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9단 | ||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이하 기사회)는 한국기원의 정식-공식 기구는 아니다. 임의단체요, 넓은 의미에서 친목단체다. 한국기원 행정에 관한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한국기원의 운영이 프로기사 중심으로 되어 있는 현실에서 기사회의 영향력은 크다. 프로기사의 신상이나 상벌에 관한 안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사회는 회장-부회장-대의원-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대의원회의를 거쳐 기사회에서 통과된 안건은 한국기원 이사회에 전달되는데, 거의 채택이 된다.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는 프로기사도 끼어 있다.
이세돌 안건은 네 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9 한국리그에 불참을 선언한 것 △시상식에 불참한 것 △중국리그에서 받은 대국료 중 5%를 기사회에 납입하지 않은 것 △프로기사의 기보 저작권을 한국기원이 일괄 관리하는 방안에 동의하지 않은 것 등이다.
안건의 내용으로 미루어 이건 그냥 의논-심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징계 성격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프로기사는 모두 한국기원 소속이다.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기사가 된다. 한국기원을 통하지 않고 프로기사가 되는 길은 아직 없다. 프로기사가 되면 한국기원이나 한국기원과 계약을 맺은 기업이나 단체가 주최하는 기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받는다. 프로기사는 한국기원 혹은 기사회가 정한 규정에 따르고 협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기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이 9단의 경우, 기사회의 시각에서는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과연 기사총회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올지 모르겠다. 이세돌 9단이 사과-반성-협조의 뜻을 밝힌다면 경고나 주의로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 이 9단의 평소 사고방식이나 언행으로 보면 그게 만만치 않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성향이니까.
그런데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네 가지 안건에도 다소간 문제는 있어 보인다.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 9단에게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기전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래서 상을 받는 자리인데 빠진다는 것은 상식 이하다.
중국리그에서 받은 대국료 중 5%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다. 이 9단 쪽에서도 “외국에 나가 개인적으로 얻은 수입인데, 그것마저도 일부를 내야 하느냐. 중국리그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한국기원이 편의를 제공한 것이 없지 않느냐”는 뜻의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기원 소속 기사로서의 바둑활동은 한국기원의 양해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포괄적 해석을 적용한다면 내는 게 맞다. 또 이건 특정 개인에게 내는 것이 아니라 기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한 기금 축적의 성격이니까.
한국리그 불참은 도의적인 책임 유무가 논의되는 문제다. 더구나 이 9단의 고향이고, 이 9단을 위해 기념관까지 마련해 준 신안군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팀을 만들어 나온 상황이니 이건 이 9단이 이번 한 번은 양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처우의 형평성 같은 문제는 참여하면서 얼마든지 논의하고 개선할 소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로기사의 저작권 문제. 이건 아직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프로기사와 출판사가 바둑 저작물 계약을 할 때 인세를 10%로 하느냐, 5%로 하느냐는 계약 당사자 간의 문제다. 인세 같은 걸 아예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기원이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는 말 자체가 모호하다. 월권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 한국기원이 저작권에 관해 뭔가 정해 놓은 게 있다면 그건 참고사항일 뿐이다. 게다가 프로기사의 기보 저작권은 아직 확정-확립된 내용이 없다. 기보도 저작권이 있느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느냐, 이것도 아직 논의 중이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다.
저작권을 누구에게 인정할 것인지. 한국기원인지, 기보가 만들어질 수 있게끔 바둑대회를 열어 준 단체나 기업인지, 기보가 게재되는 신문사인지, 기보를 만든 기사인지, 또 기사라면 어느 한 사람인지, 아니면 두 대국자 모두인지.
아니, 그보다도 기보에 과연 저작권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부터가 정립된 게 없다. 더구나 바둑의 체육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바둑도 체육이라면 체육 종목에 무슨 저작권이 있겠는가. 다만 이승엽이나 박지성, 김연아를 내세워 교재 같은 걸 만든다면 그건 당연히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바둑도 그렇다. 기보를 갖고 다른 뭔가를 만든다면 예컨대 조훈현 선국집, 이창호 명국집처럼 기보들을 묶어 책으로 만든다면 당연히 저작권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보는 경기 내용이다. 경기 자체다. 무엇보다도 저작권은 아직 시행되고 있지도 않은 것. 그걸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좀 그렇다.
이렇게 볼 때 이세돌 9단의 안건 네 가지 중 하나는 분명하고 둘은 약간 모호한 면이 있고 하나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잘못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나이나 공로를 감안하면 징계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이번 일을 계기로 프로기사의 품위, 사회적 책무, 그런 것들을 돌아보고 다시 정립했으면 좋겠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