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하순부터 법조계 안팎을 뒤흔든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과정이다. 정운호 게이트나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대박 특혜 의혹 사건이 예상치 못했던 수순이라면, 대우조선해양이나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은 공개수사를 위한 최적의 시기를 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내사 기간이 5개월이었으며,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도 최소한 수개월 동안 첩보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공개수사 초기인데도 검찰이 쓸 만한 실탄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시급을 다투지 않는 이들 사건을 지금 터뜨렸을까. 이를 두고 검찰을 좀 안다는 인사들은 진경준 검사장이나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 등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10일 오후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상자를 들고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대우조선해양 사건은 식상하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직접 관리하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올해 초 출범한 후 첫 사정수사 타깃이 무엇이 될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러 사건들이 후보군에 올랐었다. 그러다 한 달여쯤 지난 뒤부터 서울중앙지검과 창원지검에 있던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김기동 단장이 출범 초기에 이미 한번 스크린을 했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하지만 김 단장이 별 흥미를 느끼지 않고 서울중앙지검과 창원지검으로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일각에서는 김 단장은 상징성 있는 기업사건을 하고 싶어 하는데 김 총장이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기업수사에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검찰 안팎에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사건을 수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주 5개월 만에 베일을 벗은 김 단장의 첫 사정수사 타깃은 처음에 거론됐던 대우조선해양이었다. 특별수사단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관련 부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산업은행까지 포함시키면서 이 수사는 분식회계 등 단순한 혐의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 등에서 발생한 모든 비리까지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수사는 ▲분식회계 ▲경영비리 ▲산업은행 부실감독 ▲안진회계법인의 부실감사 ▲정치권 비호세력까지 총망라해서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이 이 같은 의혹을 전부 파헤치기 위해선 사실상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5개월간 내사를 거친 만큼 다른 수사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수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이다. 특별수사단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수사의 첫 테이프를 끊었지만 여론은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선 이미 너무 많은 얘기들이 나오지 않았느냐”면서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를 삼은 적이 있는 데다, 언론에서도 관련 기사들이 그동안 많이 나왔고 무엇보다 대우조선해양이 살아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 사건을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정치권 비호세력들이 밝혀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그동안 파다했다. 또 남상태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로비를 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정치권 관계자들이 줄줄이 엮이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며 “정치권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동안 문제제기가 많았던 산업은행을 몸통으로 수사를 하게 되면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정치권이나 산업은행이 수사의 몸통이 되면 무엇보다도 왜 정운호 게이트와 진경준 사건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때 이 수사를 공개적으로 시작하게 된 이유도 설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 비자금 수사는 뜬금없다?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이 롯데면세점 입점로비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일부에선 롯데 비자금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검찰은 당시 “비자금 수사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네이처리퍼블릭 외에 다른 기업의 입점로비는 볼 수 있어도 비자금까지는 힘들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다.
이런 입장을 감안하면 서울중앙지검은 정운호 게이트나 진경준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인 올해 하반기에 롯데 비자금 사건을 공개 수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2~3주가 지난 뒤 비자금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내사도 대우조선해양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수개월간 내사가 진행됐다. 비자금 조성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롯데그룹이 조직적으로 비자금 관련 증거들을 인멸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서둘러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다소 뜬금없이 보이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아니다”고 말했다.
#홍만표와 진경준 수사 어디로?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특혜 의혹은 사실상 여론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홍 변호사의 경우 수사 진척이 더딘 데다, 진 검사장은 사법처리 여부조차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검찰도 이 같은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같은 시기에 대우해양조선 사건과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을 함께 터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어차피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을 알고 있다면 검찰로선 비난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선 분산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며 “그래도 홍 변호사는 구속을 시켰으니 탈세가 됐든 뭐가 됐든 향후 공소 유지에 신경 쓰면 되겠지만 검찰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것은 진 검사장 사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진 검사장 사건 결과가 국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이나 롯데 비자금 사건이 함께 돌아가고 있으면 크게 주목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검찰도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