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2회 대회에선 그 무렵 우주류라는 독특하고 호방한 바둑 스타일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던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3회는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하는 저 유명한 린하이펑 9단, 4회는 우리의 조치훈 9단, 5회는 일본의 오다케 히데오 9단이 우승했다. 일본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호시절은 거기까지였다.
제6회 우리나라 유창혁 9단이 우승컵을 안았다. 7회는 조훈현 9단, 8회는 중국의 마샤오춘 9단, 9회는 이창호 9단, 10회는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우승하면서 한·중·일의 3파전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제11회부터 20회까지 한국이 독식한 것이다. 10연패. 지난해 중국 구리 9단의 우승으로 한국의 11연패는 저지되었지만 올해는 다시 한국 우승이 유력시되고 있다. 요컨대 후지쓰배는 한국을 위한 대회였다.
하긴 잉창치배도 그렇긴 하지만, ‘4년마다 한 번’과 10년 연속에다가 22회 중에서 통산 13회 우승은 느낌이 다르다. 조치훈 9단을 포함하면 14회다.그래서 후지쓰배를 보면 좀 묘한 생각도 든다. 우리같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주최하는 세계대회에서 다른 나라가 10년을 내리 우승컵을 가져가는 상황에서도 대회를 계속 열었을까. 괜한 자격지심, 자기비하일지는 모르지만 유지됐을 가능성보다 중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후지쓰배도 앞으로 중단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일본의 주요 기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신문사가 주최한다. 물론 일본이 우리를 따른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일본의 경우를 참고한 것이다. 일본 최대 기전인 기성전은 요미우리, 2위 명인전은 아사히, 3위 본인방전은 마이니치가 주최한다. 기전 서열은 주최 신문사의 사세와 같다.
그런데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는 후원사 없이 자체적으로 개최한다. 그래도 변함없이 대회를 열고 있고, 예산도 조금씩 늘려간다. 국제대회 성적이 참담할 만큼 초라한데도 일본의 바둑사랑이 계속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일본은 바둑이 아직도 인기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글쎄다.
일본 바둑이 퇴보하고 있다고들 한다. 바둑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있고, 프로기사들은 세계대회에서 도무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일본에 가 보면 바둑이 발전하고 있느냐, 퇴보하고 있느냐, 바둑계가 풍성하냐, 가난하냐, 그런 것은 어느 것 한두 개의 잣대를 갖고 논할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2007년에 일본기원의 초청을 받아 나라현에 간 적이 있다. 일본기원 산하 나라현 바둑협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지방 바둑협회의 창립 30주년. 무엇보다 그 시간의 부피가 만만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바둑팬과 프로기사, 바둑관계자들이 500명쯤 모여 기념식, 시상식, 강의와 세미나, 지도다면기와 팬 사인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라시의 중심지를 벗어난 곳에 있는 조그만 기원에 가보았다. 한쪽 벽에 요일별로 프로기사의 이름과 그 밑으로 일반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요일에 그 프로기사가 기원에 나온다는 것. 그 프로기사 이름 밑에 이름을 적은 사람들이 그 날 그 프로기사에게 지도를 받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주로 노년층이었다. 할머니와 중년 부인도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바둑을 두고, 복기를 하고 환담을 나누었다.일본 바둑이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지 모른다. 바둑은 점점 인기가 없어지는 것일까. 그것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바둑이 인기가 없어지고 있다면, 그건 오늘날 바둑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우리가 정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다 지금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둑은 지금까지 수천 년을 흘러왔듯 앞으로도 그만한 세월 동안은 그렇게 흘러갈 것으로 믿고 있긴 하지만, 요즘 보면 아닌 게 아니라 문득, 홀연히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