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 전 국회의장(사진제공=염홍철 전 대전시장)
[대전=일요신문] 육심무 기자 = 염홍철 전 대전시장이 19대 국회을 끝으로 정계를 떠난 강창희 전 국회의장을 정의롭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염 전 시장은 6일 오랫동안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월요일 아침 편지’를 통해 “강창희 전 의장은 정의로운 사람이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었으먀, 37년의 정치생활에서 단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로 거론된 적이 없었던 청렴한 정치인이었다”고 밝혔다.
또 “그에겐 열정적이고 불같은 성정이 있는 반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이 있다”면서 . 대의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대충 넘어가도 정의가 훼손될 때는 온몸을 던져 거역하는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고 칭찬하고, “긴 정치 인생을 뒤로 하고 퇴장하는 그에게, 친구로서 동지로서 남은 인생의 연장전에서 또 다른 멋진 슛을 기대해본다”고 했다.
19대 국회 임기를 이틀 앞두고 정치 입문 37년만에 국회를 떠나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고별 연설에서 정치인들에게 한 “대의(大義)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리고, 큰 정의를 위해 작은 정의를 희생시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기를 당부합니다.”하는 인용으로 편지를 시작한 염 전 시장은 “강창희 전 의장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의 정계은퇴에 대한 남다른 감회가 있어 공개적으로 ‘정치인 강창희’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염홍철 대전시장의 ‘월요일 아침편지’ 전문.
429번째 월요일 아침편지를 띄웁니다.
“대의(大義)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리고, 큰 정의를 위해 작은 정의를 희생시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기를 당부합니다.”이 구구절절한 당부의 말은 19대 국회 임기를 이틀 앞둔 날, 정치에 입문한 지 37년 만에 국회를 떠나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고별 연설에서 정치인들에게 한 말입니다.
임기를 마친 국회의원이 퇴임식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행사는 국회 안팎으로 좀 이례적이었습니다. 강창희 전 의장 본인도 “지금까지 국회의원은 물론 국회의장을 지낸 분들조차 국회를 떠나면서 퇴임식다운 퇴임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선례를 남긴다는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퇴임식의 속내를 밝혔습니다.
저는 강창희 전 의장과 친구로서, 또는 동지로서, 때로는 정치노선이 달라 반목도 하면서 50여 년 동안 함께 하였습니다. 하루라도 안 만나면 섭섭할 만큼 자주 만나기도 하였고, 20대 초반부터 자주 여관방에서 동숙하며 나라걱정(?)에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도 짧은 기간이지만 정치적 입장이 달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지요.
오늘은 누구보다도 강창희 전 의장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의 정계은퇴에 대한 남다른 감회가 있어 공개적으로 ‘정치인 강창희’를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강창희 전 의장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군 출신으로 입법부 수장을 지낸 범상치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역대 의장 중 제9대 정일권 의장과 제11대 정래혁 의장이 군 출신이었지만, 당시는 각각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고 군 출신들이 국회의원에도 상당수 있었기에 이 두 분은 군 출신이라는 점이 국회의장으로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줬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강창희 의장은 전혀 다른 조건에서 국회의장에 당선된 드문 사례입니다.
또 30대 초반에 정치에 입문하여 올해 70세로 정치를 마감하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뼛속까지 정치인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실제의 그는 정치인의 특성과는 전혀 다른 성품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를 들어, 정치인의 필수적 자기관리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라면, 강 전 의장은 오히려 그것을 싫어한 믿어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때문에 6선을 거치는 동안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그가 한 일이 시민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 낙선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염홍철 전 대전광역시장
제가 시장직에 있을 때 접한 강 의장의 일화 중에는 중요한 사업을 유치하고도 보도자료 조차도 내지 못하게 하여 보좌진들을 당황하게 만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들을 부풀려 홍보하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이 외에도 강창희 전 의장은 육사생도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한 만능 스포츠맨이며, 강직한 성품 때문에 무인(武人)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상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풍부한 사람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역사, 철학, 문학 분야의 독서를 많이 했고, 명문장을 쓰는 사람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혹자는 강창희 전 의장에 대해서 ‘6선 중진에다 국회의장까지 했지만 중앙정치에서 정치적 이슈를 별로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부정적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그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그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몸에 배어서인지 남 앞에 잘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에도 당의 공천심사위원장 등의 자리를 제안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것이 성사되지 않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으나 본인이 고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다 그런 것은 아니어서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침묵하지 않습니다.
강 전 의장이 과거 DJP 공동정부 출범 후 과기부 장관직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1년 만에 스스로 장관직을 사임했습니다. 이유는 DJP 공동정권이 내각제 추진을 국민에게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소속정당이었던 자민련에 돌아왔으나 내각제 추진, 의원 꿔주기 문제와 관련하여 JP와 자주 충돌을 하였고 결국 자민련에서 제명을 당했습니다. 자민련의 사무총장과 원내총무 등을 거친 그가 제명을 당할 때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고독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추종자를 설득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그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서두에 고별 연설의 한 구절을 소개했듯이 ‘대의를 위해서는 소아를 버리지만 큰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결코 희생을 마다않는 사람’이 바로 강창희 전 의장입니다.
강창희 전 의장은 정의로운 사람이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었습니다. 37년의 정치생활에서 단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로 거론된 적이 없었던 청렴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에겐 열정적이고 불같은 성정이 있는 반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이 있습니다. 대의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대충 넘어가도 정의가 훼손될 때는 온몸을 던져 거역하는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습니다.
긴 정치 인생을 뒤로 하고 퇴장하는 그에게, 친구로서 동지로서 남은 인생의 연장전에서 또 다른 멋진 슛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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