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전남 영암군은 무려 850억 원의 예산, 공기 2년 예정으로 조훈현 9단을 기리는 바둑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윤기현 9단의 사퇴소식은 씁쓸하다. 이창호 9단의 연인으로 알려진 이도윤씨가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 ‘경기 불황=기전 불황?’이라는 글을 올렸다. 기전이 없어지거나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바둑을 위한 테마파크가 생긴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조남철 선생의 고향인 전북 부안에서도 3년 전에 200억의 예산으로 조남철 선생의 박물관 기념관 역사관 등을 만드는 일을 시작해 현재 공사 중이고, 얼마 전에는 전남 신안군에서 이세돌 9단의 기념관을 마련했다. 전주는 이창호 9단을 배출한 곳이니 거기도 뭐가 생길 것이다.
다 좋은데 한 가지, 테마파크라는 말에는 무조건 찬성하고 싶지가 않다. 위락시설 같은 게 같이 들어선다는 뜻일 텐데, 그게 좀 그렇다. 바둑은 고매하고 위락시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바둑과 위락시설이 한자리에 있다고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잘못하면 주객이 바뀌어 바둑이 위락시설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바둑이 위락시설을 포장해 주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아서이고, 위락시설이야 전국 어딜 가도 다 있는 건데, 굳이 바둑과 또 묶을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지자체의 홍보와 사업에 바둑을 동원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대신 충분한 내용을 갖추어 줄 것을 바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일대를 하나로 묶는 그런 구상도 해봄직하다.
전주와 부안이 가깝고, 영암과 신안은 지척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김인 9단이 고향 강진이다. 강진군도 요즘 바둑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전주를 시발점으로 해서 부안 영암 신안 강진까지, 호남의 서-남해안을 연결하는 ‘바둑의 띠’. ‘바둑 벨트’ 같은 것 말이다. 가까운 동네에서 지자체가 다르다고 같은 걸로 경쟁하는 것은 낭비일 수가 있다. 내용도 바둑과는 점점 멀어질 수 있다. 바둑은 보여 줄 건 많다. 그러나 화려하고 신나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많지가 않다. 바둑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볼거리보다는 생각할거리인 것.
중국의 바둑 정책, 마인드스포츠 정책은 확실히 우리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 우리처럼 바둑 하나만 갖고 바둑도 체육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바둑의 흥행을 위해서 그런 것일 텐데, 그렇다면 바둑에 마인드스포츠라는 옷을 입혀 주고 장기 체스 브리지 같은 것들과 함께 흥행의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괜찮은 전략전술로 보인다. 이를테면 적과의 동침. 일단 자리를 잡고 나서, 필요하다면 장기 체스 등과 다시 경쟁을 해도 된다.
윤 9단의 경우 인터넷의 댓글들을 보면 본인이 자진 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어선 안 되고, 한국기원에서 제명 처분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이야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으니 사실은 그게 그거다.
윤 9단은 한국기원 부산지역본부장을 지냈던 고 김영성 씨의 유족으로부터 2007년 바둑판 매각대금 반환 청구소송을 당해 20개월간의 법정다툼을 벌였으나 지난달 12일 대법원 최종심에서 패소했다.
위기십결의 열 가지 교훈 중에는 버리라고 권하는 게 세 개나 된다. 사소취대(捨小取大·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기자쟁선(棄子爭先·돌 몇 점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봉위수기(逢危須棄·위기를 만나면 모름지기 버려라). 지금쯤 윤 9단도 버리지 못했던 걸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기전 불황은 어제 오늘이 아니라 2~3년 전부터 있어 온 얘기다. 이건 한국기원이 ‘주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대책 마련에 노심초사하고 있겠지만 팬들의 눈에는 늘 좀 미흡하게 비쳐지고 있다. 한국리그가 인기를 끌었는데 축소되었고, 최근엔 BC카드배가 새로운 모습으로 크게 호응을 받고 있는데 한편에선 전통 있는 기전들이 없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조금씩 하향추세인 것.
엇갈린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헷갈린다. 바둑계는 괜찮은 것인지,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퇴하고 있는 것인지, 그게 꼭 경기 때문인 것인지. 한쪽에선 850억 원을 들여 바둑공원을 만든다고 하고 한쪽에선 “도대체 대국이 있어야 대국료를 받을 것 아니냐. 대국이 없으니 수입도 없다”고 허탈해 하는 프로기사들이 있다. 프로란 게 원래 자기 능력껏 벌어먹고 사는 것인데,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하는 팬들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기원만큼은 프로 입문을 관장하고 프로기사들을 소속 기사로 거느리고 있는 한 프로기사들의 삶, 아니 생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기원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니까.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