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교육특성화학교 청석초등학교에서는 별도의 교실까지 마련해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 ||
경기도 안산, 청석초등학교가 여기에 있다. 전철 4호선 중앙역과 고잔역 사이다. 서울 사당동에서 전철로 1시간 거리에 이런 절경이 숨어 있다.
청석은 교육특성화학교다. 특성화의 종목은 바둑이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바둑교육특성화학교가 된다. 바둑 교육의 시간과 농도에서 ‘교육특성화’와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은 크게 다르다.
우선 청석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1년에 10시간 바둑을 가르친다. 1년에 10시간 배워서 무슨 효과가 그렇게 있겠느냐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10시간이면 바둑을 모르던 아이들이, 바둑이란 게 뭔가를 알게 되고, 바둑 한 판을 둘 수 있게 된다. 그게 저변의 씨알이 된다.
재량 수업 10시간은 이를테면 맛보기고, 바둑만을 가르치는 시간이 또 있다. 영재반과 전문반이다. 월~금요일 매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영재반 수업,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 하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전문반 수업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전문반 아이들은 하루 7시간, 1주일에 35시간 바둑 공부를 하는 것. 22학급 700명 학생 가운데 현재 영재반은 51명이고, 51명 중에서 전문반이 12명이다. 12명 중에는 프로기사를 지망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다.
이 학교 나병권 교장(59)이 바둑인이다. 대학 시절부터 작은 대회에서는 우승도 여러 번 했던 아마 6단의 실력이다. 요즘은 시간이 나면 인터넷 바둑도 즐기는데, 사이버오로에서 7단에 올라가 있다. 사이버오로는 7단이 최고단이다. 7단 중에서도 강자는 아이디 앞에 왕별이 붙는다. 왕별 7단은 프로기사나 연구생, 전국구 아마추어라고 보면 된다.
2006년 3월 청석이 개교할 때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부임했다. 1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웬만큼 자리를 잡았다고 여겨지자 나 교장은 주저 없이 바둑 특성화를 신청했다. 바둑의 가치, 바둑 교육의 효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둑 교육을 위해 별도의 교실도 마련했다. 시설과 크기가 시중 어느 바둑교실, 바둑도장과 비교해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 현재 경기도에는 바둑특성화 초등학교가 안산, 군포, 부천, 파주 등에 하나씩 모두 넷. 부천은 나 교장이 권유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바둑 잘 두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는 것, 산만한 아이도 바둑을 배우면 차분해진다는 것 등 익히 공인된 사실들이 청석에서도 그대로 입증되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는데, 문제아 비슷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쳤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아이의 아빠, 엄마, 동생, 식구 모두가 바둑을 배우더니 얼마 전에 있었던 제1회 청석배 가족 페어 바둑대회에 아이의 가족 네 사람이 두 팀으로 나누어 출전해 가족이 결승에서 만난 것이다.
청석은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도 바둑 프로그램이 있다. 주말에 부모가 여행을 떠나거나 일을 보러 함께 외출해 혼자 남는 아이들, 이른바 ‘나홀로 주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부모들은 마음을 놓고, 아이들은 즐겁다. 몇 달 전에는 학부모 바둑교실도 열었다. 역시 반응이 좋고 다들 열심이다. 대부분 엄마들이지만 할아버지도 있다.
올해로 바둑 교육 3년차. 작년 올해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설문을 돌렸다. 아이들의 96%, 학부모의 93%가 ‘대단히 만족한다’고 답했다. 나 교장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사람이 바둑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어 주었으니까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채효식 교감(53) 역시 바둑인이다. 아마 5단이다. 김명순 교사. 학급 담임이면서도 바둑 교육을 위한 수업을 행정 및 서무 업무 일체를 맡아 완벽하게 처리해 주었다. 나 교장은 “김 선생님의 치밀, 정확, 성실은 알아주어야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강사진. 얼마 전까지 아마추어 정상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던 김진환 아마7단과 박성균 아마7단이 지금은 경연의 무대를 떠나 청석의 바둑꿈나무들에게 헌신하고 있다. 재량수업, 영재반, 전문반, 학부모교실 수업을 두 사람이 감당하고 있다. 1주일에 평균 40여 시간. 일반 직장인들과 똑같다. 김 7단이나 박 7단이나 평생 이렇게 고되고 정규적인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바둑을 가르치면 뭐가 좋은가? 바둑 교육의 효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이겠느냐고 나 교장에게 물었다. 나 교장은 5초쯤 있다가 큰 목소리로 “집중력!”이라고 대답했다.
“천재의 특성은 집중력입니다.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 천재입니다. 아무나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취는 집중에서 옵니다. 집중력 훈련에 바둑만큼 좋은 건 없습니다.”
김명순 교사가 거들었다.
“바둑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이 바둑알 갖고 장난치려고만 했어요. 알까기나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바둑이란 게임에 흥미를 갖는 거예요. 그리고 바둑을 두는 거예요.”
바둑은 사람들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바둑의 마력은 집중이라는 것이었다. 그 집중이 재미다. 나 교장과 채 교감, 김 교사, 김 7단과 박 7단. 바둑 동네에는 도처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바둑계가 어떠니 저떠니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반성해야 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