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신수(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고교 시절 감독이었던 조성옥 씨(뒷줄 맨 오른쪽)가 제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출전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선수들 사이로 이대호와 정근우도 보인다. | ||
솔직히 (조성옥) 감독님 돌아가신 지 일주일이 돼 가는데 여전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직접 뵙질 못해서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경기하는데 집중하려고 해도 잘 안 돼요. 아버지도 아니고 고교시절 감독님이 돌아가셨다고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고요? 저한테는 아버지나 다름 없는 분이었으니까요.
감독님 장례식장에 아버지와 어머님이 가셨더랬습니다. 아버지와 감독님은 유난히 잘 통하셨어요. 두 분 다 의리와 신의를 중시하는 ‘경상도 사나이’ 분들이었습니다.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 못해도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셨어요. 감독님 영정 앞에서 아버지가 무척 우셨다고 합니다. 친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감독님 앞에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길 듣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습니다.
어제 아버지랑 통화를 했는데 감독님 입관하는 걸 다 보셨다고 하시네요. 아주 편안한 모습이셨다고 합니다.
지금 제 야구 장갑 안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감독님, 좋은 곳으로 가십시오. 감독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앞으로도 계속 이 장갑을 낄 것이고 글러브에도 감독님의 이니셜을 새겨놨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산 방망이를 사용하고 있는데 부산에 계시는 사장님께 부탁드려서 방망이에도 감독님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할 예정이에요.
그만큼 추신수의 야구인생에 조성옥 감독님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제가 게임이 안 풀리거나 스윙이 조금만 이상해지면 당장 전화를 걸어선 정확하게 지적을 해주셨고, 저 또한 마인드 컨트롤이 안 될 때 경기 전에 감독님과 통화를 하고 나가면 이상하게 게임이 잘 풀렸어요.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할 당시 감독님을 비롯해 부모님이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 당시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 차 가족들이 모두 애리조나로 이동을 했었죠. 애리조나의 기온이 엄청나게 뜨거운 거 아시죠? 평균 기온이 40~50도를 넘나드니까요. 그런데 마이너리그는 훈련이 끝나면 그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밥을 먹더라고요. 차 안에 콜라를 놓고 내리면 터질 정도였고 초가 녹고 계란이 익을 정도의 더위에서 선수들이 더위를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태양을 이고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님과 아버지 마음이 찢어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아예 호텔에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말도 통하지 않는 선수들과 ‘뻘쭘’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훈련을 하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무래도 부모 입장에선 짠했을 수밖에 없었겠죠. 눈물 없는 아버지가 그때 얘기만 꺼내면 우시곤 했는데 이번에 감독님 영정 앞에서 통곡하셨다고 하니까 아버지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제가 그리 감정이 풍부하지 않습니다. 오기와 독기가 없었으면 지금 이곳에 발 딛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고요. 이젠 슬픔을 곱씹기 보단 시즌을 마치고 귀국할 때 감독님이 잠들어 계시는 곳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되겠죠.
사람이 잘 사는 게 뭘까요? 어떤 삶이 행복한 인생일까요? 야구를 잘 해서 국위선양도 하고 개인적인 명예도 드높이고, 그리고 돈도 벌어서 제가 야구하면서 도움받았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갚아가면서 살고 싶은 데…, 모든 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디트로이트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