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프로축구 다롄 스더 FC의 안정환이 골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다롄 스더 | ||
“구단에서 굉장히 많은 신경을 써 주더라고요. 재활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어요. 남편도 흡족해 했구요. 무엇보다 선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대단해 보였어요. 워낙 구단 분위기가 좋으니까 운동할 맛이 나나 봐요. 부담스럽기보단 기분 좋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책임감과 함께 동기부여를 제공한 것 같아요.”
>>3호골 넣으며 영웅 등극
이혜원 씨는 무엇보다 중국 무대에서 뛰는 남편을 보고 웃음을 되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으로 가는 걸 무척 힘들어 했어요. 중국에서까지 뛰면서 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었거든요. 부산과 재계약이 실패로 끝나면서 거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축구보다 사람에 대한 배신, 상처들이 남편의 마음을 굉장히 힘들게 했어요. 그래서 미련을 갖기보단 이쯤에서 축구화를 벗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너무 아쉽잖아요. 이렇게 끝내기가. 저랑 가족들이 강력히 중국행을 원했습니다. 은퇴를 하더라도 모양새가 좋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정말 끈질긴 설득 끝에 떠난 중국이라 상당히 걱정이 많았는데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안정환은 다른 어느 팀보다 부산과의 재계약을 원했다고 한다. 구단에선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안정환을 잡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알려진 액수보다 훨씬 적은 액수를 제시하며 계약하기를 바랐다는 것.
그때 나온 얘기가 안정환의 미국 진출설이었다. 더욱이 기자들 사이에선 이혜원 씨가 아이들 교육과 영어 때문에 미국행을 강력히 원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건 정말 전혀 말이 안 돼요. 저나 남편은 외국 생활이 너무 지겨운 사람들이에요. 더욱이 서울에서 제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편이 외국으로 진출하는 게 무척 부담스러운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축구를 계속할 수 있다면 미국이든 호주든, 가릴 형편이 아니잖아요. 에이전트를 통해 미국에서 관심을 보이는 팀이 있다고 들었고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되다가 안 될 걸로 알고 있어요. 저 때문에 미국으로 가려고 했던 건 절대 아니에요.”
미국 진출까지 어긋나면서 안정환은 점차 은퇴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때마침 아들 리환이가 태어나면서 바깥 출입을 삼간 채 가정에서 둘째 아들 돌보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사랑스런 아이를 보며 축구에 대한 미련과 정을 조금씩 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 다롄에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중국행은 말 그대로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안정환이 중국은 진짜 싫다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가족들의 설득과 회유 끝에 중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다롄 스더와의 계약 기간은 오는 6월까지 3개월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1년이라고 한다. 단 3개월을 뛴 다음 선수가 원하지 않는다면 보내주겠다는 게 옵션으로 걸려있다고.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선 안정환이 다롄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
▲ 지난 3월 20일 다롄 공항에서 마중나온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안정환. | ||
>>주장까지 맡아달라고 제안
더욱이 다롄 스더 측에선 안정환이 주장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고 한다. 이 씨가 다롄을 방문했을 때 구단주, 감독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거기서 감독님이 안정환에게 주장을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는 것.
“제가 다롄 공항에 내린 장면부터 숙소로 이동하는 것까지 모두 촬영을 하더라고요. 라디오에까지 생중계될 정도로요. 선수도 아닌 선수 가족에 대해 이토록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줄 전혀 생각도 못했거든요. 감독님은 가족들이 왔다고 훈련에서 아예 제외시키더라고요.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에 참가했고요. 다롄에서 2002년 월드컵 때가 떠올랐어요.남편이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요.”
만약 안정환이 다롄에 잔류한다면 그의 축구는 중국에서 마무리될지도 모르겠다. 안정환이나 가족들은 더 이상 ‘떠돌이 생활’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변수가 없는 한 다른 리그로의 이적은 고려하지 않을 것 같다.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독일 그리고 지금의
중국 다롄에서 축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축구인생을 보내고 있는 ‘반지의 제왕’ 안정환. 그의 재기를 지켜보며 많은 회한을 갖게 되는 아내 이혜원 씨.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긴다.
“중국에선 사람으로 인해 아프거나 배신당하는 일은 없잖아요. 은퇴 직전까지 갔다가 어렵게 기회를 잡은 남편이 그 기회를 멋지게 살리는 것 같아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