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이지 않는 악재들
최홍만의 영화 출연으로 폭발한 네티즌들의 분노는 사그라지기는커녕 그의 병역 면제 사연과 무기력한 경기력 등 해묵은 논쟁거리까지 다시 끄집어내며 더욱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병역 면제 논란으로 한 차례 바닥을 찍은 줄 알았던 ‘최홍만 주(株)’는 K-1 5연패란 악재와 ‘친일’ 논란으로 부도를 맞고 아예 상장 폐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와중에도 최홍만은 오는 26일 일본 K-1이 운영하는 종합격투기대회 드림(DREAM) 9에 출전하기로 최근 확정됐다. 대전 상대가 호세 칸세코(45)인 점이 이 경기가 전형적인 ‘막장 매치’임을 말해주고 있다. 칸세코는 쿠바 출신 대형 타자이며 약물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던 메이저리그 선수다. 격투기 경험이라곤 한 차례 복싱 경기 출전 경험이 전부인 그가 돈 때문에 격투기 링에서 최홍만과 싸우게 된 것이다. 실력 본위의 격투기 대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홍만이 지난 2006년 12월 나이지리아 출신 코미디언 바비 올로건과 싸운 이래 또 한 번 기상천외한 서커스 경기를 갖는 셈이다.
일각에선 최홍만이 더 이상 예전 같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난해 6월 받은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의 후유증 때문이다. 최홍만이 군 면제를 받기 전부터 그의 건강상태를 자주 경고했던 D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의 한 교수는 “수술 결과 종전처럼 과다하게 성장호르몬이 많이 나오지 않는 까닭에 근육량과 체중은 크게 감소된 것 같다”면서 “후속 치료와 몸의 적응 등을 고려해 1년 이상 쉬어야 할 텐데 완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전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련 분야 국내 권위자인 Y 대학병원 신경외과의 한 교수는 “최홍만이 계속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종양 잔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당부하검사 결과와 MRI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케이블 수퍼액션의 격투기 해설위원 김남훈 씨는 “최근 최홍만을 비난하는 분위기는 일종의 열섬현상 같은 것”이라며 “부적절한 영화 출연, 경기력 저하, 군대 면제, 쇼 같은 경기 매치업이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키면서 좀체 식지 않는 이상 열기를 토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K-1이 기본적으로 지상파의 쇼 프로그램과 시청률 경쟁을 펼쳐야 하는 처지임을 감안하면 이번 경기 대진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임에도 최홍만에게는 악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 에이전트는 뭐하나
최홍만이 이 지경까지 내몰린 근본적인 이유는 대체로 하나로 수렴된다. 반(半) 공인으로서 처신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훈련 부족이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현지의 성인방송에 출연해 반라의 여성에게 팬티스타킹 따위의 속옷을 입히는 저질 쇼를 펼친 것이 한 예다.
▲ 칸세코 | ||
K-1이 엄연히 프로스포츠이고, 최홍만은 프로 선수라는 점에서 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에이전트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최홍만의 에이전트는 그의 고용주인 K-1 주최사 FEG다. 계약 규정상 최홍만은 일본 내 영화 출연시 FEG가 이를 관장한다. 최홍만이 ‘친일파’ ‘매국노’란 극단적인 폭언까지 듣게 될 줄 알았다면 FEG가 과연 영화 출연을 성사시켰을지 의문이다.
# 그에게 활로는 없나
그렇다면 최홍만에게 활로는 영영 없는 것일까. 일단 K-1 측이 최홍만의 부활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K-1 주최사의 한국지사인 FEG코리아 담당자는 “부상 등 변수가 없다면 올 9월 국내에서 열릴 K-1 월드GP 개막전에도 최홍만은 주력 카드 중 하나”라며 “흥행을 위해서도 최홍만이 제 기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더욱이 국내 복수방송채널 CJ미디어가 메이저리그 중계권료에 버금가는 3년간 310억 원의 천문학적 금액을 K-1에 지불한 배경에는 시청률 보증수표인 최홍만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홍만이 이대로 추락해 버린다면 K-1은 현 계약이 끝나는 내년 중순 국내 케이블 채널들에 비싼 가격에 중계권을 팔 수 없게 된다. 내년 K-1 중계권 계약에 흥미가 있다는 한 케이블채널 관계자는 “최홍만의 시청률 파워가 예전만 못하고, ‘포스트 최홍만’도 없는 현 상황에서 K-1의 연간 중계권료는 3분의 1 이하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정작 최홍만 스스로 뚜렷한 반성이나 재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난관이다. 격투기잡지 <무진>의 편집장 김기태 씨는 “아무리 주변에서 밀어줘도 본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용 없다”며 “올해 말로 출전 계약이 만료되는 최홍만으로서도 재기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재계약시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최홍만의 마음 속에 이미 은퇴란 단어가 들어가 자리하고 있는 걸까. 선수 자신만 알고 있을 것이다.
조용직 헤럴드경제 온라인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