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격투기 열풍에도 불구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국내 격투기 단체는 드물다. 사진은 경기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비정상적인 수익구조
격투기 대회 단체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 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관중 동원에 의한 입장 수익 및 관련 상품 판매 수익, 그리고 방송 중계권료, 마지막으로 광고 및 후원사에 의한 스폰서십이다. 하지만 관중 동원에 의한 입장 수익이나 관련 상품 판매 수익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계권료 또한 애초에 방송을 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방송을 탄다 해도 대형단체가 아니면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격투기 단체는 운영비용을 스폰서에 의존한다. 문제는 스폰서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사실상 스폰서가 대회 지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광고 및 홍보 효과 정도인데 대부분 대회단체는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스폰서 규모를 늘리기 위해 비정상적인 운영을 하게 된다. 즉, 공짜 표를 뿌려서 관중을 억지로 모으고, 중계료를 거꾸로 지불해서라도 방송을 잡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형태가 제살 깎아먹기 수준을 넘어서 큰 투자수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부풀리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감언이설에 투자를 약속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이후론 손을 떼게 마련이다.
#프로모터 간의 알력
물론 모든 스폰서가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대회단체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후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단체에 손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판크라스 서울대회 취소 사건이다. 일본 중견단체로서 당시 올림픽체조경기장을 빌려 대규모 대회를 열고자 했던 판크라스는 그러나 당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줄라이미디어 측이 선수 대전료 등의 지불을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자 대회 자체를 취소시켜버렸다. 하지만 줄라이미디어 측은 판크라스 쪽에서 비현실적인 대전료를 요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 갈등의 배경에는 제3의 인물이 있었다. 한 일본 단체의 프로모터가 우연히 줄라이미디어 측에 자신은 훨씬 싼 가격으로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다고 얘기를 흘렸던 것. 판크라스 측에서 제시한 대전료는 분명히 ‘시가’에 맞는 적정가격이었으나 ‘덤핑가’를 알게 된 줄라이미디어 측에서는 판크라스가 일부러 비싸게 대전료를 책정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 경우는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단체나 프로모터 간에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다.
한국 MMA 선수들의 일본 진출을 돕고 있는 CMA코리아 천창욱 사무국장은 그 과정에서 다른 국내 단체의 방해를 많이 받았다고 밝힌다.
“2006년 일본신생단체 마즈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우리에게 선수 파견 등 우호적 관계를 부탁해온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프라이드 측에도 선수들을 내보내고 있었는데 한 국내단체에서 프라이드 쪽에 팩스를 보내 내가 K-1과 관련이 있는 단체에 선수를 계약시키고 있다고 모략한 적이 있다. 가장 황당한 부분은 당시 계약이 진행되고 있던 선수의 소속 체육관과 지도자 이름을 함께 거론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쪽에서 프라이드와 계약을 성사시킨 선수들을 방송사에서 전혀 다뤄주지 않았던 일도 있다. 어차피 넓게 보면 다 한 배를 탄 입장이고 어렵게 기회를 잡은 선수들인데 꼭 그렇게 해야 할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물 흘리는 선수들
이런 파워 게임 속에서 결국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의 개인에 불과한 힘 없는 선수들이다. 대전료 체불은 지난주 <일요신문>이 단독 보도했던 지인진과 K-1 측의 공방 건에서 알 수 있듯이 선수와 단체 간에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문제다. 물론 개중에는 경영 사정에 의한 자금 압박으로 불가피하게 지불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2년 가까이 대전료 지불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2007년 경주에서 슈퍼삼보대회를 주최했던 대한삼보연맹은 당시 출전했던 일부 선수들의 대전료를 아직까지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단지 문종금 회장 결재가 떨어지지 않아서라고.
대전료 다음으로 선수들이 부딪히게 되는 문제는 경기를 갖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대회사 측에 유리한 내용의 계약에 사인을 하게 되는 경우다. 스피릿MC는 국내 종합격투기 발전에 큰 공을 세운 단체지만 한편으로는 선수와 계약 문제로 많은 갈등을 빚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리안탑팀과의 불화, 허민석과의 재판 등은 익히 알려진 내용. 덕분에 우수한 인재들이 싸울 장소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간 결과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에서 활동하는 선수층이 양분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최근에도 1년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스피릿MC가 신흥단체인 무신에서 경기를 갖기로 했던 김재영에게 자신들과의 계약을 문제 삼아 출전에 제동을 건 바 있다. 이에 대해 한때 스피릿MC의 스태프이기도 했던 무신 김범석 운영팀장은 “대회를 열지도 않으면서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대회사에 선수들이 흔들리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스폰서와 파트너십
20년 넘게 무술용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무예랑 권혁남 대표는 “하루에도 몇 건씩, 작게는 티셔츠 몇 장에서부터 크게는 수백, 수천만 원 규모에 이르기까지 스폰서 제안이 들어온다. 다들 대단한 기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개중에 정말 영양가 있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본인이 무술 수련자이고 대회를 개최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속는 셈 치고 도 도와주는 편이다.
권 씨는 “대회를 한번 열고 말 것도 아닐 텐데 스폰서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잘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단체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며 충고를 건넸다.
김기태 격투기 웹진 <무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