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루를 시도하던 이용규가 일본 유격수 나카지마의 무릎에 얼굴이 부딪히며 헬멧이 부서지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강민호]
이치로 결코 잊을 수 없다
공식 기자회견을 끝내고 기자회견장을 나온 강민호. 결승 마지막 순간 포수로 섰던 그에게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을 묻자 주저 없이 “결승전 10회에서 이치로에게 안타를 맞았을 때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답한다. 벤치와 오고 간 사인에서도 실수가 있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고.
“제가 사인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요. 제 잘못이죠.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마지막에 확실히 했으면, 거기서만 확실히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하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만큼 다음에는 중요한 순간에 포수로서 한 가지라도 잘해내서 이번 같은 일은 없도록 할 겁니다.”
연신 싱글대던 웃음이 사라진 얼굴에 굳은 결심이 선 것처럼 WBC 3회에 임하는 각오도 이미 서 있다. “3회 출전 때 제가 주전으로 뛸 수 있다면 이번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한 강민호는 소속팀으로 복귀한 후 2009 프로야구 시즌을 맞는 걱정도 토로했다. “어서 빨리 합류해서 적응 해야죠”라고 말한 그는 “우리 팀의 목표는 우승입니다. 우승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각오를 다졌다.
[이대호]
시즌에선 꼭 우승할 겁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거포, 이대호. 안타깝다. 그는 이번 WBC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시원한 홈런을 날려보지 못했다. 이대호를 경계하는 투수들 앞에서 걸핏하면 포볼로 출루하기 일쑤였고, 결승전 8회 말 대타로 출전해 쳐낸 그의 마지막 공도 이범호가 홈을 밟을 수 있도록 한 희생플라이였다.
“결승전에서 졌을 때 일본이 우승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옆에서 비참하게 바라보고만 있던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다가간 기자를 위해 개인 짐을 찾다가 자리에 멈춰 서서 인터뷰에 응했던 친절한 이대호가 가슴 속의 울분을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사실 마음은 이미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도 악재였다.
▲ 지난 25일 인천공항에서 WBC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고 돌아온 야구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일단 오기가 먼저 발동하더라고요. 다음 WBC 결승전에서 꼭 다시 일본을 만나서 이번과 반대로 우리가 이기고, 그 모습을 일본이 바라보도록 하고야 말 겁니다. 물론 올해 시즌도 잘해내야죠. 이번에 (롯데가) 우승하도록 할 겁니다. WBC에서 못했던 것들, 우리 팀에서 다 하고 싶어요. 사직구장 한번 놀러 오세요(웃음).”
[이용규]
상처마저 자랑스러워요
강속구를 뒷머리에 맞고도, 2루 도루 중에 헬멧이 깨져도, 일어섰던 사나이. 국민을 열광시켰던 기아 타이거즈의 이용규는 메달수여식 때 국내 선수 중 유일하게 메달을 목에 걸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WBC 내내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선사했던 이용규가 꼽는 가장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은 언제일까? 이에 대해 그는 “예선 1, 2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1 대 0으로 이겼을 때 가장 짜릿했다”고 말하며 “우승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고, 특히 일본에 복수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대표팀의 성과에 대해서는 해맑게 웃는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죠. 한국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집중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잖아요.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코에 상처도 났는데 조금 걱정이 돼요. 아무래도 사진(엑스레이)을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코에 선명한 줄이 가 있어 예상외로 큰 상처다. 이용규에겐 고통의 순간이었겠지만 그가 경기 내내 보여준 투혼의 증거인 것만 같아 그 상처마저도 자랑스럽다. 또한 공항에서 부모님을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아이로 돌변하는 그의 순수함이 경기력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았다.
[이진영]
결승전 제 몫 못해 아쉬워
WBC 1회에서 멋진 다이빙 캐치 수비를 펼치며 국민우익수로 떠올랐던 이진영. 그는 이번에도 ‘일본 킬러’로 통하며 제 몫을 해냈다. 하지만 그 역시 “결승전까지 가서 일본에게 졌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고,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우승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결승전이 아쉬웠다는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일본, 미국 등 야구 강국들과 실력이 비슷해졌다고 생각한다”며 “다시 맞붙는다면 꼭 이길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특히 “일본과 5게임을 붙는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방식이다. 꼭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준 선수 중 한 명이지만 이진영 개인으로서는 아쉬움이 많다.
“결승전에서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내려온 게 참 아쉽습니다. 스스로 자신도 있었는데 감독님 및 선수들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한 게 화가 나요. 예선, 본선에서는 제 몫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결승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수확도 분명히 있습니다. 1회 WBC에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2회 때도 제 자신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정말 자부심을 느끼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회가 있다면 국민에게 기쁨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 김태균 | ||
‘세계 최고 1루수’기뻐요
“방금 세계 올스타로 선정됐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고 정말 열심히 해서 더 훌륭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질문 세례를 받은 김태균은 만장일치로 세계 최고의 1루수에 뽑힌 것에 기뻐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기자회견 때도 혼자만 환한 얼굴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정현욱 때문이란다. “현욱 형은 그냥 말하는 것 자체가 재밌어서 웃었다”는 김태균은 “선수단 모두가 기분은 좋은데 너무 오랜 시간 비행한 탓에 피곤해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이라며 “물론 우승하지 못해 다들 마음속으론 아쉬움이 있어도 그만큼 뿌듯함도 있다”고 덧붙였다.
3홈런 11타점으로 한국의 공격을 이끌며 이승엽의 빈 자리를 완벽하게 채운 김태균은 국민의 답답한 마음도 함께 날려준 영웅.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런 건 뭐. (웃음) 인터넷 기사는 많이 접했는데 아직 실감이 나진 않아요. 그동안 제가 국제대회에서 뭘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서야 뭔가 보여줄 수 있어 기분 좋았어요. 지난 올림픽 때 우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걸 한국에서 열심히 응원했었는데 친구 대호가 좋은 성적을 올려 기분이 좋았어요. 이번 대회에서도 대호가 있어 제가 이런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팀에서 좋은 경쟁을 벌인 것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고 제게 큰 도움이 됐어요.”
현재 야구계는 선수층이 얇다는 우려에 이어 돔 구장 건립 등 야구 인프라 확충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타자가 된 김태균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태균은 “이번 대회를 봐서 모두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야구 환경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고 입을 뗐다. 이어 “3년 전 이 대회에서 4강에 올랐을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선수들은 또 말뿐이란 생각에 아예 기대도 안하고 있다”며 “제발 이번에는 좀 더 관심 있게 생각해주셔서 야구가 발전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BC에서 돌아오자마자 한숨 돌릴 새도 없이 프로야구 시즌 개막이다. 김태균은 “개막까지는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 소속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말한다.
[김현수]
생각 나는 건 일본밖에
“일본하고만 경기를 해서인지 기억에 남는 팀도, 가장 어려운 팀도 일본이 전부네요. 일본 이기고 4강 확정지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도 하고요(웃음).”
세계 올스타에 뽑힌 걸 “방금 들어서 알았다”는 김현수는 이번에 외야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뽑힌 점에 대해서도 “에이~뽑힌 게 어디에요. 무조건 영광이죠”라며 국가대표로서 한몫했다는 것에 우선 기뻐했다. 이어 “세계적인 선수들이랑 경기를 치러봤다는 게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이번 시즌 각오를 새로이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오승환]
3회 땐 승리 맛볼 거야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묵직한 공을 날리며 타자의 방망이를 멈추던 오승환은 이번 WBC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WBC 3회 때 일본과 또다시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다면 그때는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서서 승리를 맛보고 싶어요”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비록 경기에서 뛰지는 못했지만 오승환에게 이번 WBC는 매 순간이 잊을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고. 상대하기 어려웠던 팀에 대해선 “아무래도 일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번에 출전하지 못해 아쉽지만 프로야구 시즌에서 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