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트 위의 ‘로미오’프로배구 MVP를 수상한 박철우. 아주 특별한 ‘연애’를 하고 있는 까닭에 경기력도 사랑도 한층 성숙해진 듯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하나. 박철우는 신혜인과 사귀고 있다! 신혜인은 농구 선수 출신으로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딸. 라이벌 팀 감독의 딸과 연애를 하고 있다보니 배구계에는 출처 불명의 기묘한 소문들이 여기저기서 나돌고 있다. 기자들 입장에선 아주 ‘지대로’인 기사감이나 마찬가지. 박철우가 삼성화재를 만나 이전처럼 좋은 플레이를 하지 못할 경우, 바로 박철우의 성적을 사생활과 연결시킨다. 예를 들면 이렇다. ‘박철우가 삼성화재만 만나면 맥을 못추는 이유는?’ 답은 ‘없다’가 정답이다. 오히려 삼성화재만 만나면 더 의욕을 불태우고 더 잘하려는 욕심을 내세운다는 항변이 들린다.
>>삼성과 경기 땐 더 죽어라 뛴다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선 더 죽어라 하고 뛰어요. 몸이 아파도 악을 쓰며 경기를 뛰는데 때론 잘 될 때도 있고 때론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항상 삼성화재만 만나면 펄펄 날아다니길 바라요. 경기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 여기저기서 이상한 얘기가 들리면 아무리 쿨한 척하려고 해도 그렇게 안 돼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자친구나 여자친구 아버지 눈에 제가 ‘비리비리’한 선수로 비춰지는 게 좋을까요?”
심지어 일부러 삼성화재에 져줬다는 얘기도 들렸다고 한다. 그런 루머들은 박철우는 물론 신혜인과 신치용 감독한테 보이지 않는 상처로 다가간다. 신혜인이 라이벌 팀 감독의 딸만 아니었어도 두 사람의 연애전선은 항상 핑크빛 모드로 가득했을 것이다.
지난 4월 16일, 2008-2009 V리그 시상식에서 박철우는 우승팀 삼성화재의 용병 안젤코를 따돌리고 생애 처음으로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수상 소감에서 박철우는 “힘들 때마다 옆에서 위로해 준 여자친구와 이 영광을 함께 하겠다”며 아예 작정하고 여자친구에 대해 언급했다.
“만약에 제가 MVP를 받게 된다면 꼭 공식석상에서 혜인이에 대해 얘길 하고 싶었어요. 라이벌팀 감독의 딸과 상대팀 선수와의 만남이 아니라 박철우와 신혜인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걸 말이에요. 만약 제가 우승을 하고 MVP를 받았더라면 혜인이랑 손잡고 다니며 같이 인터뷰를 했을 거예요. 저한테 혜인이는 누구의 딸이 아닌 그냥 제 여자친구로만 존재해요. 혜인이 또한 삼성도 이기고 다른 팀도 이기라며 약이나 음식, 건강보조식품 등을 챙겨서 보내줘요. 우리 둘의 관계가 더 이상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아니라 진정한 남녀의 만남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루머 이겨내고 3년간 교제
박철우와 신혜인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배구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회자됐다. 종종 그로 인해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믿음 없이는 3년여 동안의 교제는 이뤄질 수 없었다.
박철우는 4차례나 기흉(폐를 둘러싼 흉막 사이에 공기가 차는 것) 수술을 받았다. 신혜인 또한 부정맥으로 심장 수술을 받은 뒤 농구 코트를 떠났다. 박철우는 우스갯소리로 “나와 혜인이의 만남은 환자들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즉 내장기관에 이상이 있는 남녀가 만났다는 뜻. 그러다보니 솔직히 박철우는 신혜인의 부모가 어렵기만 했다. 기흉이라는 병을 안고 있는 남자에게(일상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선뜻 딸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좋은 가문의 빵빵한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 혜인이에게 대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혜인이는 조건보다는 사랑하고 싶은 남자를 찾았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저였던 거죠. 혜인이 어머님(농구선수 출신인 전미애 씨)이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집으로 초대해서 손수 저녁도 차려주셨는데 어찌나 밥을 많이 주시던지, 그거 다 먹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웃음). 혜인이 부모님도 스포츠 커플이시잖아요. 그래서인지 많이 반대는 안 하셨던 것 같아요.”
그동안 인터뷰 때마다 신혜인을 재활클리닉을 다니다 알게 됐다고 말했던 박철우. 그런데 신혜인을 그 병원에서 처음 만난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서로 소개팅한 친구의 친구 자격으로 나갔다가 혜인이를 만났어요. 재밌는 건 이전 혜인이가 ‘얼짱’ 농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을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 저도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이랑 한번쯤 사귀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실로 나타나니까 굉장히 신기하더라고요.”
“이럴 땐 의외로 혜인이가 더 대범해요. 우리만 괜찮으면 주위에서 뭐라고 수군거려도 전혀 신경 쓸 게 없다는 얘기였죠. 솔직히 혜인이 말이 맞는 거잖아요?”
한때 언론에선 박철우와 신혜인의 가족들이 상견례를 했다고 보도를 했다. 이에 대해 박철우는 100% 사실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양쪽 집안에서 서로의 교제는 허락했지만 부모님들이 만난 적은 없었다는 것. 박철우와 잔을 부딪히며 슬쩍 신치용 감독과의 사적인 만남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절 부르시더라고요. 호프집에서 만나 뵈었는데 그땐 진짜 감독님이 아닌 배구 선배이자 여자친구 아버지이자 조언자로 제 배구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말씀만 들려주셨어요. 솔직히 이런 얘기가 기사화되는 것도 부담스러워요. 또 이상하게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도 되고요. 그런데 정말로 감독님이 아닌 아버님으로 찾아뵈었어요. 그 분도 절 딸의 남자친구로 받아들이셨고요. 참, 앞으로 혜인이 아버님 만나려면 주량을 늘려야 할 것 같아요. 한창 많이 드실 때는 소주 10병에도 끄덕 안 하셨다고 하시는데 전 소주 1병에도 허덕거리거든요.”
700ml 사케 한 병이 거의 비워질 무렵 박철우의 얼굴이 붉은 빛을 띤다. 술집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지 취중토크 이후에 약속된 친구들과의 만남을 그 술집에서 하겠다며 휴대폰을 집어 든다. 휴대폰을 통해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지는 박철우의 모습이 클로우즈업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자친구의 존재가 더할 나위 없이 큰 힘과 위로가 되지만 종종 소속팀에서는 라이벌팀 감독의 딸과 교제 중인 박철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철우 또한 그 점이 가장 미안했고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현대에 우승 안겨주고파
“김호철 감독님이 가장 어려우셨을 거예요. 기자들은 모두 선입견을 갖고 질문을 해오거든요. 더욱이 아주 중요한 시기에 또다시 열애설이 리바이벌되면서 팀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간 적이 있어요. 저만 아니라면 신경 안 써도 되는 부분을 신경써야 하는 감독님과 구단 여러분들께 정말 죄송했어요. 사실 저나 감독님은 경기에 집중하느라 그 외의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평범한 시각으로 보질 않더라고요.”
박철우는 현대에 빚 진 게 많다고 말했다. 그걸 갚는 길은 팀 성적에 보탬이 되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현대가 마지막에 웃을 수 있도록 선수들과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현대캐피탈과의 계약이 끝나요. 당연히 재계약하고 싶어요. 물론 몸값은 좀 더 올려줬으면 좋겠고요(웃음). 그리고 배구의 마지막은 일본이나 유럽에서 뛰었으면 좋겠어요. (문)성민이랑 독일에서 같이 뛰는 것도 멋질 것 같아요.”
해가 있을 때 만나 완전히 컴컴해졌을 때 인터뷰가 끝났다. 친구들이 오기 전 자리를 정리하려고 하자 박철우가 이렇게 퉁퉁거린다.
“어휴, 혜인이 얘길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진짜 안 하려고 했는데…, 술이 좋긴 좋네요. 말이 술술 나오는 걸 보니. 하하.”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