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공법, 위험의 ‘지상화(?)’ 논란
- 공법에 빠진 논쟁…”본질에 집중해야“
전남 나주빛가람혁신도시 본사 전경
[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한국전력의 최근 논란이 된 직접 활선공법(이하 활선공법) 폐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10일 지난 25년간 시행된 직접 활선공법을 원칙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 공법이 작업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해치는 주요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활선공법은 노후전선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전기를 끊지 않고 작업하는 공법이다. 정전으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전류를 차단하거나 우회시키는 공법보다 인건비·공사비가 적게 든다. 한전이나 시공업체들이 직접 활선공법을 선호하는 이유다.
한전은 정전 피해를 줄이고 작업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25년 전부터 이 공법을 도입됐다. 그러나 이 공법은 2만2천V의 고압전기가 흐르는 전선에 ‘절연커버’만 씌운 채 작업이 이뤄지는 관계로 커버가 벗겨지면 감전에 따른 사망·부상 등의 사고가 속출했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활선공법 때문에 13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고 140명이 화상, 손목·팔 전단 등의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감전사 등 사고 위험이 커 대체 방식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이 공법은 최근 구이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인명을 경시한다는 여론과 맞물리면 더 악화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이에 한전은 원칙적으로 전선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바이패스케이블 공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절연스틱을 이용해 작업하는 스마트스틱 활선공법 등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논란은 대안으로 제시된 ‘바이패스 케이블공법’의 실효성과 안전성 문제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업계에선 벌써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회의론이 많다.
일각에선 악화된 여론과 노조의 반발을 의식한 조삼모사식 대책으로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비판도 서슴없이 나온다. 우선 이런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한전 측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다.
이 공법을 새로 적용하기 위해선 협력업체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케이블’ 등 고가의 자재와 공구 등을 제때 구할 수 없는 업체로선 기존 공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최근 한전의 강력한 직접 활선공법 폐지 지침에도 불구하고 광주전남 72개 업체 중 71개 업체가 기존 공법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한전은 활선공법을 폐지한다고 발표는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근로자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한전 발표 뒤 ”현장은 여전히 직접활선 공법으로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한전 결정이 실제 집행되기 위해서는 직접활선 작업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서가 마련돼야 한다“며 ”한전의 발표가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다음 주까지 구체적인 일정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현장에서는 그나마 한전이 내놓은 대안마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 대책’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업계는 ‘바이패스 케이블공법’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활선공법으로 보고 있다.
‘바이패스 케이블공법’이란 지상에 바이패스 케이블을 설치해 전기를 이 케이블로 우회시킨 후 주상의 작업자가 전기가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공법이다.
우선 작업자가 노후 전선을 교체하기 위해 이 공법을 사용하려면 교체 대상 전선의 전기를 끊어서 지상의 바이패스 케이블에 연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작업이 끝나면 다시 바이패스 케이블 전기선을 새로 교체된 전주 위의 전선에 연결한다.
작업자는 끊고 잇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살아있는’ 전기(활선)를 접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바이패스 케이블공법’을 두고 개명한 ‘활선공법’이라는 비아냥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특히 이 공법을 두고 ‘위험의 지상화’ 전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전주 위에서 일어났던 직접 활선공법으로 인한 근로자 감전사고가 작업자는 물론 지상의 불특정 행인이나 차량에 옮겨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기가 흐르는 바이패스 케이블을 지상에 설치하는 이 공법으로 인해 작업자와 통행인의 위험요인이 상존할 뿐만 아니라 케이블과 공사용개폐기 노후로 자칫 대형 사고를 유발 위험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새 공법 도입은 ‘공중’에서 더 큰 위험을 ‘지상’으로 옮겨 놓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게 현장 근로자들의 얘기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실행 계획이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의 말이다. ”내부적으로 시행 기준에 대한 초안은 잡아 놓은 상태다. 14일 전국 사업소의 배전운영부장 등이 모여 어느 공사에 어떤 공법을 적용할지 토론을 거쳐 세부기준을 확정한 뒤 협력업체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후 실사를 벌이면 1~2개월 안에 이 공법 수요가 어는 정도인지 파악돼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체 업체 중 30% 가량이 협력업체 등록 당시 바이패스 케이블공법으로 실사 받아 장비와 케이블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모두 지역에 이 공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험의 지상화’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케이블을 끊고 잇는 과정은 활선작업이다 보니까 전선 이선공법처럼 작업자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지상의 ‘바이패스 케이블‘의 경우 지중 케이블처럼 도체 부분을 중성선이 감싸고 있어 아마도 행인들이 감전사고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전과 노조 양측의 의견이 워낙 첨예해 정부나 정치권 등 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논쟁의 중점이 공법 논쟁처럼 일부에 집중되는 것 역시 문제다.
“두 공법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사실 안전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오십보백보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작업자의 안전 문제와 정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 최소화 사이의 간극을 메꾸기 위한 큰 틀의 합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충고다.
그러나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골이 깊은’ 양 당사자밖에 없으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