 군대 관련 사안은 정말 민감한 문제다. WBC 대표팀의 군미필자 4명에 대한 병역혜택 얘기가 나오자마자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WBC가 전세계 최고 야구팀을 가리는 대회이고, 그 대회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하자 약간씩 여론이 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신, 진정 김태균을 원하는가]
도쿄라운드 때 일본과의 순위결정전에서 결승타를 친 한화 김태균을 놓고 말이 많았다. 일본 언론에서 ‘한신 타이거스가 김태균 영입을 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 정확하게, 핵심을 찔러 ‘딴죽’을 건 인물은 바로 김인식 감독이다. 소속팀 선수에 대한 일본 진출설이 나돌자 김 감독은 과히 유쾌한 표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니, 말이 안 된다. 한신에는 아라이 다카히로라는 걸출한 1루수가 있는데 대체 왜 김태균에 대해 관심을 보이겠는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프로야구의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확실한 주전 선수가 있는 포지션에 백업플레이어를 키우는 경우는 있어도, 당장 경쟁자가 될 선수를 영입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보면 한신이 김태균에 관심있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관심 차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컨디션 조절 실패한 손민한]
한국이 결승까지 진출한 상황에서 대표팀의 모든 선수 가운데 롯데 손민한은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손민한이 이번 WBC에서 얼굴조차 내밀지 못했던 건 이유가 있다.
대표팀의 13명 투수 중에서 손민한이 컨디션 조절에 가장 실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베테랑 투수라면 컨디션 조절은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WBC와 같은 단기전에선 힘들다. 매 경기가 중요하다보니 안 되는 몸으로 등판할 수는 없고, 페이스를 끌어올리자니 시공간적 여유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손민한은 대표팀 주장으로서 최고의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데 공을 세웠다. 대부분 20대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이번 대표팀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며 후배들을 다독거리고 있다. 누구도 신경 쓰지 못할 때 병역혜택에 대한 의견 개진을 언급한 것도 그였으니 일단 기량 외적인 부분에서 대표팀의 일부분을 분명 차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언론이 공히 그랬다. 한국 대표팀은 과거에 비해 스타플레이어는 줄어들었지만 대신 팀워크가 단단해졌다는 평가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손민한이 큰 역할을 했음은 당연하다.
정진구 스포츠라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